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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과 하양이 있다. 그 사이에 회색이 있다. 그것을 총칭해 무채색이라고 한다. 검정은 한 종류의 검정밖에, 하양은 한 종류의 하양밖에 없다. 하지만 회색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약간 검은 회색, 약간 하얀 회색, 푸른빛이 도는 회색, '회색적'인 회색 등 아무튼 많다.
흔히 악은 검정, 선은 하양에 비유된다. 과연 검은 악, 하얀 선이 시적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에 존재할까? 범죄자에게도 효심이 있고 성인에게도 원수는 있다. 이들은 선과 악으로 딱 잘라 재단할 수 없다. 단지 조금 검은 회색, 조금 하얀 회색일 뿐이다. 완벽한 선, 완벽한 악은 현실에는 없다. 단지 명도가 바뀔 뿐.
경찰은 법의 하수인이자 정의로운 사냥꾼이다. 그들의 대의는 정의이며 악당을 잡음으로써 그 대의를 실현한다. 그런데 악당을 체포하는 일이 경찰의 대의를 훼손한다면, 또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악당을 숨겨야 한다면 경찰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13.67>은 이 질문에 대한 경찰 권전둬의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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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경찰 권전둬에게 누군가가 묻는다. "당신, 도대체 왜 경찰이 된 거야?" 그는 이 질문에 답변을 찾기 위해 노력해 결실을 본다. "흑과 백 사이에서 정의를 찾아라." 정의는 선 또는 악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회색이며, 그렇기에 정의 또한 회색의 영역에 있다. 더러운 수단을 쓰고 위법의 줄 위에서 곡예를 펼쳐도 사건을 해결해 시민이 안전하고 행복해진다면 정의는 실현된다
<13.67>은 6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고 각 장은 완결된 구성을 가지는 단편 소설이다. 특이하게 1장 '흑과 백 사이의 진실'에서부터 6장 '빌려온 시간'까지 시간은 역순으로 흐른다. 즉 1장의 배경은 2013년이지만 6장의 배경은 1967년이다. <13.67>의 장르적인 특징은 모든 단편에 들어간 반전과 논리적인 추리이다. 추리 소설에서 작가가 트릭에 지나치게 빠져든 나머지 독자가 작중 서술을 통해 결코 알 수 없는 장치가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에 비해 <13.67>은 어떤 독자라도 탐정의 추리를 납득할 수 있다. 사소하게 넘어갔던 묘사를 권전둬는 포착하고 그것을 단초 삼아 놀라운 반전에 다다른다. 이와 같은 방식은 '사건 발생 -> 단서 수집 -> 권전둬의 추리 해설로 드러나는 반전'이라는 전개가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는데, 작가 찬호께이는 반전의 놀라움으로 이 한계를 깨부쉈다. 누구도 반복되는 전개로 인한 지루함을 느낄 수 없으리라.
작가 찬호께이는 <13.67>의 각 장은 본격 추리소설의 문법을 따르되 작품 전체로 봤을 때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성격을 갖게 했다고 밝혔다. <13.67>이 사회파 추리소설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홍콩의 분위기와 홍콩 경찰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때문이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로 좌파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이 벌어졌던 1967년부터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던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관전둬의 입을 빌려 경찰을 추궁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책 맨 앞에 실어 놓은 '상사의 합법적 명령에 의심 없이 절대 복종할 것'을 선언하는 홍콩경찰선서와, 정의를 추구하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불법의 영역에 손을 담그는 관전둬의 대비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경찰은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이외에도 홍콩의 지리를 이용한 트릭이 인상적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지명들이 쏟아지고, 그것들의 지리적 위치가 사건 해결의 단서가 되기도 하는 상황은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겪어본 것이었다. 덕분에 시대별로 변해가는 홍콩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몇몇 장면에서는 실제로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다만 이건 양날의 검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트릭은 현장감과 홍콩의 장소성을 매력적으로 발산하는 데 기여했지만, 홍콩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의 이해와 몰입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수출을 염두에 두지 않은 작품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홍콩 지도 정도는 첨부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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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트릭, 명료한 문체에 매력적인 캐릭터와 장르적 치밀함까지 갖춘 <13.67>은 추리 소설의 극에 다다랐다. 경찰을 소재로 한 추리 소설은 태어나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패배하게 될 것이다. 본격 추리와 사회파 추리를 완벽하게 버무린 찬호께이는 '무한대의 재능'을 가진 작가임이 틀림없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에도 <13.67>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우리만의 지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정권의 앞잡이가 된 부패 경찰과 민주화의 달성을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경찰을 통렬하게 비판함으로써 한국의 경찰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작품. 정치적인 비난과 논란에 휩싸이겠지만 분명 명작의 반열에 오를 그런 작품이 언젠가 한국에서도 나왔으면 좋겠다.
평점은 5점(5점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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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이리 비추가 많은 거시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