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게 무슨소리인지 도통 이해가 안가더라.

그래서 그냥 내가 한번 내 마음대로 다시 써봤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지적은 감사히 받을게 고마워!





저는 하고싶을 말을 SNS에 자주 적습니다.
세상이 나를 억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을 떠받들며 스스로를 억압해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진실된 자유를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나요?
자유롭게 살고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제 글을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끝에서는 저를 비난할 거잖아요?
시간낭비 하지 마세요.
당신이 이겼어요
그러니 힘낭비 하지 마세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네요.

분명한 것은, 저는 여전히 당신이 필요하고
세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랜선 회초리를 들고있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여러분이었습니다.
제 속살은 처참히 벗겨졌지만 아직 숨이 붙어있습니다.
기꺼이 끊어주셔도 좋습니다.
이 글은 고해가 아니라 발악적인 구애에 가깝습니다.

이 세상이 불편했습니다. 제가 너무 연약한게 서러웠습니다.
그래서 저항했습니다.
저는 세상이 아니라 저 자신에게 저항해왔던 것입니다.
다들 똑같은 가면을 안전모인냥 착용하고 있습니다.
다들 생각하는 것이 똑같습니다.
표정짓기, 옷입기, 말하기 심지어 원하는 것까지 모두 똑같아서 재미없었습니다.
그런 재미없는 세상을 휘젓고싶었습니다.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유달리 행동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 어떤 위로나 인정이나 이해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추노꾼에게 쫒기며 벌벌 떠는 것이 노예로서 안전하게 사는 것 보단 나았으니까요.

저도 이제 철이 조금 들었습니다.
여러분과 싸우려는게 아닙니다. 그저 여러분과 동고동락하며 이 시대를 조금 바꿔보고 싶은 것 뿐입니다.
이른 나이에 유명해졌고 "연예인병에 걸렸다"며 온갖 질타를 받으면서도
세상에 외치고싶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존재하는 방법이자 타인을 위로하는 방법입니다.
당신이 쓰고 있는 댓글과 좋아요와 침묵 모두
세상을 향한 외침이 아니었던가요.

스스로 제 마음을 조롱하고 선의를 의심했지만
얻은 것은 자아도취가 아닌 외로움뿐이었습니다.
제 그릇이 넘친 것이 아니었습니다만
비난하는 사람들의 그릇은 '다름'이 아닌 '틀림'만을 추구하는 마음에 넘쳤습니다.

자존감을 갖고싶은게 아니라 저 자신을 갖고싶었습니다.
이 지옥같은 세상에서 유령처럼 표류하기보다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두만강을 넘어가는 인민과 우리의 공통점은
"단 한발자국도 경계를 넘어갈 수 없다"는 것 입니다.
모두들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서 한 곳만 응시합니다.
마치 좀비같습니다.
등을 보이지도 않으면서 답답하다고 하는 모습은
마치 기괴를 절규를 보는 듯 합니다.

모든 선입견을 부수고싶었습니다.
저는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죄인이지요.
성공한 인생을 즐기기보다
알 수 없는 내일을 좇으렵니다.(의역)
그 너머엔 적어도 '헬'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은 '온전한' 대한민국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신기루가 아니라 실체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종북빨갱이로 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되려 빨갱이 코스프레를 하는데, 그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찢어발기고싶었습니다.

제 삶이 계속되는 한 저는 멈추지 않습니다. 당신도 시간과 함께 전진하잖아요.
시간은 높은 곳으로 흘러가지 않고 더 앞으로 갈 뿐입니다.
사회는 "더 높이, 더 많이"를 외치고 있지만 오히려 역행하고있습니다.
이런 참상에서도 시간을 감지하는한, 우리는 반드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 조카들를 포함한 다음 세대가 이런 갑갑한 세상을 맞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남들 눈치도 좀 덜봤으면 좋겠고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허세부리려고 신세 한탄 하고 한숨 쉬는게 아닙니다.
허세 또한 오글거리는게 아니고요. 
이런식을 써서라도 당신과 나 사이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었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당신의 뜻을 따르세요.
삶의 노예가 아닌 삶의 주인으로서 살길 바랍니다.

이 글은 재미가 없기 때문에
파파라치 사진보단 노출이 덜 될겁니다.
물론 그걸 감안하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될테죠.
기사도 날겁니다.
더이상 저 자신을 지킬 수는 없을듯합니다.
가명 프로필을 달고 욕을 한 뒤에 "주어는 없음ㅋ" 라고 마무리를 지을 필요도 없겠지요.(의역)
소수 포털이 인터넷을 지배하고
이 포털을 먹여살리는건 콘텐츠의 질이 아니라 댓글수와 조회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진짜' 저널은 사라져만 가고있고
자극적인 기사만이 판 치고있지만
저는 언론이 올바르게 기능하리라 믿습니다.
저널이라는 이름이 더렵히지지 않았스면 좋겠습니다.
논란거리를 공급하는건 가십만으로 충분하니까요.
저널이 사람들을 이끄는 등불이 되길 바랍니다.

...생략...


원문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부터 그리 쉽지 않았다
그래도 유아인이라는 사람을 알아보고싶었어.

번역자 입장에서 원문을 고쳐봤어
좀 자연스럽게?
원문도 딱히 문제가 있는건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글쓰기란게 따로 있는건 사실이니까.

유아인이 쓴 글을 읽기 힘든 이유는 크게 세 가지 같아.

  1. 복잡한 부사어를 가진 주어
  2. 주어와 서술어의 거리가 멈.
  3. 한 문장 안에 주어-서술어 관계를 서너가지씩 우겨넣음

각각 예시 하나씩 들어줄게.

  1. (아주 조금만 경계를 넘어도 두만강을 넘는 탈주민을 겨냥하듯 집요하게 뒤를 쫒는) 이 나라.
음...이 문장은 심지어 서술어도 없네. 그냥 주어 하나만 달랑 남겨져있는건 문장이 아니지.
그리고 3번이랑도 겹쳐

  1. 과잉으로 넘치던 것은 (내 그릇이 아니라 옮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다름을 비난하는 자들의 그릇된) 인식이었다.
주어와 서술어의 길이가 너무 긺.

  1. (다 읽을 필요는 없어.)"내가 나인데 나를 주장해야 했던 것은 내가 나인 것을 세상이 억압하기 때문이고 기꺼이 그 세상을 떠받들어 내가 나 자신을 억압 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어-서술어 관계는 총 7개야.
- 내가 주장한 것은 때문이다.
- 나는 나이다.(1스택)
- 나는 나를 주장하다.
- 내가 나이다(2스택)
- 세상이 억압하다.
- 기꺼이 세상을 떠받들다.
- 내가 나를 억압하다.
보통 한 문장 안에 주어서술어 관계가 3개 이상이면 문장을 나누거든.

그리고 여기엔 "내가", "나"가 너무 자주 나와. 주어가 뭔지 알고있는 상황에선 주어를 모두 생략하는게 한국어 특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