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스피노자가 제안하는 것은 선과 악의 구분이 아니라, 좋음과 나쁨의 구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신체에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것이 되기도 하고 나쁜 것이 되기도 한다.
"선악이란... 사유의 양태나 사물을 비교함으로써 우리에게 형성되는 개념일 뿐이다. 동일한 사물이 동시에 선이고 악일 수 있으며, 또 양자와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음악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좋고, 슬픈 사람에게는 나쁘며, 귀머거리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 <에티카>.
따라서 스피노자는 선악 개념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선이란 우리의 활동능력을 증대,촉진시키는 것이며, 악은 우리의 활동능력을 감소,억제시키는 것이다." - <에티카>.
인간이 갖는 자유란 무엇인가?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해서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능력 밖에 일임에도 그것을 과감히 시도하는 것은 도리어 위험을 자초한다. 인간은 날 수 없다.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 사람이 피아노 앞에서 누리는 자유의 크기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수영장 안에서 박태환보다 더 부자유하며, 얼음 위에서는 김연아보다 더 부자유하다. 이처럼 자유란 능력, 즉 자신의 변용능력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을 무작위적 선택에 맡기는 것은 결코 자유가 아니라 충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에 불과하다.
양태들은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고유한 능력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자유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자유롭게 태어나지 않지만,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즉 인간은 자기 본성에 고유한 방식으로 신의 능력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스피노자에게는 정신과 신체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월하지 않다. 인간의 정신과 신체는 동등하다. 신은 무한한 속성들로 자신을 표현하며, 각각의 속성은 동일한 존재의 서로 다른 표현이다. 이러한 속성들은 질적으로 다르며, 지위상 동등하다.
"경험은 신체가 활발하지 못할 경우 정신이 사유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가? 신체가 잠들어 정지하고 있을 때, 정신도 동시에 신체와 함께 무의식 상태에 머물며, 깨어 있을 때처럼 사고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 <에티카>.
데카르트의 생각처럼 인간의 정신만이 능동적일 수 있고 신체는 언제나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신은 신체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정신을 합성하는 관념이 무엇보다 신체변용에 따라 형성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우리는 외부 사물이 우리 신체에 가한 자극에 따라 그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신체가 갖는 관념은 신체의 변용에 대한 관념이다.
"인간 정신을 합성하는 관념의 대상은 신체이거나 또는 오직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연장의 양태일 뿐이다." - <에티카>.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원래 이데아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영혼이 지상에 내려와서 육체 안에 잠시 갇히게 된 것일 뿐이다. 여기서 인간의 영혼은 인간의 육체를 통제하고 명령하는 역할을 맡는다. 플라톤에게는 육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온갖 욕정과 근심으로 가득 채우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중세의 기독교는 플라톤의 이러한 사고를 폭넓게 수용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동물에게 영혼이 존재하지 않다며,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 짓는 것은 영혼의 유무에 있다고 보았다. 동물들에게는 이성적인 능력을 갖는 영혼이 없고, 단지 감각하는 능력만을 지닌 혼이 있을 뿐이다. 동물들은 육체가 사멸할 때 혼까지 사멸한다. 반면 인간에게는 불멸하는 영혼이 있다. 스피노자에게 이러한 주장들은 인간만이 다른 자연만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고안해낸 발상에 불과하다. 정신이 신체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면,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월등하다고 여길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게 된다.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만물의 관계에 있어 신을 초월적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우리가 자연의 질서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질수록, 그만큼 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여기서 스피노자가 제기하는 문제는 아주 간명하다. 세상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창조되었는가, 아니면 이미 그 자체로 존재하는가? 스피노자가 신을 자연이라고 말할 때, 그는 더 이상 신을 세상을 창조한 초월적 존재로 여길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다양한 충동과 자극에 무작위로 반응하는 데 대해 자유롭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한 오인이었다. 자유의지란 자기행위의 이유를 모르는 데서 오는 착각이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행위라면 외적 자극에 따라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능력으로부터 능동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신이 세상을 자유의지로 만들어 낸 창조주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신이 존재하고 활동하는 방식은 자유의지에 따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신적 본성에 따른 것일 뿐이다. 신이 자신을 양태로 표현하는 방법은 무한하다. 스피노자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자연만물을 신의 변용이자 양태라고 보았다. 신이 자연과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든 것은 신 안에 있으며 신의 일부로 이해된다. 자연만물이 신의 변용이라면, 모든 것은 신이 자의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신의 본성에 따라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타의 자연만물과 달리 인간에게만 각별하게 신적인 능력이 부여되었다고 여길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런 발상은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당시 정치지도자들은 종교지도자들과 결탁해 대중을 지배하고자 했다. 그들의 정치적 선동은 마치 종교적 진리인 양 둔갑했다. 정치와 종교가 긴밀하게 결합해 대중을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도구로 삼은 것이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이성이 아니라 선동이었다.
"대중에게 미신보다 강력한 통치자는 없다." - <에티카>.
대중의 이러한 성향을 누구보다 더 잘 간파했던 이들은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대중이 공포에 사로잡힐수록 미신에 빠져 들기 쉽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대중의 약점을 파고드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그것은 모든 야만적인 폭정과 미신이 유지될 수 있었던 진정한 비밀이기도 했다. ☞ 종교의 본질은 권력이다. 구원은 미끼일 뿐이다.
스피노자는 신을 처벌하거나 보상을 내리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사람들이 신의 본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에 대한 인간적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신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신학자들의 주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담이 신의 뜻을 어겨 인류에게 심판이 내려졌다는 주장은, 신의 뜻이 인간에 의해 거부될 수 있음을 승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신의 뜻을 어기는 게 가능한가? 그것은 절대적으로 무한하고 완전한 신의 본성에 어긋나게 된다. 신의 뜻이 거부될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신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아담이 신의 뜻을 어겼다고 여긴 것을 그의 무지함에 기인할 따름이라고 보았다. 성서에서 신이 인간에게 처벌과 보상을 내리는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저자들이 신의 본성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상상한 것에 불과하다. 그들이 주장은 신의 본성상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처벌과 보상의 종교는 무엇보다도 대중의 무지와 공포에 의해 유지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경험하는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알지 못할 때 공포에 사로잡히며, 그러한 공포에 압도당한 이들은 처벌과 보상이라는 외적인 강제에 자신의 판단을 내맡겼던 것이다. 온갖 미신이나 폭정이 대중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중은 공포의 원인을 찾아내 해결하는 것보다는, 미신에 도움을 청하거나 폭정에 자신들을 내맡기는 것이 한층 손쉬웠던 탓이다. 그런 점에서 처벌과 보상의 종교는 무지와 공포에 예속된 사람들 스스로 욕망했던 것이기도 했다.
성직자들 역시 사람들에게 이러한 공포를 주입함으로써 자신들의 종교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신의 말씀조차 명령과 복종의 체계가 되며, 참된 행복은 내세에 받게 될 보상으로 뒤바뀐다. 하지만 이는 종교를 하나의 미신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은 미신에 예속된 노예나 마찬가지였고, 그들에게 처벌과 보상을 약속했던 종교는 그야말로 노예의 종교였던 것이다.
ㄹㅇ 많이 겹친다
선악을 해체한 자리에 좋음과 나쁨을 놓고
선이 활동능력의 증대 촉진시키는 것이라 보면서 인간의 본질이 욕망이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자유로 향하는 길 그리고 자신의 능력의 주인으로서 행위할때 일어나는 능동정서 얘기 등등은 니체의 힘에의 의지랑 판박이처럼 보임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기독교를 노예적인 종교라 까고
신체와 현세를 중시하고 등등
다 니체의 핵심적인 주장들인데 하긴 전통철학이 이런 생각들과 완전 정반대고 둘 다 그런 전통철학에 반대하는 쪽이니 큰 틀에서 비슷한건 당연한가
니체에게 부족한 논리를 스피노자를 통해서 메울수있는것 같음. 그래서 들뢰즈가 그 두명을 자신의 철학적 기반으로 삼지않았을가 - dc App
그런듯 ㅇㅇ 근데 스피노자랑 반대되는 지점도 있는거 같고 니체만이 한 얘기들도 있는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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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거 모바일로 보면 문단 나누기 안되있네 왜이러노
철알못이지만 스피노자 알면 알수록 개좋다.
와 스피노자 뭐야ㄷㄷ 에티카 읽어봐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