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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 모두가 그러겠으나 나는 유독 내 느낌이나 감정을 언어로 정제하기 어렵다. 호오는 분명한데 이게 어째서 호인지 저건 어째서 오인지를 설명하려고만 하면 그 몽글몽글한 느낌들이 언어에 머무르지 않고 한데 날아가 버리곤 만다. 그런 연유로 내게 있어서 남에게 내 호오를 기반으로 무언가를 추천하기란 사실 굉장히 꺼려진다. 그런데 이 책을 추천하는 데는 그러한 꺼려짐이 느껴지지 않는다. 확신이 있다. 소설을 읽어버릇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아름다운 소설에 빠져들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소설은 1956년 여름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스티븐스라는 사람으로 반평생을 달링턴이라는 대저택의 집사로 보내온 이다. 그러한 스티븐스가 약 20년 전의 동료였던 켄턴의 편지를 받고 그를 찾아가는 6일간의 생애 첫 여행을 하면서 겪는 일들, 그리고 그 일들을 통해 회상하는 스티븐스의 인생이 주된 내용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정말로 내 옆에 온 몸에서 품위가 느껴지는 한 노집사가 있는 것만 같은 생생함을 만끽할 수 있다. 전형적인영국식 블랙유머는 덤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한 개인의 인생에 대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로 평한다. 그러한 평에 토를 달 마음은 없다. 누가 뭐래도 이 소설은 집사로써 주인에게 자신의 의사와 사고를 맡겨버린 결과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서까지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오래된 동료를 만난 끝에 아주 조금이나마 자기 삶에 변화를 창조해내는 한 개인의 이야기니깐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그저 개인의 이야기로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스티븐스의 주인인 달링턴 경은 온유하고 아량이 넓은 전형적인 영국 신사이지만, 결국은 나치에게 이용당해 매국노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이에 대한 스티븐스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달링턴 경의 노력이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어리석기까지 했음을 세월이 입증해 주었다고 해서, 어떤 면으로든 어떻게 내가 비난받아야 한단 말인가? 내가 그분을 모셔 온 세월을 통틀어, 증거를 저울질하고 나아갈 길을 판단한 것은 바로 그분 자신이었으며, 나는 다만 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지극히 온당하게 움직였을 분이다. 그리고 가히 '일등급'이라 인정받을 만한 수준에서 내 능력 닿는 데까지 직무를 수행한 것밖에 없다. 오늘날 나리의 삶과 업적이 안쓰러운 헛수고쯤으로 여겨진다 해도 내 탓이라 할 수 없다. 나에게도 응분의 가책이나 수치를 느끼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 스티븐스는 그저 집사라는 자신의 위치에서 주인의 행보를 보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여기에 스티븐스가 어떠한 가책과 수치를 느껴야 하며, 어떻게 스티븐스에게 책임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스티븐스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 하녀 둘을 해고했을 때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직감했듯이, 개인의 사고는 또다른 개인의 사고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  스티븐스는 그토록 갖추고자 노력하였던 집사의 품위는 있을 지 몰라도, 인간 개인으로서의 품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스티븐스는 시대의 한계나 직업 상의 한계로 인해 어느정도 정상참작이 될 여지라도 있다. 그러나 2020년의 한국 사회에도 스티븐스와 같은 이들이 차고 넘친다.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은 인민들이 사회의 앞날을 결정하고 인민들이 자신의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는데 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 사회는 자신들이 뽑은 정당과 정부의 잘못에 대해 인민들이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되려 적반하장으로 그들만이 정의이고 옳은 길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어느 날 스티븐스는 주인 달링턴 경의 부름을 받고 응접실에 들어선다. 그곳에는 여러 신사들이 앉아있고 그중 한 명이 스티븐스에게 여러 정치, 경제 현황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질문한다. 당연히 스티븐스는 그러한 문제에 도움을 드릴 능력이 없다면서 죄송하다고 답한다. 비슷한 문답이 계속된 끝에 질문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여기 이 사람은 이런 문제들에서 우리를 도와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 나라의 중대한 결정들을 여기 이 사람과 그의 동류인 수백만 대중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의회 제도에 묶여 있는데도 수많은 난제의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게 좀 놀랍지 않습니까? 뭐, 전쟁 캠페인이라도 기획하신다면 '어머니 연맹 위원회'에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얘기다. 사실 합리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과 실행을 원한다면 민주주의는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앞서 얘기했듯 인민이 인민의 의사로 이 사회의 향방을 결정하는 데 있다. 때때론 그 결정이 잘못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반성하고 성찰하여 다시금 힘을 합쳐 사회를 더 나아지게 만들면 될 노릇이다. 그런데 반성도 성찰도 없다면 민주주의가 다른 정치체제보다 더 낫다고 주장할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작은 인민들이 스스로 책임을 지기로 마음먹는 데서 비롯한다. 비단 특정 정당의 지지자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해 모두가 그러한 책임에 민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록 스티븐스가 책의 말미에 약간의 성찰을 얻었다고 하나 그는 이미 노년에 접어든 사람이다. 그의 성찰은 너무 늦었다. 한국의 인민들이 그의 전철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나날'이 다 사라져버리기 전에 개인적 차원에서나 구조적 차원에서나 책임에 대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