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근대 철학의 목적론과 진화주의 ‘너머를’ 사유한 사상가
총 4부로 구성된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헤겔의 스피노자 해석을 정리하면서 시작한다. 1부 ?헤겔, 스피노자의 독자?에서 마슈레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헤겔은 ‘절대자’를 사유하려 했다는 점에서 스피노자를 높게 평가했다. 헤겔이 보기에 “철학함을 시작할 때는 우선 스피노자주의자가 되어야 한다”.(37쪽) 하지만 긍정적인 면은 여기까지다. 헤겔은 곧바로 스피노자를 비판한다. 헤겔에게 (데카르트를 계승한)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방법’은 수학적 추론에서 비롯한 형식적?추상적 방법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스피노자의 절대자(즉 실체)는 시초부터 이미 충만하게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운동도 하지 못하는 것이며, 실체에서 속성으로, 다시 양태로 이행하는 스피노자의 체계는 실재성이 줄어드는 퇴락의 체계다. 그리고 헤겔은 스피노자가 실체와 속성, 양태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잘못 이해한 것은 ‘모순’과 그 모순이 운동시키는 ‘부정의 부정’이라는 계기를 사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스피노자 체계에는 변증법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슈레는 이런 스피노자의 모습은 헤겔이 ‘상상적으로’ 만들어 낸 형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스피노자를 자기 철학 체계의 한 계기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의 사상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2부 ?기하학적 방법에 따라?에서 3부 ?속성의 문제?를 거쳐 4부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까지 마슈레는 스피노자의 저작과 헤겔의 비판을 면밀하게 독해함으로써 헤겔의 비판을 하나하나 논박한다. 헤겔의 주장과 달리 스피노자는 ‘기하학적 방법’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았고, ‘방법’이 확립되어야만 사유를 전개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에도 반대했다. 스피노자에게 사유는 방법과 관계없이 일단 시작하고, 그런 뒤 점진적으로 자신을 전개한다. 「윤리학」의 서술 방식도 마찬가지다. “「윤리학」은 일관성의 이상에 집착하면서 이미 확립된 순서를 전진적으로 탐구해 가는, 선형적이고 동질적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획일적으로 참된 서술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기인식, 발생의 현실적인 운동에 따라 나아가면서 자신의 필연성을 구성하는 인식의 실재적인 과정이다.”(89쪽) 여기서 스피노자는 헤겔과 매우 비슷한 견해를 제출하고 있지만, 스피노자 사상을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평가절하해야 하는 헤겔로서는 이 같은 유사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다른 한편, 헤겔에게 스피노자 철학은 ‘실체의 철학’, 절대자에 대한 철학이다. 그런데 스피노자가 실체를 완결되어 있고 충만한 것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오히려 속성과 양태는 비실재적?비주체적인 것, 아무런 능동성도 지니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헤겔이 스피노자 체계를 ‘퇴락의 체계’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마슈레는 헤겔의 비판이 스피노자 체계를 완전히 오해한 결과라고 비판한다. 스피노자의 ‘실체-속성-양태’ 체계는 실재성을 점차 상실해 가는 퇴락의 체계, 유출의 체계가 아니다. 속성은 실체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실체의 변용인 양태 역시 실체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속성과 양태는 실체에 외재적인 것 혹은 실체보다 덜 실재적인 것이 아니며, 실체의 절대적 역량을 이어받은 양태는 고유한 실재성을 지닌다. 그리고 각각의 양태들인 ‘독특한 사물들’은 저마다 실체의 무한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헤겔 체계에서 요소들이 위계적 종속 관계를 맺고 있는 것과 달리 이 ‘독특한 사물들’ 간의 관계는 직접적 동일성 관계다.
헤겔이 지적했듯이 스피노자의 체계에는 ‘모순’과 ‘부정의 부정’이 부재한다. 하지만 마슈레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이 부재가 스피노자를 헤겔의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헤겔의 ‘부정의 부정’ 개념은 정신의 운동이 어떤 ‘목적’에 따라 진행한다는 점, 그리고 그 운동 안에서 통합되는 모든 요소가 시간적?논리적 관계에 따라 위계화된다는 점을 함축한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는 헤겔식의 ‘부정’이라는 계기가 부재하며, 그리하여 목적론 없는 변증법, “유물론적 변증법으로서의 실체의 변증법”(367쪽)을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헤겔에게는 변증법이 거꾸로 서 있다면”(칼 맑스), 이는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이 목적론이라는 한계 안에 위치해 있고 역사(더 특수하게는 철학사)를 진화주의적 관점에 따라 고찰하기 때문이다. 반면 스피노자는 헤겔과 유사한 사유 과정을 거치면서도 ‘목적’이라는 관념을 제거함으로써 헤겔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헤겔에 앞서 이미 헤겔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철학은 철학자끼리 비교하면서 보는게 공부가 잘되는거 같음
이 책은 헤겔 까는 책이지만 스피노자 보면서 헤겔도 같이 어느정도 알 수 있어서 좋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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