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이 책을 왜 샀는지는 모르겠다. 고향에서 학교 다니는 지역으로 막 도착했을때 나는 서점에 들리는 습관이 있다. 돈도 없는 가난한 대학생이지만 책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는 수음으로 책을 산다. 보통 독서쟁이들이 그렇겠지만 읽어 내려가는 속도 보다 책을 사는 속도가 더 빠르다. 책을 사기 전에 엄청 기대하지만 막상 책을 사면 내꺼라는 어장 속에 갇아둔 기분이라 몇 일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책이 만약 연인이라고 했는 옛 성인이 있다면 그는 진정한 성인일 것이다. 서점에서 으레 그렇든 무슨 책을 살지 고밍중이였다. 문학..? 아니야, 철학? 여 ㄱ사? 정치? 무엇을 살지 한창 고민중일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책 뒷편을 보니 이런 구절이 있었다. 그 구절은 날 속박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네 사람의 이야기"


 가족이라.. 우리는 태어나면서 가족에 속박된다. 언어가 있다면 그는 죽기까지 가족을 가굴할 것이다. 그만큼 가족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매혹은 치명적이다. 우리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가족이 독이라니 정말 우스운 얘기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가족은 떼어낼 수 없다. 책에서 네 명의 인물들은 서로 고립된 외딴 섬 같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부여잡고 있다. 하루동안의 가족의 내밀한 감정을 표현하며 아슬아슬한 감정 줄다리기를 보여준다. 너무 극단적인 가족사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문학은 삶의 균열 속에서 낯섬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균열이란 우리의 주의를 끄는 사건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오닐은 이 작품에 자신의 가족사를 넣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로 글을 쓰고 싶어한다. 그 이야기가 특별하든 안하든 자신의 얘기는 자기가 보기엔 특별해 보인다. 오닐은 어떻게 보면 식상한 자전적 이야기를 내밀한 감졍표현으로 독자의 공감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읽기에는 아주 편하다. 분량도 적고 인물도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소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한 곳에서만 일어난다. 그래서 그런지 몰입도가 상당하다. 메리가 과거의 찬란함을 말하면서 어찌하다가 지금과 같은 파국을 맞이했는지 궁금해서 계속 읽어 나가게 된다. 그녀의 변명이 슬프게 들렸지만 떄로는 핑계로만 들렸다. 가족의 수난은 한 명 떄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대화를 들어보려 해도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대화를 하다 홧김에 빈정거리는 말투가 대부분이다.


 희곡은 세익스피어 작품 말고는 읽어보지 못한 것 같다. 오닐 작품의 시작으로 희곡을 찾아 읽으려 한다. 또, 내가 좋아하는 한국작가 최인훈도 소설의 한계를 깨닫고 희곡을 쓴 걸로 안다. 오닐과 그의 작품부터 읽어보려 한다. 대화로만 이루어진 희곡, 그래서 그런지 인물들의 성향이 직접적으로 잘 드러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