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가오싱젠과 평론가 류자이푸가 대담을 나눴어.

나도 그 글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기 때문에,

독갤 여러분이랑 공유하려고 번역해서 가져왔어.


오역, 오타, 비문 지적 적극환영!!


출처: 劉再復:文藝復興取決於個人|本社編輯部 (master-insigh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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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퇴락과 문예의 부흥: 가오싱젠과 류자이푸의 대담

20141028

류자이푸: 6년 전, 저는 홍콩에서 가오싱젠과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20세기로부터 빠져나와였지요. 그때 우리는 지금부터 시작해 20세기에 대해 크게 반성을 하고, 20세기의 사고와 사조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곧 우리가 어떻게 문학을 해야하고, 마르크스주의나 자유주의 같은 의식 형태의 틀에서 벗어나고, 문학 기록의 맥락과 작별하고, 진실된 인성, 인류의 진실된 처지와 마주해야 할지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예술의 관점에서도 20세기의 사상과 작별을 해야하는지 말하겠습니다.


20세기에는 두 가지 중대한 성취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과학의 비약적 발전이었고, 둘째는 식민제국주의 체계의 붕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20세기는 재난의 세기였고, 광분의 시대였습니다. 그 재난과 광분은 주로 세 방면에서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는 이성의 퇴락이고, 둘은 인성의 퇴락이고, 셋은 아름다움의 퇴락이었습니다. 이성의 퇴락부터 말하자면, 18세기 계몽운동 이후 인류는 이성을 숭상했지만, 20세기가 되면서 이성에 반대하는 광분의 사조가 출현했습니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도 나타났습니다. 양차 세계대전은 우리 모든 인류 집체의 사망 체험이었고, 또 인류가 주화입마하여 피와 살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20세기의 인류는 문화도 이성도 문명도 다 땅에 떨어졌습니다.


인성의 퇴락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슈펭글러는 일찍이 한 세기 전에 <서방의 몰락>에서 예언을 하여 세계에다가 경고를 하였습니다. 그는 가장 위험한 것은 폭력, 마약, 그리고 성 이 세 가지라고 보았고, 이 세 가지가 인성을 퇴락하게 만들고 서방을 몰락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서방 세계는 그의 경고를 전혀 중시하지 않았죠. 사실이 증명하건대 그의 예언은 굉장히 정확했습니다. 미국에서 현재 플로리다 주와 워싱턴 주는 대마를 심는 것을 합법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동시에 지구화가 시장의 조류와 금전의 조류를 가져오자 모든 인류도 변질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정신은 돈을 얻는데 쏠려있지요. 인류는 또 다른 생물로 변하고 있습니다. 금전의 동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동방에서 서방까지, 속된 기운과 돈 냄새가 모든 것을 덮고, 인간은 점점 더 탐욕스럽게 변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 또한 크게 쇠락하고 있습니다. 가오싱젠의 발견과 경고가 굉장히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지요. 그는 프랑스에 사는데, 그때 파리는 예술의 도시였고 많은 유행이 그곳에서 시작되었기에 가오싱젠은 일찍이 이런 문제를 발견하였습니다. 피렌체에서 시작된 문예부흥의 예술이 20세기의 예술로 와서는 죄다 퇴락하고 있는 겁니다.


그가 이 문제에 대해 논한 것을 세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겠습니다.


1단계는 8, 90년대입니다. 그는 두 권의 책을 씀으로써 경고를 날렸는데, 하나는 <없음주의>(沒有主義)이고, 또 다른 하나는 <또 다른 미학> (另一種美學)이었습니다. 기본적인 내용은 이러합니다. 르네상스부터 20세기까지 500년 동안 지구상의 가장 선진적인 과학, 기술, 철학, 문학, 음악, 회화, 조각 등 모든 것은 유럽이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20세기가 끝나면서, 유럽의 아름다움이 퇴락하기 시작하고, 유럽이 인류 예술에 공급한 가장 선진적이고 가장 찬란한 것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가오싱젠은 굉장히 명확한 언어로 이를 설명하는데요, 현대의 예술은 관념으로 심미를 대체하고, 광고로 예술을 대체하고, 전복으로 창조를 대체하고, 예술의 혁명으로 예술의 창조를 대체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의 예리한 지적에 대해 저로 말씀드리자면 깨달음이 있었고 크게 진감하였습니다.


2단계는 2000년입니다. 노벨상을 받기 직전에 그는 프랑스어로 <죽음을 공손히 구하는 사람>(Le Quêteur de la mort /叩問死亡)을 썼고 이후에 중국어로 새롭게 써서 대만에서 출판했습니다. 제가 서문을 지어주었지요. <죽음을 공손히 구하는 사람>에서 그는 다시 한 번 경고를 하는데, 현대 박물관을 참관하러 갔는데 너무 늦게까지 있어서 문이 잠겨 나오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서술했습니다. 그는 안에서 급하게 소리를 쳤지만 쓸모 없었죠. 그러다 그는 갑자기 이것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현대 박물관 안을 보니까, 변기도 전시물이 되는 거였죠. 그래서 자기도 거기에서 목매달고 죽어서 불후의 전시품이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현재 예술가에 그치지 않고, 정부에서 주관하는 큰 박물관이나 기구등등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돈도 권력도 있고 예술까지 장악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3단계는 노벨상을 받고 후 가오싱젠이 800행에 달하는 장시 <아름다움의 장례>(美的葬禮)를 쓰고 영화 시로 편집한 것입니다. 가오싱젠은 청년 시대에 영화에 혁신을 가져오고 싶어했습니다. 최근 대만에서 가오싱젠이 창작한 <산해경전>(山海經傳)을 연출했지요. 이것은 고상한 사람이나 속된 사람이나 다 즐길 수 있는, 흔들고 구르는 음악극인데, 저는 보고 굉장히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만의 우수한 배우와 희곡의 엘리트들이 연출에 참가했고, 타이베이 사범대학 학생들은 그 중에서 주요한 군중 배우였습니다. <아름다움의 장례>라는 영화 시는 그가 예술에 대하여 진행한 시험이었습니다. 이것은 걸출하게, 서방 예술의 퇴락을 묘사하였고, 유럽 예술을 위한 만가를 불렀습니다. 이것은 예술이 퇴락한 데에 대한 애도인 동시에 경고를 하는 만가였지요. 그는 유럽 예술에 대한 존경을 안고 서방의 예술이 어떻게 피렌체에서부터 한걸음씩 쇠퇴했는지 되돌아보았습니다.


가오싱젠이 최근에 출판한 문장 <자유와 문학>(自由與文學) 가운데서 부흥에 관한 가능성과 경로에 대해 대답했습니다. 비록 20세기가 이렇게 미쳐있었지만, 문예는 아직도 부흥이 가능하다고요. 왜 문예가 부흥이 가능할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문학 예술이 완전히 개인화하는 활동이고, 모든 것이 개인에 달려있지 시대환경이나 정치활동이나 단체나 기구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전력을 다해야 하고, 또 타고난 재능은 개별적인 안건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가오싱젠이 <자유와 문학>에서 논증을 진행하면서 두 가지 예시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단테입니다. 단테는 당시 피렌체에서 추방된 뒤 길 위를 떠돌아다니면서 굶어죽을 뻔도 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신곡>을 써냈고 문예부흥의 서막을 올렸습니다. 또 하나는 조설근(曹雪芹)입니다. 조설근이 <홍루몽>을 쓸때는 문자옥이 창궐하는 시대였고 또 가장 어두웠던 시대였습니다. 그는 바로 이러한 어두운 시대에 중국문학의 으뜸가는 고전을 써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어떤 작품은 지구상의 정신 수준의 표지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호메로스의 서사시,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햄릿>,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처럼 말이죠. 그리고 중국의 <홍루몽> 역시 세계 정신의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이것이 증명하는 것은 어떤 때에도 작가나 예술가는 거리낌없이 재주를 드러낼 수 있고 큰 창조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두 가지의 예를 들어 이를 보충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쳰중수(錢鍾書)입니다. 1973년부터 1975년에 이르기까지 3, 문화대혁명이 고조되어 중국이 <소 우리>에 들어가는 시기에, 그는 앉아서 <관추편>(管錐篇)을 완성했습니다. 이 책은 왕양명의 <전습록>(傳習錄)과 조설근의 <홍루몽> 이래로 가장 위대한, 20세기의 문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쳰종수와 같이 청화대학도 가고 옥스퍼드도 간 그의 좋은 친구 정차오종(鄭朝宗)는 저의 선생님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전학(錢學 쳰중수를 연구하는 학문)”의 석사연구생 네 명을 키웠는데요, 그 분이 80년대에 저에게 해주신 말 한마디가 제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늘부터 너는 반드시 <관추편>을 날마다 읽어야한다.” 우리는 그 때 날마다 <모주석 선집>을 읽었는데 그 분은 저더러 <관추편>을 날마다 읽고 밤마다 읽고 해마다 읽어야한다고 하신 겁니다. 30년간 저는 이를 견지했고 이로 얻은 이익이 무궁무진합니다. 이것은 천재는 특수한 사안으로, 천재는 시대의 부담과 극한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때든지 학문을 크게 이루거나 큰 창조를 이룰 수 있지요.


또 다른 예시가 바로 가오싱젠입니다. 나는 그가 소설가, 극작가, 화가, 사상이론가 그리고 시인이라서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작품은 40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에 널리 퍼졌고, 그의 수묵화는 전세계의 그렇게 많은 나라에서 90차례나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를 존경하는 것은 그의 확고부동한 사상으로 어느 때든지 자기의 길을 지키는 데에 있습니다. 그의 정신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는 내 좋은 친구지만, 멀리서 볼 때도 높은 산이고 가까이서 볼 때도 높은 산이라고 저는 늘 말합니다. 그는 쳰중수처럼 학문을 크게 이룬 것은 아니고 큰 창조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1983년에 <버스 정류장>을 썼습니다. 매우 역동적인 작품이었지요. 그런데 당시 선전부의 관료가 이 작품이 건국이래 가장 악독하게 공산당을 공격한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어떤 사람이 그날 밤에 가오싱젠에게 소식을 알려주어 그는 서남쪽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황량한 지방으로 말이지요. 그때부터 가오싱젠은 <영혼의 산>을 창작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까지 쓰고, 저는 스웨덴에서 그의 수고를 북경까지 가져왔습니다. 웨란 말큼비스트는 <영혼의 산>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기에 천재는 별개 사안이고, 문예의 부흥은 개인에 달려 있고, 개인의 재능에 달려 있고, 개인의 각성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각성이란 무엇인가? 가오싱젠은 <나 혼자만의 성경>에서 하나의 중요한 도리에 관해 말했고, 뒷날 제가 도이췰란트 국제 토론회에서 <가오싱젠의 자유원리>(高行健的自由原理)라고 제목을 지은 논문의 강요에서도 제기했습니다. 가오싱젠이 말하길, 자유란 곧 자기의 깨달음이고, 자기가 자유에 이르기까지 깨달아야 자유가 있는 것이지, 상제가 주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의 손 안에 쥐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는 자기가 깨닫는 것입니다. 이 한 사실을 의식하면,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는 모두 자기의 대창조를 이룰 수 있습니다. 어떤 시대와 상황에서도, 어떤 역경 속에서도, 그 재능을 뽐내며 조금도 거침없이 대창조를 이룰 수 있습니다.


가오싱젠이 제출한 부흥의 길도, 문예부흥의 사조와 같습니다. 그 길은 돌아감입니다. 문예부흥의 사조는 헬라스로 돌아가자는 것이고, 가오싱젠은 미학에서 출발해 2차원으로 돌아가고, 회화에서는 평면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최근 그가 한 연설 중에서 말하기를 문학은 반드시 문학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느낌을 펼치고, 영혼과 생명의 필요에서 창작을 하고, 바깥의 공리(功利)나 목적이나 무슨 주의같은 것을 의식하지 말고 문학의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호메로스, 단테, 셰익스피어, 발자크처럼 말이지요. 그들에게는 무슨 주의가 없었고 또한 무슨 의식의 형태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문학의 근본인 인성, 진실된 인성, 진실된 사람의 처지로 돌아가야한다는 것입니다. 문학은 진실을 드러낼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 몇 년간 저는 문장을 썼는데, 노력을 통한 의식의 각성에 반대하는 것도 있습니다. 인생으로 말하자면,60세 이후의 나는 앞으로 가는 것도 더 많은 부귀영화를 쟁취하는 것도 아니라 어린 시절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즉 《도덕경》에서 말한 「소박함으로 돌아가기」、「어린 아이로 돌아가기」、「무극으로 돌아가기」입니다. 이것이 곧 가오싱젠이 말한 문예 부흥의 길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