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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페터 춤토르는 나에게 생소한 건축가였다. 프리츠커상 수상자라는 건 얼핏 본 기억이 있지만, 대표작이나 스타일, 심지어는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대해서도 몰랐다. <건축을 생각하다>를 읽은 지금은 그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건축을 바라보는 방식, 그가 생각하는 건축 설계, 그가 느끼는 빛과 아름다움에 대한 글들은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심지어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의 건축관도 변화시켰다.


  나는 지금까지 '안락주의' 건축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이 그 건물 안에서 최대한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건축이 그것이다. 편할 수만 있다면 양식, 주변 환경과의 관계, 심지어는 프로그램이나 공간 구성까지도 내키는 대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했다. 페터 춤토르는 그것이 멍청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건물은 자연 속에 있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워진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되돌아가므로 인간이 가장 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은 자연이며, 따라서 건물은 자연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마치 경관의 일부처럼 여겨질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건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건물이 자리하게 될 대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심지어는 사랑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소개한 건물을 설계하는 방법도 인상 깊었다. 설계는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한 장소, 그 분위기와 전체적인 인상의 이미지를 단초 삼아 이루어지며 그 경험의 대부분은 유년기에 토대를 둔다고 한다. 이 구절을 읽고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파트에서 자라 아파트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의미 있는 건축적 경험을 그리 많이 하지 못했다. 떠오르는 기억 대부분은 초등학교 때 한 달가량 마이애미의 이모 집에 살았던 기억이다. 벽에 붙어있던 도마뱀, 정원에 내리쬐는 햇살, 방에서 언뜻 보이는 부엌의 풍경이 떠오른다. 나는 앞으로 이런 기억을 가지고 건축 설계를 해야 하는가? 경험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대지와 더 치열하게 대화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제목 이야기를 해 보자. 이 책에서 피터 춤토르가 생각한 건축이란 '내재적 발명'이다. '경관과 하나 되는 건축'과 '기억에 기반을 둔 설계'의 결합을 통해 내재적 발명으로서의 건축이 이루어진다. 건축이 발명인 이유는 비록 내가 제시한 대지와 건축주의 요구에 대한 대답이 과거 선배 건축가의 작품에 비해 하나도 새롭지 않더라도, 내 설계는 결국 내 안의 기억과 내가 대지와 나눈 대화에서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나의 '안락주의'를 한 단계 진화시켰다. 편안함은 목적이지 결코 수단이 될 수 없다. 대지와의 관계에 기반하여 건축주의 요구를 최대한 실현하는 건물을 발명하는 것. 그게 지금 나의 건축관이다.


  책을 읽으면서는 거장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과 홍수처럼 밀려오는 신선하고 놀라운 생각으로 인해 아주 즐거웠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은 공허함과 우울함을 느낀다. 케니스 프램튼은 현대 건축의 두 흐름을 '생산과 소비의 지배적인 방식과 완전히 밀착돼 있는' 건축과 '한정된 영역 속에 사람과 사람,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개방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관계의 장치를 만들려 하는' 건축으로 나누었다. 전자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자기 영속적 순환에 발맞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반면 후자는 나날이 입지가 줄어간다. 누가 봐도 페터 춤토르는 후자를 대표하는 건축가이다. 그의 건축은 아늑하고, 소박하고, 편안하다. 하지만 거대하고 과시적인 건축을 바라는 사회에 그가 설 자리가 남아 있을까? 그의 건축의 훌륭함에 비해 사회가 천박하기에, 내가 지향하는 건축이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에 위대한 건축가의 저서를 접할 때마다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깊은 심연에 홀로 내던져진 것처럼 온몸이 떨리고 두렵다. 언제가 되어서야 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직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