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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일 2020/10/23


- 53일차 2020/12/14


- 오늘 읽은 책


1. 수용소 군도 - 알렉산더 솔제니친 - 열린책들, 김학수 역

355p ~ 444p - 90p



- 53일차, 기관은 실수하지 않는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기관의 능력이 압도적이란 뜻일까? 기관의 능력이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이 말이다. 

기관은 실수가 있어선 안된다. 기관은 틀려선 안된다. 기관이 잘못을 저질러선 안된다. 하지만 어떻게? 기관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을까? 

어떻게 완벽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오직 한가지 원칙만이 기관을 완벽하게 만들어준다. 기관이 틀렸음을 보이지 마라. 

모두의 눈을 가리고 모두의 귀를 막고 모두의 입을 막아라.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기관을 비판하고 비난하겠는가? 


하지만 어떻게 물리적으로 그들의 눈과 입과 귀를 막을까? 이것도 쉽다 잡아들이면 된다. 잡아서 수용소에 가두어 놓고 10년형 25년형을 선고하면 된다. 

반소비에트적 사상과 그 전파, 연계, 묵인, 의도, 위험성 등을 판단해 체포하면 된다. 누군가 반항하지 않을까? 아무도 반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아가 힘을 잃는 밤에 체포되기 때문에,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끌려가기 때문에, 기관의 무궁무진한 체포학으로 벌건 대낮에서도, 기차에서도, 영화관에서도 끌려가기 때문에, 끝끝내 신문을 받으면서도 정부의 정의로운 심판으로 자신들의 무죄가 증명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반항하지 않는다. 

그들의 저항정신을 이끌던 혁명가들이 모두 잡혀갔기 때문에, 그들의 가족이 잡혀들어오기 때문에, 그들의 권리를 들어본 적 없기 때문에, 그들은 반항 할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수용소로 흘러드러가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기관은 어떻게 이런 전국가적인 권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어떻게 기관이 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낼 권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사회주의 원칙이라는 이데올로기, 바로 이 이데올로기로 이루어진 혁명의 역사는 차이를 짓이김의 역사였다. 잡초를 뽑고 땅을 고르게 만들 군홧발의 역사였다. 그 누가 사회주의 원칙에 반대할 수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나타난 부농과 빈농의 차이마저도 죄로 규정하는 이데올로기로 세워진 권력 앞에서 그 누가 그 짓이김을 부정할 수 있었을까? 부르쥬아적 사고는 국가의 적이었다. 조국에 반하는 모든 사상과 행동은 수용소로 흘러들어갔다. 그 흐름이 다시 더 많은 군화를 더 튼튼한 군화를 만들었다. 그 누가 반항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 누가 반항을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거대한 강의 흐름이 수용소로 흘러들어서 그들의 죄를 자백하게 만들기 위한 온갖 고문이 자행되었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고문할 때, 바로 그것과 똑같은 행위를 스탈린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자행하고 있었다. 오직 죄수의 입으로 죄를 말하게 만드려는 목적으로 자행된 무의미한 고문의 물길이 신문관의 편의성이라는 중력에 의해 끌려내려가며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잠을 재우지 않는 것 만으로 죄수들의 자아는 무력해졌다. 권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고 개념이었다. 왜? 기관은 실수하지 않는다.

악몽 속에서 신문이라는 고문을 받는 죄수들은 악몽에서 깨기 위해서 자기 입으로 죄를 말해냈다. 얼마전까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자들이 자기 죄를 술술 불었다.


그들에게 악몽을 꾸게 해준 하늘빛의 요원들, 하늘이 부여한 권력을 맛본 신문관들, 그 하늘빛의 견고함을 더욱 단단히 만들어주었던 그 사람들조차 흐름을 거역할 수 는 없었다. 그저 번호표를 늦게 뽑았을 뿐이었다. 소련에는 수용소로 흐르는 흐름말고도  두가지 거대한 악순환의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이데올로기가 권력을 부여하고, 그 권력이 이데올로기를 견고히하는 악순환, 권력이 다른 이들을 짓이기고, 그 짓이김이 다시 권력을 견고히 하는 악순환이다. 또 하나는 권력이 욕심을 부르고 욕심이 다른 권력을 부르는 악순환이었다. 권력이 나의 욕심을 자극시키고, 그 욕심이 권력을 휘두르게 했으며, 욕심과 권력 두가지의 혼합이 이데올로기의 칼날을 불러냈다. 이 두가지 흐름이 영토 전체에,수용소 군도라는 또 하나의 나라를 세웠다. 악순환을 끊을 수는 없었을까? 그 군홧발에 저항할 순 없었을까? 저항을 잃어버렸다고는 해도, 군홧발에 짓이겨진다고 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정녕 그 선을 넘을 수는 없었을까? 


가능했다. 하늘빛의 권력자들 조차 자신들의 악행이 부끄러워서 누구에게도 자신의 행위를 고백할 수 없었다. 자신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는 와중에도 자신이 저지른 행동 만큼은 하늘에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하물며 그들조차 마음 속에 선과 악을 가르는 선이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다. 기관에 충성하면 압도적인 권력과 혜택을 보장받았고, 기관에 반대하면 그들의 가족마저 운명을 달리 할 수 있었다. 그 누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이 쳇바퀴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쳇바퀴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가? 이미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중인가? 그저 늦게 뽑은 번호표의 번호가 불리길 기다리면서?


하지만, 수용소 군도로 한번 흘러들어가면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혁명을 위해 싸웠던 동지도, 아내를 위해 외국의 기념품을 사왔던 장교도, 그저 순진한 믿음으로 망상에 빠져 글몇자 적었던 노동자 청년도, 공산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혁명가도, 외국인도, 욕심 많은 기관의 요원들도, 조국을 위해 싸웠던 대위도, 조국을 배반한 스파이도, 모두가 이미 소비에트 연방에 반하는 죄수일 뿐이었다. 오로지 조국과 기관에 대해 의심했던 소수의 반소비에트 분자들 만이, 자신의 선을 지키고자 했던 소수의 개인만이 그 흐름을 피할 수 있었을 뿐이다. 


죄수들은 모두 그들이 가졌던 순진한 믿음 때문에 이곳에 왔다. 조국이 나를 배신할리 없어! 하지만 조국은 그 누구보다 먼저 자신을 배신했다. 조국은 배신자가 필요했다. 조국에 대한 배신자는 필요없었다. 그저 배신자라고 낙인 찍을 죄인들이 필요했다. 때문에 그들을 조국의 배신자라고 불렀다! 전쟁터에서 누구보다 열혈하게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병사들이 멀쩡이 살아돌아왔다는 이유로 그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전쟁터에서 두 종류의 러시아인들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들이 밀며 싸워도, 조국은 모두 10년형 권리박탈 5년형을 내릴 뿐이었다. 


밤에 잠들지 못하고 시궁창같은 감방 속에서 벌어지는 악몽이 무려 반세기 가까이 이어졌다. 몸과 자아가 붕괴되는 그 시간동안 솔제니친은 자기자신을 포함은 무수히 많은 이의 이야기를 샅샅히 들여다보았다. 솔제니친이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믿음과 배신의 존재였고, 관념의 붕괴였으며, 이를 가능케한 이데올로기 뒤에 숨겨진 공허한 실체였다. 욕심! 이데올로기는 욕심으로 작동하고 두려움으로 견고해졌다. 스탈린은 무엇을 했기 때문에 죄인을 잡아들인 게 아니라,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하려 죄인을 잡아들였다. 


이 견고한 흐름은 대체 어떻게 막을 내리게 됬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리 한방울이 진실의 폭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한방울이 모든 것을 무너져 내리게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마음 속의 선과 악을 가르는 선 위에 떨어지는 그 진실 한방울이 아닐까?

소련에서 금지된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러한 합리화라는 죄와 진실이라는 벌을 이미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오늘까지 달린 거리

3333p / 42195p (약 7.89%)



[완독한 책]


1. 융 기본 저작집, 정신 요법의 기본 문제

2. 죄와 벌

3. 체호프 단편선

4. 목소리를 보았네

5. 반지의 제왕 1권,2권,3권

6. 괴테와의 대화 1권

7. 에덴의 용

8. 수용소 군도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