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일 2020/10/23
- 45일차 2020/12/06
- 오늘 읽은 책
1. 에덴의 용 - 칼 세이건 - 사이언스 북스, 임지원 역
190p ~ 230p - 41p
2. 수용소 군도 - 알렉산더 솔제니친 - 열린책들, 김학수 역
1p ~ 53p - 53p
- 45일차
연인과 광인의 뇌 속에는 소용돌이가 친다고 한다.
개는 후각 처리 능력이 압도적으로 발달 된 동물이다. 미세한 냄새의 흔적만으로도 온갖 냄새의 차이를 구별해서 목표를 추적한다.
후각을 통해 세상을 지각한다. 후각능력이 압도적으로 발달한 개와 달리 인간은 시각능력이 압도적으로 발달하였다.
수십 수백의 미세하게 다른 얼굴을 곧바로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미세한 생김새의 차이를 압도적인 시각 능력으로 구분한다.
우리 인간은 시각을 통해 세상을 지각한다.
신기하게도 왼쪽 눈과 오른 쪽는 각각 우뇌와 자뇌에 연결되어있는데, 눈 양쪽에 다른 글자를 보여주면, 뇌에서도 다르게 정보를 처리한다고 한다.
이 때, 좌뇌와 우뇌를 연결시키고 정보를 교환하는 뇌량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뇌량이 절단된 사람에게 실험을 하나 해보았다.
양 쪽 눈에 각각 디씨 - 독서갤 이라는 글자를 보여줬을 때,
오른쪽 눈으로 본 독서갤 이라는 글자를 이해했지만, 왼쪽 눈으로는 글씨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 글자가 무엇이었냐 물어보면 네캎 독서갤? 유튭 독서갤? 이라고 대답했다.
즉, 좌뇌는 글자를 이해하는 반면, 우뇌는 글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본 글자를 써보라고 했을 때, 그는 디씨 - 독서갤이라는 모든 단어를 적어냈다.
좌뇌와 우뇌에 연결된 각각의 두 눈이 서로 다른 처리 능력을 보이는 것을 볼 때,
눈으로 본다고 해서 다 똑같은 정보 처리를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있다.
우뇌를 절제한 환자의 경우 음악을 듣고 표현하는 능력을 잃었지만, 악보를 읽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좌뇌를 다친 환자는 생전 쓰지 않던 시를 쓰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 우뇌를 다쳤을 경우 라임을 넣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상인의 양쪽 눈에 다시 각각 다른 글자를 보여주고 어떻게 정볼르 통합하는지 관찰하는 실험에서 뇌 활동을 보자면,
우뇌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좌뇌는 활동을 하였다.
이를 볼 때, 좌뇌는 정보의 이해와 체계화는 담당하고, 우뇌는 경험과 표현, 패턴인식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가 경험했다고해서, 그것만으로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며, 이해했다고 해서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좌뇌와 우뇌는 인간의 지각능력을 복잡한 패턴으로 양분하고 있고, 이를 연결시켜주는 부분이 바로 뇌량, 좌뇌와 우뇌의 다리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우뇌에서 들어온 정보를 이 다리를 통해 좌뇌로 보내 처리한다. 그리고 다시 그 정보가 우뇌로 돌아가 표현된다.
마치 프로 악기 연주자들이 처음보는 악보를 흘낏 보고도 충분히 연주할 수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꿈은 분석활동이라기 보다, 패턴 인식의 활동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억압된 욕망의 표출이라는 프로이트의 이론보다 꿈 그자체가 상징적 언어라는 융의 이론이 더 옳은게 아닐까?
칼 세이건은 렘 수면시 음경, 음핵의 활성화?를 근거로 프로이트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꿈이 신피질의 억압 때문인지, 신피질의 비활성화 때문인지는 가설로 남겨두었을 뿐이다. 이는 다른 뇌과학책이 밝혀줄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목소리를 보앗네' 에서 눈으로 본 것을 표현하는 명사로부터 문법과 관념을 이해하게 된 아이의 일화를 읽고
'반지의 제왕' 에서 눈으로 본 것을 활용한 표현과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한 지식과 지혜의 습득을 읽고
'에덴의 용'에서 시각활동으로 본 뇌의 양분된 지각 활동을 읽어보니
두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듯 하다.
솔제니친은 수용소라는 나라의 퍼져있는 군도 속에서 그 두눈으로 목격한 사건들을 써내려간 이 책을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기대와 희망을 품고 남겨놓았다.
기록을 지우고 뒤바꾸려는 사람들의 손아귀에 사라지지 않고 남은 이 기록의 서문부터 의미심장한 충격을 느꼈다.
1장은 체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솔제니친이 들려주는 체포의 과정은 체포라고 부를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는 납치였고, 사기였고, 배신이었다. 체포학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고안한 각양각생의 체포방법론들을 가지고
죄 없는 이들을 순조롭게, 무탈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그 나라로 초대하였다.
기관의 정보력은 체포의 과정만을 들어보아도, 가히 충격적일 정도였고, 그 정보력으로 일삼는 체포는 더욱 충격이었다.
이것이 실화라니,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체포의 과정을 잡혀간 이들의 입장에서 서술하였다는 점이다.
죽은 아이의 관에서 아이의 시신을 던져버리고 수색을 할 정도로 무차별라고, 벌건 대낮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접근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요원의 행동들뿐 아니라
그 나라의 입안으로 들어갈때 까지 조차, 정의로운 기관에 대해 순진무구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심리를 기록해놓았다.
게중에는 혁명과 저항에 도취되어있지만, 자신은 투옥되지 않았기에 저항도 할 수 없었던 것을 괴로워한 '혁명가'들이
수용소에 있다 풀려난 사람들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어? 라며 일갈하거나, 8년간의 비참했던 도망 끝에, 체포가 결국 해방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 성직자의 이야기도 있었다.
이런 모순과 역설과 불합리함의 이야기들이 수용소 군도라는 책 속에 담겨있는것일까? 고작 50페이지를 읽으면서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체포되는 이 어느 누구도 저항하지 않았다.
그 혁명가의 말처럼, 저항하지 않았다.
솔제니친은 그 이유가 체포당할 당시, 그 당혹감을 표현할 말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썻다.
내가? 무엇때문에?
나는 죄가 없으니 공정한 심판에 의해 무죄가 증명될꺼야,
그리고 적어도 10년형을 받는다.
수용소라는 이름의 그 나라는 이토록 죄없고 순진한 사람들의 나라였다.
오늘까지 달린 거리
2737p / 42195p (약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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