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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테드 창 좋아하는, 요즘은 책 잘 안 읽는 지나가던 씹덕인데

념글에 라노벨 이야기가 있길래 읽어보고,

아 이거 좀 이상한 오해하겠다 싶어서 설명충 짓을 좀 하겠읍니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라노베는 예시로 나온 두 작품보다 조졌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씨발 그럼 그게 라노베 평균 이상이라고??? 같은 생각을 하실 텐데

그런 의미가 아니고,




저 작품들은 저걸 독자들이 보면 어이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훨씬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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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슬레이어(속칭 인살)은...

좀 간단히 말해서, 병맛 코미디 액션(주성치 영화 같은 거)을 활자화한 물건에 가깝습니다.



일단 작가 이름이 브래들리네 필립이네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건 이 작품은 사실 영어로 쓰여졌으며, 일본어판은 허가를 받고 번역 연재되는 겁니다.


...라는 뭔 톨킨이나 푸코 비스무리한 컨셉질을 이 작품도 하고 있습니다.

직역을 했다는 컨셉으로 되도 않은 엉터리 표현을 쓰는 부분도 많습니다.

(예컨대 '진짜 살벌하다'를 '실제 살벌함!'으로 일부러 딱딱하게 쓰는 식)

즉 작가 이름부터가 개드립입니다.



표지에도 나왔지만, 이 작품의 연재처는 트위터입니다.

예, 저 문단처럼 보이는 단락은 사실 단락이 아니고, 트위터에 한 번에 올라오는 글의 단위입니다.



그니까 문장이 저 모양인 건, 기본적으로 트위터 글자수 제한에 맞추기 위해서 똥꼬쇼를 한 산물이며

저 끊없이 이어지는 "이얍-!"은 트위터에서는 '폰 화면이 '이얍'으로 가득 차 있는'

타이포그래피 연출 비스무리한 꼴이 됩니다.

종이에 옮기니 꽤나 황당해 보이지만, 사실 연재 매체에 적합한 표현방법을 나름 연구한 결과물이었죠.

그걸 알아도 황당한 게 맞고, 그것도 의도한 바지만.



해당 작품의 컨셉을 굳이 표현하자면, '왜곡된 와패니즈 감성과 사이버펑크 판타지 액션의 조합' 정도가 됩니다.

즉 닌자는 모탈 컴뱃 같은 미국 게임에서 흔히 등장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악마 비슷한 존재들이고,

시민들은 대부분 자양강장제에 들어 있는 마약에 중독당해 있으며, 범죄조직은 클론 야쿠자라는 걸 찍어내며 활동하고,

스모는 왠지 WWE 비슷하게 변질되어 있고, 챠도(다도)는 사실 암살술이고, 주 짓수의 필살기는 서머솔트 킥이고...


이런 식으로, 진지한 사이버펑크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병맛 와패니즈로 넘어가는 걸 매 문단마다 반복하는 게

이 작품의 특장점이자, 다른 라이트노벨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라 할 수 있겠읍니다.



그리고 읽다 보면 느끼는 거지만, 이 작가들은 조낸 진지합니다.

자세히 보면 매 화 매 장면이 사이버펑크/액션 영화의 클리셰의 패러디이면서,

그걸 작가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가장 멋있는 형태로 표현하고자 매우 노력을 기울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뉴로맨서의 그 훌륭한 문장들이나, 얼터드 카본의 기괴한 설정과 간지에 비할 건 못 되겠지만,

그래도 장르 클리셰에 대한 재해석이나 존중은, 해당 장르 팬이라면 박수를 쳐 주기에 아깝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옴니버스 구성에 가깝습니다)마다 '세계관 내의 소시민'에 해당하는 인물을 투입시켜서

이 세계관이 얼만큼 치밀하게 장르 클리셰를 재구축했는지 섬세하게 보여 주죠.



다만 그걸 저 일본어와 영어가 마구 뒤섞인 문체로, 온갖 오도방정을 떨면서,

정신 나간 와패니즘 설정과 슬랩스틱에 가까운 액션을 섞어서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병맛이 배가되면서도, 팬덤 입장에서는 곱씹어 볼 요소가 많은 작품입니다.



제가 이 작품의 팬이 된 결정적인 에피소드가... 레이지 어게인스트 토후(두부) 편이었지 싶은데

산업 재해로 손을 잃었지만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노동자라는 주인공 설정,

그럼에도 그 노동자가 일하던 회사가 서민들에게 가장 양심적으로 식재를 공급하고 있던 회사였다는 구성,

폭동이 일어나지만, 그 폭동이 사실 기업에서 몰래 선동한 거였다는 사이버펑크 클리셰의 활용,

최종결전 중 우연히 음악이 켜지자, 반쯤 망가진 오이란드로이드(접대용 가이노이드 같은 거)들이

프로그래밍된 대로 싸움터 한가운데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는, 환상적인 묘사...



그리고 그 와중에, '눈이 마주치면 굳어버리는 거라면 뒷걸음질을 치면 된다!'라는 기발한 발상(?)으로

적을 날려버리는 닌자 슬레이어의 액션까지, 완벽하게 조화된 걸작이었습니다.




즉 닌자 슬레이어의 팬들(속칭 헤즈)은, 실제 주성치 영화 팬들과 비슷합니다.

주성치 영화 팬들이 주성치 영화 중 흥행작들을 보면, 흔히 '아 너무 순한맛인데' 라고 투덜거린다죠.

주성치 영화에서 소림 18나한이 나와서 몇 명은 앞에서 춤을 추고 있고, 나머지는 주성치를 밟고 있을 때

그걸 두고 팬들이 '야 뭔 액션이 이따구야???' 라고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비명소리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연출이 나오지 않으면, 황당한 기술들과 더 황당한 공략법이 나오지 않으면,

닌자 슬레이어 팬들은 이번 화는 너무 순한맛이라고 투덜거릴 겁니다.


즉 여러분이 보고 역겨워하셨던 포인트 모두가, 닌자 슬레이어의 가장 큰 재미 포인트인 셈입니다.



인살은 정말로 병맛 코미디 액션이라는 장르 자체의 벽만 넘으면 낄낄대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좀 길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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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하면, 이 '내 여동생은 한자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 저도 1권만 읽고 던진 물건이기는 한데,

그래도 제 개인적으로는 꽤나 인상에 남은 물건이긴 합니다.

왜냐하면 고삐리였던 저한테 'SF의 사회상이란 어떤 식으로 그려져야 하는가?'를,

인살 이전부터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던 물건이거든요.



저 짤방에 나오는 장면은, 작중의 '23세기 문학'이 얼만큼 망했는지를 표현하기 위한 기법 중 하나거든요.

본편의 문장은 좀 더 멀쩡합니다.


정확히는, 이 작품도 23세기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설정이므로 작품의 문장은 실제로 저거 비슷하겠지만,

본편은 그걸 현대 일본어에 맞게 번역한 작품이라는 설정입니다.

왜 짤방 두 개가 나란히 번역 컨셉질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작중의 23세계는, 오타쿠 문화가 메이저가 되고 일본어에서 한자 병용표기가 완전히 사라진 황당한 사회입니다.

문학 역시 백화문을 쓰자는 언문일치 운동 같은 게 계속 진행된 결과, 일상 표현에 한없이 가까운(?) 짤방 꼴이 되었다는 설정이죠.

21세기의 휴대폰 소설(대충 일본판 인터넷 소설)도 고전문학 취급을 당하는, 독갤 입장에서는 디스토피아네요.



근데 이런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디테일이 꽤나 붙어 있습니다.

대단한 것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 머릿속에 천착되어 있는 이미지가 딱 하나 있는데,

소설의 첫 장에서 선거 광고로 슬쩍 등장하는, '2차원 정치가'라는 해괴한 설정입니다.


씹덕 문화가 너무 보편화된 나머지, 정당도 대표를 가상 캐릭터에게 맡기고 있다는 해괴망측한 설정이죠.

저도 처음에는 '이거 뭐임 ㅋㅋ' 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근데 점점 생각해 보면 볼수록,

'2D 캐릭터는 오버더라도, 한 정당의 대표자가 '사람'이어야 할 이유가 있어?' 라는 생각이 들더니

정작 현실이 조금씩 이와 비슷한 기술들을 보여주더라고요.


AKB48 멤버들의 외모를 조금씩 합성해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 '에구치 아이미'가 광고에 사용된다거나.

버추얼 유투버라는 새로운 직종이 소개된다거나.

인터넷에서 한참 딥페이크 기술을 사용해서 오바마 연설문을 합성하는 시연으로 뜨거웠을 때,

제가 테드 창의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다음으로 이 작품을 떠올렸던 이유입니다.


가끔 진짜 이 작품 미래에서 온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렇다고 이 작품을 고평가할 건덕지는 전혀 없습니다.

들어보니 그나마 이 작품의 장점이라는 게 일본어 문법을 사용한 개그라던데,

그런 게 번역본에서 남아 있을 리가 없죠. '배계, 삼가 올립니다' 가 뭔데 씹덕아.


하지만 그래도, 제 인생에서, 특히 제가 SF를 읽을 때 주의를 기울이는 포인트들을 만들어주는 데 있어

이 작품만큼이나 커다란 영향을 준 작품이... 의외로 별로 없어요.

이후로도 제가 책을 읽을 때마다 기억에 남는 건, 거창한 메시지나 그런 게 아니라

드문드문 등장하는 굉장히 사소한 디테일들이 되더라고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머서주의 같은 거.



그래서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상관없이 제 인생에 꽤 큰 영향을 준 책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 두 짤방은 작가가 어떻게 하면 작중의 세계관을 호소력 있게 전달할지를 치밀하게 연구한 결과

저런 방식을 사용하는 게 가장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산물입니다.


작가의 문장력이 조진 게 아니라, 저게 씹덕들에게는 먹혀서가 아니라,

저게 먹힐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려고 나름 최선을 다한 모습이라는 거죠.



그래서 두 작품 모두 다른 라노벨들과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라노베 중에서는 굉장히 SF 스타일이 강한 작품들에 속해요.

과학적 요소가 풍부하다는 게 아니라, '외삽적 방법론'을 기본 스탠스로 삼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대부분의 라노베는 저것보다 멀쩡한 문장을 쓰고,

바로 그래서 더 재미가 없고, 더 내용이 없으며

더 생각할 건덕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라노벨을 읽습니다.

명작에서 생각할 거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고, 아마 제가 발굴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상에 대해

전문적인 비평가들이 논문 수백 편 분량의 연구를 이미 끝마쳐 놨을 게 분명하죠.

제가 열심히 고민한 감상은, 거인의 어깨 위가 아니라 거인들 1개 연대가 행군한 길에 대한 장절한 뒷북입니다.


너무 삐딱한 감상 아닌가 싶습니다만,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실제로 찾아보면 항상 나보다 잘 '느끼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치만 라노벨은 읽다 보면... 기대도 안 했던 독서에서, 되게 유치하고 황당한 데서 공명이 와요.

그런 걸 발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겠죠.

저는 어릴 때 문방구 쓰레기통을 뒤져서 유희왕 카드를 모았고, 그걸로 덱을 만들었습니다.

제 덱은 친구의 도서관 엑조디아보다도, 보옥수보다도, 히어로 제로 덱보다도 제게 사랑스러운 덱이였어요.

쓰레기통에서 건졌으니까, 내가 연구하고 내가 만들었으니까.




개인적으로 라노벨과 라노벨 아닌 작품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아, 이거 거기서 나온 거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삼습니다.

라이트노벨은 몇 가지 유치한 클리셰를 유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품을 그 속도로 쓸 수도 없고,

설사 쓴다고 해도 상업적인 이유로 팔리지도 않거든요.


하지만 그 클리셰를 즐길 수 있다면 어떨까요.

작가는 클리셰를 가져오고, 클리셰를 패러디하고, 클리셰를 뒤집습니다.

아무리 한심한 라노벨이라도, 단 한 군데에서는 작가의 재해석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걸 찾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걸 분석하면서 '아, 이건 어느 작품에서 나온 요소를 가져온 거구나',

'이 작품의 테마는 작가의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구나', '이 클리셰를 이런 식으로 재해석하다니, 흥미로운걸'

이라고 느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재미가 되니까요.



빙과가 라이트노벨이냐는 질문이 여기 가끔 올라오던 모양이더라고요.

이 질문에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만약 열혈계에서 '야레야레'를 외치는 주인공으로 넘어가는 오타쿠 주인공 상의 변화 과정을 이미 알고 있다면,

'캐릭터의 말버릇'이라는 일본 라이트노벨 캐릭터 조형의 클리셰를 많이 봐 왔다면,

폐부 직전인 동아리에서 엉뚱한 짓을 한다는 흔한 구성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라노벨이 맞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면, 그건 라이트노벨이 될 수 없다'라고.



'육화의 용사'는 '마왕을 물리치러 떠나는 용사 파티' 클리셰를 뒤집어, '클로즈드 서클 미스테리'로 재구축한 작품입니다.

'해한가'는 성장 소설의 판타지 요소를 어디까지 몰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실험입니다.

'미얄 시리즈'는 일본식 신전기 소설에 한국의 전통적 전승들을 조화시키고자 하는 시도였습니다.


물론 '여왕 폐하의 해군'이나 '익스팬스: 깨어난 괴물'이 스페이스 오페라로 더 재미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미니스커트 우주해적'은 그 장절한 판타지가 배제된 스페이스 오페라 세계관도 여고생을 넣으면,

어디까지 무게감을 빼낼 수 있는지를 탐구했고, 그 도전 정신이 저는 존경스러워요.

너무 도전정신이 강해서 결국 정발이 중단되었습니다만. 제기랄.




그래서 라노벨을 왜 읽냐고 묻는다면, 이런 겁니다.



그게 못나서, 실패할 게 뻔하고 몇몇 사람들 빼고는 받아들일 수 없는 도전을 계속해서,

그렇게 점점, 씹덕들의 어깨 위에 서게 되는 것이 재미있어요.





장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