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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의 빛을 받으며 고요히 서 있는 금각사. 주인공 미조구치의 집착적인 사랑에 비춰진 금각사는 표지의 그림처럼 금빛으로 빛나며 절대적인 미의 기준으로써 그의 정신 속에 공고히 서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표지의 그림은 사뭇 달라진다. 불길, 불길이 보일것이다. 밑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는 그 불꽃, 금각사를 집어삼키는 미조구치의 불길이...
필자는 <봄눈>을 읽고 작가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동시대 일문학 작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와 작품의 스타일. 흉흉한 최후와 <봄눈>에서 보여준 그의 미의식에 말이다. 그래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가면의 고백>을 <금각사>를 읽기 전에 읽어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필자는 동성애 소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초반부 몇 장만 읽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눈길을 돌린게 이 책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진정한 대표작, <금각사>! 웅진 지식하우스의 빼어난 디자인과 더불어 <금각사>는 필자를 과연 만족시켰다.
이 작품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인식"과 "행동"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결과와 과정의 대립이다. 우리가 살면서 하는 수많은 행동들. 그 행동들은 실행할 당시에는 각자의 뜻과 의도가 담긴 채로 수행되지만, 결국 모든 행동들은 종료된 후 그저 그 행동을 본 사람들의 인식으로 창출된 의미로만 남게 된다. 정작 행동이 일어날 당시의 당사자는 그 행동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거대한 인식의 흐름 속에서 주인공 미조구치는 영원한 "행위자"로밖에 존재할 수 없었다. 그는 심각한 말더듬이였다. 그 말더듬증은 그를 사람들과의 생활로부터 격리시켰고, 그 결과 그는 평생을 일반적인 "대다수의 인식의 흐름" 속에서 살지 못한 채 자신의 "행동"만을 계속하며 살게 되었다. 금각의 미를 확인하며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행위가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이와 대조적인 인물이 미조구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인물인 가시와기이다. 그는 영원한 "인식자"였다. 그의 안짱다리가 그에게서 "행동"을 박탈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을 파악하는데 능한 그는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손쉽게 주무를 수 있었다. "행동"이란 자기 자신에게만 이해되는 고독한 것이라면, "인식"은 필연적으로 타인과 자신을 포함하기에 고독이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시와기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간의 관계가 있었다. 이는 미조구치가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미조구치는 금각사를 불태운다는 그런 거대한 "행동"을 감행한 것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것에 크나큰 파문이 일기를 바랬다. 영원할것만 같던 금각사가, 전쟁 중에도 온전히 서있던 그 금각사가 불타 사라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어떤 "인식"이 뒤따라 온다고 해도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 "진정한 행동"의 존재는 미조구치에게 있어 금각사를 불태우는 길 밖에 없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미조구치는 "행동"의 극한까지 가본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인식"과 "행동"의 관계를 굉장히 인상깊게 보았다. 필자는 예전부터 필자 주변의 사회에 있어 그런 점이 늘 불만이었다. 필자의 행동은 늘 사람들에게 비추어진 순간부터 의미를 상실하고 그들만의 의미, 즉 "인식"이 덧쓰워진 채 이해 되어왔다. 필자는 그런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세상이라고 원망한 적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미조구치처럼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인식"이 지배하는 사회에 큰 회의감을 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년시절 왜소했던 자신에게 콤플렉스가 있었던 미시마 유키오 역시 이러한 사람들의 일방적인 "인식"에 염증이 났을 것이다.
미조구치가 금각사 방화를 준비하기 시작한 7월 1일 저녁이 필자의 생일인 것에도 필자는 거대한 무언가를 느꼈다. 필자가 세상에 나타나 첫 울음을 뱉을 때, 정확히 53년 전 교토에서 누군가가 금각사를 불태우기 위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감각. 굉장히 묘한 기분이었다. 영원함의 상징인 금각사가 조용히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던 와중에도 필멸의 상징인 우리 인간들의 숫자는 늘어났다. 어쩌면 이는 영원히 "인식"의 발 밑을 길 수밖에 없는 "행동"을 암시하는 걸지도 모른다.
오 되게 잘 적었다
행위-인식 구도는 나름 미시마가 애용했던 거 같은데, 봄눈 기요아키-혼다의 관계도 비슷하다고 봄. 금각사처럼 교차가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오 생각해보니 기요아키/혼다도 비슷하네ㄷㄷ
귀중한 감상글 올려주셔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