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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은 일본 입장에서도 엄청난 도박이었다. 종래 중일전쟁에 이어 엄청난 생산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도 전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개전 직후 일본 본토 및 점령지와 식민지의 공업 생산력 확충을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조선에는 발전소, 철도 등 많은 기반시설이 세워지고 공장 수와 공산액도 증가하였다. 이를 토대로 일부 경제사학자들은 전쟁특수로 조선 내 공업이 발전하였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짚어볼 부분이 많다. 남부와 북부의 공업생산력 차는 뒤로 미루더라도, 양적인 팽창이 질적 팽창으로 이어지지 않은 점이 근본적 문제였다. 조선의 공업은 중일전쟁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발달 정도가 미미하였고, 그나마 발전한 것도 가내공업이나 영세동업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제반 시설을 늘리고, 생산력 확충을 도모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기술인력의 부족 역시 심각한 상황이라 항공기나 선박에 들어가는 엔진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한 총독부의 인위적 기업정비와 자금의 절대적 부족은 많은 수의 조선인 자본가들을 위험에 몰아넣었다. 결국 조선의 공업은 전적으로 일본 공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박흥식의 항공기 회사나 김연수의 회사 등이 망한 것 역시 친일파에 대한 민중의 증오와 더불어 이러한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조선인 대자본가들은 민중이 전적으로 수탈당하고 있는 와중에도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자본축적을 하는 반역사적인 행위를 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업은 원천기술력을 갖고 있지 못했고, 해방 이후 한국에는 제대로 된 중공업 기술력을 지닌 회사가 들어설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 시기 일제의 조선공업화 정책은 완벽한 실패로 귀결되었으며, 헌국은 한국전쟁 후 60년대 초반에서야 경공업을 중심으로 초보적 공업능력을 갖출 수 있었고, 해방 이후 중공업 국가로 거듭나기까지 40년 이상을 경제발전에 힘을 쏟아야 했다. 이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전쟁기 경제발전의 허상을 잘 드러내주는 부분이라 할 만 하다.
절판한 것처럼 생겼네
절판되진 않았을걸?
재미있어 보이네 - dc App
읽어봐야겠네 ㄱㅅㄱㅅ
좋은책이네
ㅊㅊ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