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고1 개학날이었다.

중 3때 같은 반이면서 엄청 친했던 친구 A랑 같은 고등학교, 같은반이 됨.
얘가 존나 만화책광이었음. 삼국지도 좋아하고.
근데 개학 첫날 이 새끼가 교실에서 삼국지 읽고 있었음. 이문열꺼.
당시엔 나도 책을 많이 안 읽기도 하고, 내가 아는 A도 독서를 그렇게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읽고 있으니까 뭔가 고까웠음.
옆에 가서 존나 깝죽거렸음. 뭔 씨/벌 삼국지를 처읽고 있냐는 둥, 이미지메이킹하냐는 둥.
A는 유비처럼 인자한 웃음 지으면서 내 초딩짓 받아줌. 물론 독서는 계속 못 했지. 계속 지껄이니까.
친해서 그런건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내 행동이 부끄럽고, 역겹다. 걔는 그때도 날 그렇게 봤겠지. 

책따 이야기랑 좀 맥락이 다르긴 한데, 그 당시 혈기왕성했던 나로선 책읽고 있는게 뭔가 위선처럼 느껴졌나봄.
지금은 존나 반성한다. 아마도 책따 시키는 새끼들은 나같은 마인드에서 출발했겠지.
어쩌다 나는 책 좋아하는 사람이 되긴 했는데,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이 나같은 반지성주의 고딩을 잉태하고,

다시 그 바보들이 환경을 더 열악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때부터 책을 읽었고, 세상을 좀 넓게 볼 수 있었다면 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다.
그냥 수능공부만 했지, 사실 그 공부가 왜 중요한지를 안 가르쳐주는 사회잖아. 그러다보니 그 이외에 시간에 책을 읽고 있는 행위 자체를 경시할 수밖에 없지
쓰다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 정리해서 한번 써봐야겠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