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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청나라라고 하면 그저 명나라 다음에 등장하는 중국의 통일왕조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청나라를 단순히 명의 멸망 이후, 그리고 중화민국의 건국 이전까지 존속하였던 중국 제국의 기나긴 역사 중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기저는 한화(漢化)에서 찾을 수 있다. 한화, 즉 청나라를 건설한 만주족이 한족에게 동화되어 그 독자적인 문화나 정체성이 점차 사라졌기 때문에 청나라가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이민족 정복왕조로서 장기간 중국을 지배할 수 있었다는 학설이 기존의 지배적인 통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통설은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 하나는 만주족 국가로서의 청나라를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제국으로서의 청 제국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이 90년대 말 일군의 미국 학자들로부터 제기됨에 따라 ‘신청사(新淸史)’라는 연구 경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존의 한화이론이 다소 민족주의적이고 국수적이라고 비판하며 청나라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을 주장하였다. 이 책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역시 그러한 신청사의 연구 흐름에 따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신청사에 기반한 저자의 주장은 무엇인가. 저자는 청나라가 정복 왕조로서 300년에 이르는 기간을 지탱할 수 있었던 원인이 만주족의 한화가 아니라 오히려 만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유지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만주족은 어떻게 자신들보다 문화적으로나 인구적으로나 훨씬 우월한 한족을 상대로 독자적인 정체성과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 핵심에 바로 팔기제도가 있다고 얘기한다. 팔기제도는 누르하치 대부터 청 말기까지 존재한 청나라의 군사·행정 제도이다. 저자는 기존 만주족만의 팔기가 점차 만주족뿐만 아니라 몽골족, 한족까지 포함한 만·몽·한의 다민족 집단으로 구성되기 시작하였고 팔기에 속하는 이들은 기인(基人), 그렇지 않은 이들은 민인(民人)으로 구분해 청나라의 통치가 이 팔기에 속하는 기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청나라는 이러한 기인과 민인 간의 분리주의뿐만 아니라 각 민족을 각 민족의 고유 풍습에 따라 다스리는 본속주의를 통해서도 만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중·하급 관리의 수에 있어서 한족이 만주족보다 훨씬 그 인구 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고작해야 4분의 1 수준의 관직을 차지하였다는 점과 몽골 등 번부를 관리하는 이번원의 관직에 한인을 등용하지 않고 오직 만인만을 등용하였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청나라의 통치가 만인을 위시한 기인 위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또한 청나라와 조선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기존 통설과는 다른 주장을 내세운다. 기존의 통설은 마크 맨콜의 이원구조론으로 청나라를 이번원이 관할하는 초원 유목민 사회, 즉 만주와 번부에 해당하는 ‘서북 초승달’ 지역과 예부가 관할하는 정주 농경민 사회, 즉 조선, 유구, 베트남, 그리고 중국의 직성 지역에 해당하는 ‘동남 초승달’ 지역으로 구분해 설명하는 학설이다. 맨콜은 해당 학설에서 조선이 유구와 베트남과 같이 대명(大明)적 질서에 속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저자는 이러한 맨콜의 주장에 대해 조선은 오히려 대청(大靑)적 질서에 속한다고 반박한다. 저자는 그동안 거의 연구되지 않았던 분야인 청나라에서 조선으로 보낸 칙사를 연구하면서 조선에 보낸 칙사는 유구나 베트남과는 달리 고위 관직자이자 모두 기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청과 조선의 관계는 청과 베트남, 유구의 관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관계임을 주장한다. 저자는 기존의 지리적 특성에 기반한 이원구조론이 아니라 청이 어느 시기에 해당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조선이나 몽골은 청나라가 명나라에 입관하기 전에 스스로의 노력으로 획득한 지역인 만큼 대청적 질서에 속하고 입관 이후 인수한 유구와 베트남은 입관으로 인한 지배권이기에 대명적 질서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들은 대체로 납득이 가지만 그럼에도 의문이 가는 점들이 몇몇 있다. 먼저 저자의 주장들을 살펴보자면 저자는 신청사 학자 중 하나인 마크 엘리엇의 학설을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엘리엇은 팔기에 의해 만주족의 정체성이 형성되었고 팔기가 청 말기까지 유지됨에 따라 정체성 또한 변함없이 유지됐을 것이라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에 대해 같은 신청사 학자인 파멜라 크로슬리는 만주족의 정체성은 누르하치 대에서부터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만주족의 정체성은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 저자가 이러한 크로슬리의 학설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또한 저자는 조선이 대청적 질서에 속한다고 확실하게 얘기하는데 그렇다면 어째서 몽골과 같이 이번원이 아닌 예부가 조선을 관할하였는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을 굳이 대명적 혹은 대청적 질서 둘 중 하나에 완전히 속한 존재로 바라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도 싶다. 조선을 입관 전에 지배권을 획득한 존재임과 동시에 정주 지역이자 명나라적 체제의 국가인 양쪽의 성격이 혼재된 복합적인 독자적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정말로 청나라는 키메라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얘기하는 키메라는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신화의 괴물이 아니라 유전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유전적 형질이 하나의 생명체에 공존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만주와 몽골 그리고 한족이 어울러 청이라는 제국을 구성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어울림이 공평하다고는 할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청나라는 만한병용이라는 입발림 아래 철저히 기인 위주의 통치 원리를 실행했으니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300여 년의 세월을 이민족 정복왕조로서 군림한 청나라의 통치 원리를 대단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현재의 중국 역시도 이러한 청나라의 통치 원리를 여실히 알고 있기에 더더욱 이러한 원리를 은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현재 중국 학계는 저자와 같은 신청사적인 입장을 배제한 채 철저히 ‘중화민족’의 역사로서의 청사를 정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역시 한족을 제외한 55개의 소수 민족이 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에 어울러 살아가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일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중국이 위구르인들이나 티베트인들에게 자행하는 만행들이 합리화되지는 않는다. 중국이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기 바란다. 역사를 제대로 바라본다면 분명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범진)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 중국 근현대사와 소수민족 분쟁을 역사로 이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