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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목적은 상대방에게 그것이 의도한 바를 제대로 전달함일 것이다(여기서 상대방이 단수의 대상인지 복수의 여럿인지 또는 자기 자신인지 중요하진 않다) 그러나 그 정의는 정확하고 명확하여 알기 쉬운 전달이 우선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전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구체적인 무언가로 남지 않기 때문에 '변환'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감각적 전환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는 이러한 언어의 변환을 염두에두고 쓴 소설이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화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서술한다. 같은 사건이래도 서로 다른 그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고로 그것은 당연히 다른 언어로 서술되어야함이고, 그것은 그들이 봤었던 시각적 사건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독자에게 요구한다. 당연히 난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난해하기때문에 그만큼 그들의 관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변환된 그들의 서술은 머릿속에서 여러 감각으로 생생히 변환되고 우리는 책속의 그곳에 갇힌다.
작품 속의 콤슨가를 보면서 밀란 쿤데라의 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인생에 대한 얘기가 떠올랐다. 인생은 리허설 없는 단 한번의 연극이기때문에 그 안의 어떠한 것도 중요성을 가지지 못하는, 그야말로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움을 느끼게 한다. 콤슨가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다. 그리고 포크너는 그걸 벤지의 '소리'와 '분노'로 잘 표현해냈다. 3살의 지능을 가진 백치 벤지의 소리는 언어가 없는 무의미한 소리고 분노는 목표가 없는 자극에 의한 분노이다.
예상외로 쉽게 읽었다. 처음의 벤지 섹션 5페이지째에서 현지타임 한 번 온 것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음. 퀜틴 섹션은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빠른 언어 가공 능력이 필요하다. 책 앞에 쓰여있는대로 본인의 평소 독서습관을 유보하고 언어의 재가공에 신경쓰면서 읽어보자.
뒤로 갈수록 읽을만하다니 한번 시도해볼까... 나중에 ㅋㅋ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같은 빙식으로 화자를 바꾸어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하죠.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의 기법을 본딴 것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