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념글이 말한대로 부유한 이들이 좌파 성향 정당을 뽑는 건 명예로운 일이고(비록 나는 현 여당이 좌파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그렇다치고) 가난한 이들이 우파 성향 정당을 뽑는 건 이상한 일이다는 식의 논리는 당장 2016  미 대선 당시의 러스트벨리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뽑은 것만 봐도 얼마나 단순무식한 것임을 알 수 있지.

20세기 중반도 아니고 21세기 들어서 우파가 기득권만의 이익만 추구하면 그게 집권이 되겠음? 반대로 지금 현 여당이 노동개악 등 노동자 조지는 거보면 리버럴이 노동친화적인가? 이건 아주 기초적인 상식임. 근데 채사장이 이걸 모를 정도로 멍청할까? 난 그건 아니라고 봄.

아마 채사장이 얘기하고싶은 얘기는 게오르그 루카치가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마르크스의 「철학의 빈곤」인용하면서 언급한 즉자적 계급, 대자적 계급 이거라 생각함. 이게 뮈냐면 즉자적 계급은 계급의식이 없이 프롤레타리아로 살아가는 계급을 의미하고 대자적 계급은 계급의식을 갖고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으로 인식, 투쟁에 나서는 계급을 의미함. 그런고로 루카치는 이미 프롤레타리아의 구조적 위치는 정해져 있고  그들에게 계급의식을 주입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가 행할 혁명의 지름길이라 주장해.

이쯤되면 왜 채사장이 가난한 이의 우파정당 투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지 알겠지? 그들을 즉자적 계급에서 대자적 계급으로 향하게끔 하는 거지ㅇㅇ

근데 이 루카치의 즉자적-대자적 계급 논의는 헤겔에서 연유한 건데 헤겔은 계급뿐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를 즉자와 대자로 구분해 바라보고 설명했기에 즉자-대자 개념을 계급에 대응하는 건 마찬가지로 즉자적 자본, 대자적 자본이라는 개념도 가능하다는 거지. 그러면 자기가 자본인 줄도 모르고 남을 착취하는 즉자적 자본과, 자기가 자본임을 자각하는 대자적 자본 중 어느 것이 옳은가? 대자적 계급이 옳은 길이라면 대자적 자본 역시 옳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식으로 자가당착이 되는 것.

또한 루카치에 이러한 즉자적-대자적 계급 논의는 너무 정적임.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이 평생 노동계급으로 사느냐 이거지. 근대사회 속에서의 개인이 얼마나 유동적인 존재임을 루카치는 간과한 것. 근대의 개인은 얼마든지 월급받으며 일하는 노동계급임과 동시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지주계급이며 거기에 주식 등 금융자본을 지닌 자산계급일 수 있지. 즉 한 사람이 살면서 다양한 정체성과 계급적 이해를 경험한다는 얘기야. 루카치는 이걸 놓친 거고 채사장도 여기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한거지.

루카치의 경우는 마르크스의 계급론을 「자본」에만 의거해서 독해해 생기는 오독인데 마르크스는 절대 그런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됨. 그의 수많은 저작과 엥겔스와의 편지 등 남긴 문헌들의 총체적 이해가 가능해야 대체 이 빨갱이놈이 무슨 의미로 계급론을 얘기한 건지 파악이 가능한 것.

당장 루카치의 해당 이론이 마르크스에서 비롯했다고 하지만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수 백만의 가구가 자신의 생활양식, 이해관계, 문화를 구별지으며 그것에 대해 적대적으로 대립하게 하는 경제적 조건에서 살아가는 한, 그들은 하나의 계급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들 분할지 농민들 사이에 단순한 지역적 연계만이 있는 한, 그리고 그들의 이해의 동질성이 그들간에 어떠한 공통성이나 전국적 결합, 정치적 조직 등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그들은 계급을 형성하지 못한다."라고 얘기했듯이 마르크스는 전체 개인의 재생산 과정을 '전제'로 그 속에서 어떻게 각각의 계급 분화가 나타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근대사회에서의 '개인'이 어떻게 창출되고 재생산되고 발전하는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자 계급론을 펼친 것이지 루카치 식의 계급론은 오히려 마르크스와 반대되는 거야.

하기야 채사장이 뭐 이런 것까지 감안했겠냐만 하여간 그 이론적 연원을 거슬러올라가면 이렇다는 겁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