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는 레비나스 철학에 푹 빠진 철린이인데
레비나스 뿐만 아니라 근현대의 다른 유대인계 철학자들도 접해보고 싶어서 찾아봤더니
(여기서 유대인계 철학자라 함은 맑스 같이 자신의 전통을 부정한 애들은 제외하고, 유대교와 관련된 철학을 한 사람들)
우리나라에는 뭐 자료가 너무 부족하더라, 그래서 영어권 자료 찾아봤더니
Cambridge Companion(케임브리지 안내서)라는 시리즈가 있더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나온 주제별 논문 모음집임.
여기에 Modern Jewish Philosophy 주제도 있길래 그 책 삼.
근데 문제는, 내가 영어를 수능때말고는 그닥 공부를 안해봐서 원서, 그것도 철학을 다루는 원서를 읽기는 좀 부담이 되더라고.
그래서 번역을 시도해봤어.
그런데 번역 해보니까 영어랑 한국어가 얼마나 다른지 확실히 느껴지더라. 아무래도 원래 지구 반대편에서 써왔던 언어다 보니...
아무튼 내가 앞부분 번역한 거 언어 표현좀 봐줬으면 좋겠어 :3
회의주의자는 유대 철학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대담하게 ‘철학은 보편적인 의문들의 추구’라고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문들을 제기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들은 철학 그 자체에 대한 기여를 제외하고는 특정한 규칙에 얽매여서는 안되며, 특정한 정체성을 보일 수도 없다. 이러한 논의에 있어 20세기에 가장 저명한 학자 중 한명인 율리우스 구트만(Julius Guttmann) 조차도 그의 1933년 조사를 ‘유대교(Judaism)의 철학(Die Philosophie des Judentums)’으로 명명했다. 그 제목은, 겉보기에는 특정한 것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법만큼은 보편적이고 순수하게 이성적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대교의 철학(Philosophy of Judaism)이지, 유대적 철학(Jewish philosophy)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상 속의 회의주의자는 일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만일 철학이 순전히 인간적인 충동이라면, “유대 철학(Jewish philosophy)”은 특정한 주제들(유대교, 유대인의 존재 등)에 대해 일반적인 철학적 접근을 적용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법이 없다. 하나의 철학적인 사조를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충동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것은 친숙한 것으로부터 분리되고자 하는 충동이요, 일반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문시하는(그리스어로는 thaumazein) 태도다. 더욱 최근의 분석주의적 전통에서는, 철학은 개념들의 난장판에 대해 논리 혹은 일상 언어의 분석을 적용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을 치료 요법에 비유하기도 했다: “파리에게 자신이 갇힌 병에서 나갈 방법을 보여주기”. 이러한 이미지는 관습적인 오류로부터의 탈출 혹은 그것의 해소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철학이 생겨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존에 공유되던 암묵적 약속들이 또 다른 사조에서 도전받고 낯선 시각에 던져져서 명백하고 강력한 정당화를 요구할 때일 것이다. 그리고 만일 정당화되지 않는다면, 버려지는 것이다.
괜찮은데 약간 자연스럽게 조금만 다듬었으면 좋겠늠 - dc App
좋겠음 - dc App
오..존경스럽습니다 센세
3번째 문장 ”그리고 그러한 의문들' 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바꿔주기/ 유대철학이나 유대적 철학. 한 가지 단어로 통일하기. 나머지는 굿
잘하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