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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시오 키로가의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중 「엘 솔리타리오」
시간이 있기에 생명은 원인과 결과를 가질 수 있다. 만약 생명이 시간의 축을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삶과 죽음을 하나의 인과가 아닌 불리 불가능한 어떤 덩어리처럼 관념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이항대립으로서 삶과 죽음을 이해한다. 삶의 과정이 죽음의 결과를 도출하는 시간적 흐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키로가는 인간의 인식을 무시하고 삶과 죽음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삶에서 피어나는 수많은 감정도 하나의 관념으로 뭉쳐진다. 단편집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사랑과 광기도 키로가의 시선에서는 같은 관념이다. 주변에 행복을 주는 사랑이란 감정이나 고통을 주는 광기라는 감정이나 결국 끝은 죽음이라는 사건뿐이다. 그러니 사랑 끝에 죽음을 맞이하는 행복한 사람이나, 광기로 가득한 삶을 살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나 삶의 가치는 똑같게 본다. 이는 곧 광기와 사랑이 같은 감정이라는 결말에 이른다.
오라시오 키로가의 단편집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중 「엘 솔리타리오」는 두 가지 의미를 뜻한다. 하나는 ‘외알 다이아몬드’를, 다른 하나는 ‘고독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엘 솔리타리오」는 단편 소설답게 단순한 줄거리 구조를 가진다. 세공사 카심의 부인인 마리아는 자신의 신세에 한탄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부 생활에서 유일하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일은 카심이 세공한 보석을 관찰하거나, 외출할 때 잠깐 그 보석을 소유하는 것뿐이다. 남의 보석에 소유욕을 드러내는 마리아와 그를 제지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살아가는 카심의 삐걱거리는 부부 생활은 마리아의 비명과 함께 절정으로 치닫는다.
“모름지기 남편이라면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해주려고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법이라고요! 그런데 당신은…… 당신이란 사람은…… 나에게 싸구려 옷 한 벌 제대로 사준 적이 없다고요!”
불안한 생활에서 마리아는 카심의 작업대에서 세공 중인 다이아몬드, ‘엘 솔리타리오’를 보게 된다. 마리아는 이 보석이 자신을 위한 것이길 바랐다. 그것이 남의 것이라면, 차라리 카심이 ‘엘 솔리타리오’를 훔쳐 달아나 자신에게 선물하길 바랐다. 마리아는 욕구를 넘어서 광기 어린 마음으로 보석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 다이아몬드, 어서 내놔요! 그것만 주면 돼요! 카심 제발, 그건 내 거란 말이에요!”
‘중략’
“내 다이아몬드!”
“알았어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좀 두고 봅시다. …… 우선 누워요.”
마리아는 다이아몬드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카심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잠든다. 그날 밤 ‘엘 솔리타리오’ 세공을 마친 카심은 잠들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가 가슴팍에 다이아몬드 세공품을 꽂는다. 그리고 카심이 방을 나가며 이야기는 끝난다.
서사 문법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를 살핀다면 ‘욕망하다.’ ‘탈락하다.’ ‘소유하다.’라는 세 개의 동사로 정리할 수 있다. 무언가를 원하나 한계에 부딪혀 실패하고, 끝에 가서 그것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전통적인 문학 서사의 방식이다. 키로가는 여기에 괴팍한 변주를 주면서 특유의 기괴함과 공포감을 부여했다.
아름답고 정열적인 마리아는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미모를 이용해 신분 상승을 꿈꿨다. 하지만 실패의 두려움에 평범한 카심과 결혼했고, 죽을 때까지 변하는 것은 없을 것만 같다. 혹시나 어떤 재력가가 자신을 데려가 주거나, 어떠한 일로 본인의 처지가 나아지기를 욕망한다.
카심은 마리아를 사랑한다. 자신이 마리아를 사랑하는 만큼, 마리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고 생활이 나아지게 함으로써 마리아의 사랑을 다시 얻길 욕망한다.
마리아는 세공사 카심이 작업하는 미완성의 보석을 가져가 옷에 대어보거나, 외출하는 시간 동안 착용하는 등 잠깐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완성된 보석은 언제나 마리아의 손에서 벗어난다. 결국 본인이 꿈꾸는 삶에는 다다를 수 없다는 것에 참다못한 마리아는 카심에게 본인의 실패한 인생을 토로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탈락이자, 욕망 실현에 대한 탈락이다.
카심은 아내를 위해 새벽까지 일했다. 미완의 보석을 주인이 아닌 누군가에게 대여하게 허락하는 것은 세공사의 직분에서 어긋나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행복해하는 아내를 보며 카심은 자신의 직업적 신념을 접어두었다. 그러나 아내는 완전한 보석을 가지길 욕망했고, 실패한 인생과 아무것도 본인을 위해서 하지 않는 카심을 원망한다. 자신의 신념마저 포기했음에도 사랑이 돌아오긴커녕 증오뿐인 마리아를 보며 카심은 마리아의 사랑을 얻는데 탈락한다.
‘엘 솔리타리오’를 너무나 가지고 싶은 마리아는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완성된 보석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그날 밤에 마리아는 ‘엘 솔리타리오’가 심장에 꽂힌 채 죽음을 맞이한다. 마리아는 그가 욕망한 대로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엘 솔리타리오’를 영원히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보석을 가지길 원하는 아내의 애원에 못이겨 카심은 ‘엘 솔리타리오’를 주기로 마음먹는다. 아내에게 약속한 밤에 카심은 ‘엘 솔리타리오’를 완성했고 아내의 심장에 바쳤다. 그리고 카심은 혼자가 된 고독한 사람, ‘엘 솔리타리오’가 되었다. 카심은 아내가 광기 어린 욕망의 대상인 ‘엘 솔리타리오’가 됨으로써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로 변모한 것이다.
카심과 마리아는 서사 문법적으로 접점이 없었다. 존재의 최후의 지점은 죽음이다. 접점이 있었더라면 죽음의 단계가 조금이라도 저지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행을 달리던 부부에겐 죽음으로 향하는 속도를 늦출 기제가 없었다. 마리아의 임신이나 보석을 가질 수 있게 된 카심의 행운이 있었더라면 서사 문법은 변형되어 다른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인물 사이의 관계는 끊임없이 추락했고 죽음의 단계에 이르러서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비로소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광기와 사랑의 혼재, 삶과 죽음의 인과성이 파괴된 키로가의 문학에서는 뮈토스 역시 모호하다. 결말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방을 나선다.’이다. 마리아가 그토록 바라던 보석이 흉기가 되어버린 아이러니다. 카심은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며, 죽은 아내에게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는 실패자가 되었다. 일과 일상을 조율하지 못해 끝내 살인해버린 이 소설은 ‘겨울의 뮈토스’적 색채가 강하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카심이 모든 걸 포기하고 그토록 원하던 것을 마리아에게 선물했기에 ‘봄의 뮈토스’ 색채가 강할 수 있다. 카심과 마리아의 행복한 신혼 생활이 있었다는 걸 생각한 후에 이 소설을 읽으면 ‘여름의 뮈토스’에서 ‘겨울의 뮈토스’로 달려가는 비극적인 이야기, ‘가을의 뮈토스’ 색채가 보일 수 있다. 혹은 결말 이후의 시공간은 마리아와 카심 모두 원하는 걸 얻은 풍요가 가득한 시공간일 수 있다. 소설은 등장인물이 바라는 걸 충족한 상태로 끝났으니 ‘여름의 뮈토스’일 수 있다. 결국 ‘엘 솔리타리오’는 편력의 네 가지 구조로 구분될 수 없으며 그 모든 구조로 들여다보아야 작품의 주제가 전달되는 독특한 구조다.
또 다른 구조주의적 관점인 규칙(rule)과 약호(code) 체계 중 ‘은유의 일관성에 관한 규칙’ 역시 편력처럼 어긋나있다. 규칙에 어긋난 표현은 ‘밤’이다. 밤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위험한 것, 보이지 않는 것, 숨겨진 것이다. 밤은 낮보다 더 긍정적이거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한밤중의 납치극은 동트는 태양과 함께 끝이 나며 흡혈귀는 모두가 잠든 밤에 움직인다. 카심이 마리아를 살해한 시간대도 밤이었다. 그렇다면 ‘엘 솔리타리오’의 밤도 독자가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던 그 밤의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그날 밤 카심은 새벽 세시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자 한동안 입술을 꽉 깨물고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의 눈에 또다시 강렬한 불꽃이 일었다.
“아니…… 정말 멋진 티아라잖아요? …… 근데 이건 언제 만든 거죠?”
‘중략’
“장신이 자는 동안, 밤에 말이에요……”
카심은 늘 그랬듯이 그녀가 부탁한 대로 저녁상을 차려주었다. 식사를 마친 그녀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카심, 아까 한 말은 거짓말이죠?” 그녀가 말했다.
“맙소사!” 카심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나.”
늦은 밤 잠이 깨는 바람에 거실로 나가보니, 남편의 작업실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 두 시, 카심은 작업을 끝마쳤다. 그의 눈앞에서 다이아몬드가 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눈부시게 빛났다. 그는 아내가 깨지 않게 살금살금 침실로 가서 탁자 위에 있는 전등을 켰다. 마리아는 차가워 보일 정도로 하얀 시트 속에서, 새햐얀 잠옷을 입고 똑바로 누워 자고 있었다.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침실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일순간 카심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장식핀이 맨살이 훤히 드러난 그녀의 가슴 위에서 한동안 멈춰있었다.
자연스럽게 생각하여 밤이 위협의 공간으로만 읽힌다면 마리아는 카심에게 살해를 당할 지점이 많다. 만약 마리아가 ‘엘 솔리타리오’가 아닌 다른 보석에게 광기 어린 집착을 보였다면 다른 보석으로 세공이 끝난 어느 밤에 죽었을 것이다.
삶=죽음, 사랑=광기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키로가의 세상에서 카심의 밤은 살인 충동이 일어나는 위협적인 공간이 아닌 아내가 가지고 싶은 걸 선물할 로맨틱한 공간으로 읽힐 수 있다. 마리아가 원하는 것은 대개 밤에 만들어진다. 그 시간에 완성되는 보석은 자신의 것이 되기를 항상 바란다. 카심의 눈에 마리아의 광기는 ‘엘 솔리타리오’를 염원하는 아내의 바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보석이 완성된 밤에 아내에게 선물한다. 보석을 자신에게 달라는 아내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카심이 지은 당혹스러운 표정, 슬픔의 표정은 아내에 대한 증오가 아닌 이것을 얻으려면 죽음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인식이다. 여유롭지 않은 생활에서 보석을 선물한다는 것은 삶에서는 불가능한 사랑의 표현이고 오직 죽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소설은 서사 구조와 함께 해석 구조에도 기존의 방식과 거리를 두고 있다.
독자는 미쳐가는 아내의 히스테릭에 질려버린 남편의 살인이라는 텍스트를 읽음과 동시에 부부의 염원 성취라는 이중적이고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임으로써 「엘 솔리타리오」가주고 있는 괴이한 공포성과 환상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재미는 이야기 소재와 줄거리에서도 찾을 수 있겠으나 구조적인 모호성과 뒤틀림에 그 원천이 있다.
키로가는 삶을 인식하는 인물과 욕망하는 인물을 마주 놓는다. 전자의 인물은 삶과 욕망 실현 사이에서 고민하고 최선을 택한다. 그리고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삶과 죽음이 인과관계로 맺어지지 않은 키로가의 세계에서 대립의 해소는 없으며 오직 선택만이 돋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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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발전하겠습니다.
죽음을 통해 비로소 성취되는 소원이라는 점에서 낭만적인 아이러니라는 게 재미있네 ㅋㅋ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
지적이나 다른 의견 받고 싶은데 말이 없엉 ;ㅅ; 이번에 나온 신작이라 그런가 읽은 사람이 별로 없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