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의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가 그렇게 중요한 주젯거리가 되는가 하는 점이다. 파우스트가 쓰여진 당시엔 중요한 주제였다라고 하더라도 지금 시대에도 이런 주제를 가진 책을 통해 감명을 받고 내 인생 최고의 책이다라며 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묻고 싶다.
\"혹시 돌았어요?\"
댓글 11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는 따로 있는데, 정작 독자들은 그 주제와는 다른 면에 열광하면서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책도 종종 있습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후기작들은 사실상 광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러시아 정교가 최고"라는 것을 모든 작품들의 주제로 삼아 밀어붙이고 싶어 했는데, 정작 독자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작가 특유의 사람 마음을 헤집는 장광설에 의한 심리 묘사'였거든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작가는 "나폴레옹이 절대악이고 러시아 농민이 절대선"이라는 괴상한 주장을 증명하고 싶어하였지만, 독자들은 (톨스토이가 따로 소챕터를 할애하여 떠드는 헛소리는 그냥 제껴버리고) 서사다운 서사가 등장하는 스토리라인에 열광하였죠. 저는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꼬드기고 주장하는 말빨이 너무 멋지더군요
gksrud(kimtai0)2016-09-11 15:40
다른 이야기로... 인생 살만큼 살았고 나이 깨나 먹은 사람들 중에, "나의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를 진짜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어떻든 종교가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나이 먹고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도 많으며, 종교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도 여전히 실존하고 있거든요. 이들에게 해당 테마는 여전히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괴테는 평생 써 온 파우스트를 만년에 완성하고도 발표하지 않은 채 봉인했고, 그래서 파우스트는 괴테가 사후 유고집으로 첫선을 보였는데... 작가부터가 "내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를 만년에 고민하다가 죽기 직전에서야 파우스트에 담아내었던 것이죠. 나이 깨나 먹어서야 완성할 수 있었던 책이고, 저도 그 나이가 되어야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ksrud(kimtai0)2016-09-11 16:10
작품 해제보다 중요한것은 책이 주는 영감입니다. 가령 데미안을 읽고나서 실존주의니 융의 분석심리학이니 프로이트니 하는 따위의 것만 머리 속에 남는다는 건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종교가 없어서 신, 신앙, 믿음, 종교에의 귀의 같은 내용을 담은 글은 읽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종교인이 신이라 여기는 것 그것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답을 찾았고, 신을 자신으로 바꿔 읽었습니다. 나는 나만이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터무니 없어 보이고 없어 보인다 해도, 이렇게 읽어보세요. 그렇다면 파우스트는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요리는 작가가 했어도 삼키는건 독자입니다. 작품을 작가의 심리로 환원하거나 작가가 살던 연대 혹은 작가가 살아온 세월로 환원하려 하지 마세요.
Nietzsche-R(revolte87)2016-09-11 21:33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것은 피상을 넘어,스스로의 육감으로 만지고 느끼고 사색함으로 자신을 빚어냄을 의미합니다. 사실 반론하신 부분은 심리주의와 반심리주의에 대한 논의로 귀결될 듯해서, 깊은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우리가 소위 소설의 미학이라 여기는 형식적인 측면에 지나치게 천착한다면 소설은 더 이상 감상이 아닌 연구의 대상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Nietzsche-R(revolte87)2016-09-13 10:23
문학은 전문가가 연구하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쉽게 가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만일 작가의 시대, 환경, 문화에 따른 형식적 이해가 부족해 작가의 심리를 쫓아갈 수 없었다고 해도, 나름의 감상이 있다면 된 것이죠. 다만 본 글쓴이 분께서 느낀 감상이 텍스트에 매몰되어 생긴 부작용이라 느꼈기에 이에 부족한 식견으로나마 댓글을 남겼던 겁니다.
Nietzsche-R(revolte87)2016-09-13 10:24
따라서 ‘신은 나다.’라는 부분은 조금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말했다시피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느낀다는 글쓴이 분께 조그만 조언을 드린 것이지 ‘내가 신이다.’라고 생각지 않아요. ‘종교인의 신은, 나에게는 자신이다.’ 정도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쓴 것뿐입니다.
Nietzsche-R(revolte87)2016-09-13 10:25
다만 외부와의 관계와 계약에 의해서만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자아와 외부의 표상은 상호보완적이며 불가분의 관계에 그칠 뿐, 물자체의 본질을 규정하지 못합니다. 이는 각자의 생각차이가 큰 부분이니. 옳다, 그르다 논의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기에 더 이상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Nietzsche-R(revolte87)2016-09-13 10:26
마지막으로 신과 인간에 관한 말씀을 하셔서 반가웠습니다. 인신사상을 말씀하신 데에는 도스토옢스키의 악령이라는 작품을 읽으셨기에 말씀하신 듯한데, 등장인물인 키릴로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도 인신사상의 예라고 여기는데, 이에 반대하는 논조가 분명히 있는 듯해서 생각이 궁금해 여쭙니다.
Nietzsche-R(revolte87)2016-09-13 10:27
장광설, 글에 요지가 없음. 미학에 기준을 본인이 상정했을 뿐인데 권위에 기댔다고 느껴 자신만만 함. 누구도 못했던 형의상학에 기준이 있다함. 현대 철학가인듯, 작품 해석에 대단한 고수인듯 말 하지만, 차라투스트라가 인신사상과 거리가 멀다 키릴로프가 신을 상정했다 이상한소리,ㅋㅋㅋ
Nietzsche-R(revolte87)2016-09-14 01:40
고향 내려와서, 술 좀 됐음. 내가 내일 족족 반론해줌, 작품해석은 나도 자신있음. 안해본걸 비판할 만큼 자신 만만하지 않음. 너야말로 네 자신의 생각이 완성 됐다 느끼는듯.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는 따로 있는데, 정작 독자들은 그 주제와는 다른 면에 열광하면서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책도 종종 있습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후기작들은 사실상 광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러시아 정교가 최고"라는 것을 모든 작품들의 주제로 삼아 밀어붙이고 싶어 했는데, 정작 독자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작가 특유의 사람 마음을 헤집는 장광설에 의한 심리 묘사'였거든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작가는 "나폴레옹이 절대악이고 러시아 농민이 절대선"이라는 괴상한 주장을 증명하고 싶어하였지만, 독자들은 (톨스토이가 따로 소챕터를 할애하여 떠드는 헛소리는 그냥 제껴버리고) 서사다운 서사가 등장하는 스토리라인에 열광하였죠. 저는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꼬드기고 주장하는 말빨이 너무 멋지더군요
다른 이야기로... 인생 살만큼 살았고 나이 깨나 먹은 사람들 중에, "나의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를 진짜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어떻든 종교가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나이 먹고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도 많으며, 종교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도 여전히 실존하고 있거든요. 이들에게 해당 테마는 여전히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괴테는 평생 써 온 파우스트를 만년에 완성하고도 발표하지 않은 채 봉인했고, 그래서 파우스트는 괴테가 사후 유고집으로 첫선을 보였는데... 작가부터가 "내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를 만년에 고민하다가 죽기 직전에서야 파우스트에 담아내었던 것이죠. 나이 깨나 먹어서야 완성할 수 있었던 책이고, 저도 그 나이가 되어야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 해제보다 중요한것은 책이 주는 영감입니다. 가령 데미안을 읽고나서 실존주의니 융의 분석심리학이니 프로이트니 하는 따위의 것만 머리 속에 남는다는 건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종교가 없어서 신, 신앙, 믿음, 종교에의 귀의 같은 내용을 담은 글은 읽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종교인이 신이라 여기는 것 그것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답을 찾았고, 신을 자신으로 바꿔 읽었습니다. 나는 나만이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터무니 없어 보이고 없어 보인다 해도, 이렇게 읽어보세요. 그렇다면 파우스트는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요리는 작가가 했어도 삼키는건 독자입니다. 작품을 작가의 심리로 환원하거나 작가가 살던 연대 혹은 작가가 살아온 세월로 환원하려 하지 마세요.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것은 피상을 넘어,스스로의 육감으로 만지고 느끼고 사색함으로 자신을 빚어냄을 의미합니다. 사실 반론하신 부분은 심리주의와 반심리주의에 대한 논의로 귀결될 듯해서, 깊은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우리가 소위 소설의 미학이라 여기는 형식적인 측면에 지나치게 천착한다면 소설은 더 이상 감상이 아닌 연구의 대상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문학은 전문가가 연구하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쉽게 가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만일 작가의 시대, 환경, 문화에 따른 형식적 이해가 부족해 작가의 심리를 쫓아갈 수 없었다고 해도, 나름의 감상이 있다면 된 것이죠. 다만 본 글쓴이 분께서 느낀 감상이 텍스트에 매몰되어 생긴 부작용이라 느꼈기에 이에 부족한 식견으로나마 댓글을 남겼던 겁니다.
따라서 ‘신은 나다.’라는 부분은 조금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말했다시피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느낀다는 글쓴이 분께 조그만 조언을 드린 것이지 ‘내가 신이다.’라고 생각지 않아요. ‘종교인의 신은, 나에게는 자신이다.’ 정도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쓴 것뿐입니다.
다만 외부와의 관계와 계약에 의해서만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자아와 외부의 표상은 상호보완적이며 불가분의 관계에 그칠 뿐, 물자체의 본질을 규정하지 못합니다. 이는 각자의 생각차이가 큰 부분이니. 옳다, 그르다 논의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기에 더 이상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과 인간에 관한 말씀을 하셔서 반가웠습니다. 인신사상을 말씀하신 데에는 도스토옢스키의 악령이라는 작품을 읽으셨기에 말씀하신 듯한데, 등장인물인 키릴로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도 인신사상의 예라고 여기는데, 이에 반대하는 논조가 분명히 있는 듯해서 생각이 궁금해 여쭙니다.
장광설, 글에 요지가 없음. 미학에 기준을 본인이 상정했을 뿐인데 권위에 기댔다고 느껴 자신만만 함. 누구도 못했던 형의상학에 기준이 있다함. 현대 철학가인듯, 작품 해석에 대단한 고수인듯 말 하지만, 차라투스트라가 인신사상과 거리가 멀다 키릴로프가 신을 상정했다 이상한소리,ㅋㅋㅋ
고향 내려와서, 술 좀 됐음. 내가 내일 족족 반론해줌, 작품해석은 나도 자신있음. 안해본걸 비판할 만큼 자신 만만하지 않음. 너야말로 네 자신의 생각이 완성 됐다 느끼는듯.
왜 다 지웠어? 열심히 남긴 글이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