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 함박눈 총판
박형권
우리의 가난은 음악이어서
피아노를 항상 큰 방에 모셨다
좁은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우리의 자부심이었던 가난을 고작 삼천 원에 팔았다
– 이건 버리는 비용이 더 들어요, 이걸로 따님 과자나 사주세요
팔려간 가난이 허기를 입고
지금 알뜰 피아노 총판에서 비발디를 연주한다
밤새 내린 눈 위에 또 눈이 내려
아내와 내가 두 마리의 펭귄처럼
뒤뚱뒤뚱 돈의 파고(波高) 높은 곳으로
삼 개월 밀린 공과금을 내러 가는 길
엄마 아빠 돈 빌려서 돈 내러 가는 기분 꿀꿀하실 테니
기분 좋아지라고 겨울을 연주한다
그래
네 목소리를 우리는 기억하지
음표였다가 콩나물 천 원어치였다가
우리 식구들의 장엄한 청국장이었던 너의 악보를 기억하지
– 그까짓 삼천 원 받지나 말걸
뒤뚱뒤뚱 뒤뚱 미끄덩
알뜰 함박눈 총판 내 아내가 미끄러지고 만다
난 우리가 궁금하다
왜 미끄러지면 다시 일어나야 하는지
미끄러진 김에 누워 있으면 왜 안 되는 것인지
함박눈 저가로 공급해 주시는 이런 날에는
더 안 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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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조차 구질구질한 '가난'을
이토록 품위있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처연하면서도 따듯하다...
아무래도 이것보다는 심재휘의 시가 더.
나도 피아노 팔아야겠다 ㅠㅠ 가난한데 ㅠㅠ
좋구려... 게시물 내용 보고 어느 시집에 실렸는 지 찾아보니 <도축사 수첩>이라는 책이었음. 마음에 들어서 주문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