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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의 세기, 야마무로 신이치, 소화, 2010.
내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웠던 러일전쟁에 대한 기억은 대략 이런 식이다. 조선을 차지하기 위한 일본과 러시아 간의 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면서 포츠머스 조약을 맺음으로써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획득하는 등 아시아의 강자로 자리매김하였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정도의 서술이면 얼추 러일전쟁의 핵심을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위와 같은 서술에는 너무 많은 얘기들이 빠져 있음을 인지했다. 러일전쟁을 단순히 러시아와 일본 간의 알력다툼이라고만 보기에는 너무나도 큰 사건이다.
저자는 러일전쟁 이전의 오십 년, 그리고 이후의 오십 년을 일컬어 책의 제목인 러일전쟁의 세기라 지칭한다. 러일전쟁이 끝난 1905년에서 50년 전인 1855년, 일본과 러시아는 러일화친조약을 맺었다. 그로부터 100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50년 뒤인 1955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종결에 관한 소련과 일본 간의 교섭이 개시되고 소일국교가 회복, 일본의 국제연합 가맹이 인정되었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러일전쟁 후에 존재하고 있었던 역사 단계가 종언을 맞이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우호관계로 시작한 양국이 왜 50년 후 전쟁에 이르렀고 러일전쟁 이후 50년 동안 일본의 행보를 규정한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하나의 세기로 파악해 보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이 근대 서구세계에 문호를 개방하고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은 만국공법으로 무장한 서구 열강들이었다. 만국공법은 기실 서구 열강들이 비서구 비기독교 국가들을 합법적으로 약탈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일본은 그러한 만국공법의 성격을 재빨리 알아챘고 서구 열강들과 마찬가지로 만국공법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문명국’의 반열에 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것은 곧 기존의 조공·책봉 체제를 유지하는 ‘비문명국’인 청나라와의 충돌을 야기했고 그 결과 조선을 만국공법 하의 주권국가의 체계에 놓을 것인지 조공·책봉 체제에 머물게 할 것인지를 두고 청일전쟁이 벌어졌다. 청일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는 단편적인 사실은 기실 청일전쟁의 본질이 어디 있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청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결말이 났다. 그러나 일본은 삼국간섭에 의해 전쟁을 통해 기껏 얻은 랴오둥 반도를 반환한다.
그런데 극동의 평화를 위해 랴오둥 반도를 반환하라고 하였던 러시아가 정작 뤼순과 다롄을 조차하자 일본 내에서는 굴욕외교라는 담론과 함께 ‘와신상담’, ‘폭러응징’이라는 구호가 사회 곳곳에 만연할 정도로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거세졌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에서는 전쟁만이 곧 정의이며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강경론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는 바라지도 않는데 제어할 수 없이 흘러가서 돌이킬 수 없게 된다고 하는 심리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청일전쟁 당시는 폭청응징, 러일전쟁 당시는 폭러응징, 중일전쟁 당시는 폭지응징, 태평양전쟁 당시는 영미귀축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기 이전까지 그 대상만 시대 별로 바뀔 뿐이지, 내내 일본 사회를 지배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저자는 러일전쟁을 가리켜 20세기 최초의 세계전쟁이라고 칭한다. 분명 러일전쟁 자체는 만주와 한반도에 국한된 전장이었고 전쟁의 주체도 양국뿐이었다. 그럼에도 러일전쟁은 미국이 종래의 외교원칙이었던 서구 양대륙의 상호불간섭을 주장하는 먼로주의에서 탈각하고, 국제정치 무대에 등장한 계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러일전쟁은 '미국의 세기', 나아가 1905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태평양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20세기의 첫걸음을 그린 사건이기도 했다. 또한 러일전쟁은 단순히 군사력뿐만 아니라 정보조작이나 신문을 이용한 여론조작에 기반한 국제 여론의 지지와 그에 따른 군사자금・군수물자의 획득으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선전전이 된 점에서도 전쟁의 모습을 전화시킨 것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배후에 영국이나 프랑스가 동맹국으로 있던 것, 또한 그것이 백색 인종과 황색인종의 전쟁으로 간주되어 거기에 아시아뿐만 아니라 동유럽이나 이슬람권 또는 유대 민족이 관심을 기울였다는 의미에서 인종전쟁으로서의 세계전쟁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러일전쟁이 동아시아 세계에서 지닌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문제다. 그것은 청일전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과제로 남은 한국의 배타적 지배라고 하는 문제의 결착이었다. 러일전쟁은 확실히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이고, 결과적으로 만주에 대한 일본의 진출을 촉진해버렸지만, 그 속에서 진행되어 간 더욱 중요한 사태, 그것은 일본에 의한 한국의 보호국화였다. 저자의 말마따나 어느 사상의 본질이 결과에 따라서 명확해진다고 한다면 한국의 보호권 획득이라는 결과야말로 바로 러일전쟁의 본질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러일전쟁의 승리 이후 일본은 을사늑약을 한국에 강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일병합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식민지화를 순조롭게 성공시키고 만다.
이러한 20세기 최초의 세계전쟁인 러일전쟁이 끝난 뒤, 비록 전쟁 중에는 일본 스스로가 필사적으로 그것이 인종전쟁임을 부인했지만, 인종 전쟁에서 유색인종이 거둔 승리로 인식되었다. 그것이 서구의 식민지 지배 하에서 고통받고 있던 유색인종들에게 희망을 주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와 동시에 전제국가 러시아와 입헌국가 일본과의 전쟁이라고 일본이 호소한 만큼 일본의 승리는 서양문명을 받아들인 입헌제의 승리로 간주되었다. 이로써 백인종에게 승리하고 유색인종을 대표해 서구와 대결하는 '황색인종의 투사'라고 하는 일본과, 아시아에 있으면서 서양문명의 섭취에 성공하여 서구를 뒤쫓아 가는 일본이라는, 상반되는 두 개의 일본 이미지가 병존하게 되었다. 그것은 비서구세계 사람들에게 서구가 문명의 스승이자 동시에 군사력을 통해 식민지 지배를 강요하는 침략자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면모를 드러내 온 과정을 일본 역시 걷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고 있다.
결국 일본이 아시아 중에서 가장 빨리 국민국가 형성에 착수하여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승리했음은 서구형 국가체제가 군사적으로 우월성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일본은 서구문명을 스스로의 전통, 결국은 아시아 문명에 적합하게 수용했음을 증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 중국에서는 서구의 학술이나 법제 등을 일본이 달성한 성과를 통해 흡수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어 간다. 그것은 또한 동아시아 세계에서 문명의 중심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이동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조선을 포함해 중국과 책봉관계에 있던 동아시아 세계의 사람들에게도 자극을 주게 된다.
나아가 일본에 대한 관심은 동아시아에만 그치지 않고 지리적・종교적으로 러시아에 대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슬람이나 폴란드와 헝가리 등의 동구세계의 사람들에게도 확산된다. 이렇게 러일전쟁은 일본이 그야말로 서구와 아시아를 묶는 '지(知)의 결절 고리'로 나타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온 유학생이나 일본으로부터 파견된 교사를 통해, 또한 일본 책의 번역 등을 통해 사람이나 학자의 환류가 진행했기 때문에 아시아라는 공간에 자신들이 함께 살며 똑같은 운명에 있다고 공속감각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에 대해 모였던 기대와 관심은 일본이 러일전쟁 후에 취한 아시아 정책으로 인해 실망으로 바뀌고 나아가서는 오히려 아시아에 적대하는 모양새가 되고 만다. 그 결과 일본에서 획득한 지적 담론을 일본을 상대로 항쟁하는 이데올로기로 이용한 이들이 적지 않게 생겨나는 데 다소 아이러니컬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 러일전쟁이 일본 국내에 가져다 준 것은 일본의 군사국가화였다. 러일전쟁 직후에 형성된 제국국방방침은 러일강화를 다소 장기간의 휴전으로 보았다. 또한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국력의 미비함을 정신력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는 담론이 형성되고 현대전에서도 백병전을 중시하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전법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담론이 야기한 잔혹함은 카미카제 특공대나 1억 총옥쇄 등으로 대표될 수 있겠다. 이뿐만 아니라 의무교육, 청년회, 징병, 재향군인회로 이어지는 전국토의 병영화와 군대 질서의 사회화로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가 준전시체제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전쟁의 광기 속에서 광기에 저항하는 자들도 자연히 등장한다. 러일전쟁 이후 갖가지 비전사상이 형성되는데 이는 전후의 평화헌법을 둘러싼 비판의 원형이 거의 모두 등장하는 느낌이다. 저자는 책의 끝머리에 나카에 조민이 죽음을 직전에 둔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멍청하게까지 이상을 지킨 것, 이 소생이 자랑하는 바입니다”라는 구절을 얘기하면서 이상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 야말로 21세기의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나는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한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 일본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향해 나아간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한복판에 러일전쟁이라는 사건이 있다. 그렇게 조금씩 일본 사회를 침윤한 전쟁의 논리는 결국 일본 사회를 비롯해 동아시아 세계를 파멸로 이끌어 나갔다. 비단 전쟁의 논리뿐만이 아니다. 특정한 논리가 사회에 있어서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위치에 자리하고 그와는 다른 지향점을 가진 이들을 배척하기 시작한다면 그 사회는 결코 좋은 결말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근대 일본이 처한 상황과 다르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근대 일본의 모든 담론이 전쟁으로 귀결되었다면 근대 한국의 모든 담론은 성장으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지는 않을까.
김덕영 교수는 자신의 저서 환원근대에서 한국 사회의 근대화란 근대성이라는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이 모두 경제적 근대성으로 환원되었다고 주장한다. 100퍼센트 동의하는 주장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뭇 일리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장 한국 제일의 기업이 삼성의 경영기조 중 하나가 무노조 경영이 아닌가. 이보다 얼마나 더 전근대적인 경영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최첨단 경영을 운운하는 삼성과 그러한 삼성을 칭송해 마지않는 수많은 이들을 고려하자면 한국 사회의 근대성이란 대체 무엇인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논리는 결국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부를 이룩하면 그만이라는 천박한 자본의 논리가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논리를 뒷받침하는 것은 사회 곳곳에 잔재되어 있는 군사주의, 상명하복과 위계질서를 최우선시하고 비판적 이성보다는 까라면 까라는 식의 군사주의가 아닐까.
러일전쟁이라는 단일한 사건을 중심으로 오십 년, 총 한 세기에 걸쳐서 근대 일본이 내부적으로나 아시아와 서구 사회라는 타자와의 관계에서나 어떠한 환경 속에 처해있었고 어떠한 관점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어찌 보면 전방위적으로 시간을 뛰어넘어가며 파악한 책인 만큼 읽어나가는데 꽤나 시간도 걸렸고 머릿속에서 나름 정리하기도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다. 그러나 책 내내 저자가 보여주는 방대하면서도 자연스레 서로 연관되는 현상들을 마주하며 조금은 눈이 뜨이는 경험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일본에 러일전쟁이 일종의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었다면 한국에 있어서 그러한 사건은 역시 한국전쟁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한국전쟁에 관해 이런 식의 접근을 한 책이 무엇 있는지 찾아봐야 겠다. 혹여나 그런 책이나 논문 아시는 분은 추천 부탁드려요~~~

이걸로 안 낸 이유. 니들이 길고 노잼이라 안 읽을 거 같아서.
굿 초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