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스티븐 킹의 사계를 읽고


 살아 있는 작가들 중 가장 유명한 작가. 공포 소설의 대가. 영화 샤이닝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 남자. 스티븐 킹에 대한 그럴듯한 수식어는 몇 개 더 있지만, 이 세 가지의 수식어 이외의 세 문장으로 작가 스티븐 킹을 설명하리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수식어들 중 가장 오래되고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단연 공포 소설의 대가만한 것이 없지만, 동시에 오랜 기간 작품 활동에 정력적으로 임한 결과 공포 소설만의 대가가 아님을 증명한 작가이기도 하다. 킹은 킹 자신이 문학계에서 몸담은 기간과 대중들에게 인정받은 기간이 두루 긴 작가임과 동시에 자신의 재능을 점차 넓은 영역으로 확장시키고 새로운 필명을 만들어내는 등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선보인 덕에 현재는 과거 저평가의 근원이었던 평론가들의 박한 평을 정반대로 뒤집어 버리는 것에 성공했다. 오늘 이야기할 11/22/63역시 공포 소설의 범주에 들지 않음과 동시에 킹의 작가로써의 역량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11/22/63은 장르라는 액면가만을 이용해 설명하기에는 매우 모호하고 힘든 소설이다. 케네디가 암살당하는 역사적 사실을 주인공인 제이크 에핑이 리의 암살을 실패하도록 만들어 케네디가 생존한 후의 2011년을 마주한다는 점은 대체역사물이라고 할 수 있겠고, 1958년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계단이 존재하는 단골집과 초자연적인 존재인 카드맨들의 암약은 판타지적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약하나마 제이크의 탐정스러운 탐문과 예측, 새디와의 아름다운 결말은 추리소설과 로맨스소설의 편린을 느끼게 해 준다. 비록 연관성은 미약하나, 이 두가지 편린은 각각 과거를 여행하는 제이크에게 역사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틀어버리고자 하는 사명감과 대부분의 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살아가는 제이크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하는 안도감으로 작용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두가지 감정은 비록 장르적 연관성은 미약하나 과거 여행을 하는 제이크에게 목표의식과 사명감을 충족시키고, 과거의 관성에 저항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항상 새로이 정비하도록 도와 결국 원하던 목적을 이루는 것에 가장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정독을 마친 후 가장 먼저 밀려들어오는 인상은 제이크라는 사람이 얼마나 선한 사람이냐는 것이었다. 크게 친하지도 않은 단골집 주인의 부탁을 받고 케네디의 암살을 막는다는 과거를 여행하는 것을 흔쾌히 수락했으며, 여행하는 김에 자신의 늦깎이 학생이었던 절름발이 수위의 가슴 아픈 가정사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가죽이 덜렁거리도록 헌신했으며 휠체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여인이 당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 두 발로 걸어다닐 수 있도록 과거를 바꿔주는 등 자칫 안일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일들을 자신의 양심이 시키는 대로 행동함으로써 세심하고 사려깊게 해결해 나갔다.

 

 이러한 제이크의 성품은 두 번째 시간 여행이 끝난 이후 자신이 상상하지 못했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충격적인 2011년을 목도한 후 극적으로 변화했으나,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작중 극적으로 일어난 변화에 대한 설득력이 매우 부족한 대목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새디의 불행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과거만을 바꿔놓은 채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놓는 세 번째 여행을 마무리해 절름발이 수위와 여인이 원래 역사에서 마주했던 불행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앞선 여행에서 자신과 크게 연관이 없던 남에게 열성적으로 베풀려고 한 커다란 선행과 대치되어 1000여 페이지동안 확고부동했던 주인공의 매력이 단 100여 페이지 내외의 감정 변화로 인해 퇴색되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제이크가 과거에서 되풀이한 행동들로 인해 맞이한 2011년의 시점은 매우 퇴폐적이었으며 끔찍한 사람들이 끔찍한 범죄를 주고받는 충격적인 시대였지만, 이에 대한 제이크의 심경 변화에 대한 묘사가 상대적으로 적고 미약해 보였기 때문에, 자신이 행했던 선행을 거둬들이는 것에 대한 특별한 사색이나 큰 고민 없이 쉽게 결정했기 때문에, 또한 5/6을 넘는 분량에 투자된 제이크라는 사람의 성격이 한켠의 악함도 없는 선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극적인 심경의 변화로 인해 생기는 괴리감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나는 비교적 최근에 1980년대 당시 세간에 퍼진 공포 소설만 쓸 줄 안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고자 했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킹의 중편집 사계를 읽었으나, 사계중 단 한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세 작품에는 독자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구절이 피상적으로나마 존재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세간의 편견을 떨쳐 내는 것에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포 소설이라는 분야에서 완벽히 벗어난 소설이라는 킹의 자평은 사계보다는 11/22/63에 더 적합한 평일 것이다. 킹은 이런 발전을 꾸준히 이루어내는 작가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에 작품성에 대한 맹렬하고도 꾸준한 침략을 받은 1980년대의 킹과 오랜 기간의 고찰과 노력으로 윤색한 침략을 저지하는 것에 성공한 2010년대의 킹은 문학계에서의 위치만 상석을 차지하게 된 것이 아니라, 문학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능히 상석을 차지할 만한 발전을 일구어낸 작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