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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루키 소설에서 정말 좋아하는 요소는, 현실적인 세계에서 평범한 생활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어떤 비현실적이고 절대적인 요소에 쫓겨 숨이 가쁘게 달아난다는 요소임. (댄스댄스댄스에서의 하와이의 해골들, 세끝하원의 야미쿠로와 곧 닥쳐올 주인공의 죽음, 1Q84의 리틀피플) 내가 알기로는 하루키가 외로움이나 고독을 그려내는 글 대신, 헌신과 사랑을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을 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초기의 소설에서는 이런게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바노들 1973 핀볼, 놀웨숲은 비현실적인 요소가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단순히 이야기 재료로 소비하려는 경향이 컸다고 봄. 양을 쫓는 모험의 비현실적인 요소 또한 상실감을 그려내기 위한 소품으로 썼다는 느낌이 크고.)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루키의 비교적 최근 작품들을 보면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나를 노린다는 전개가 거의 필수적으로 나타남. 잠깐 본인 이야기를 하자면,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고, 힘든 사연을 가지고 자란 것도 아니지만 본인은 언뜻언뜻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음. 내가 사는게 사실은 무언가 어떤 이상한 것에 쫓겨 달아나는 것 같고, 가끔씩 그것한테 잡힐 듯 말듯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럴 때면 굉장히 마음 속이 먹먹해지고 굉장히 아득해지는, 그런 경험이라고 해야 하나. 나중에 친한 선생님이랑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그 선생님께서 잠깐 흘러가듯이 그럴 때가 사람이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는 때, 라고 말씀해 주셨던게 생각이 나. 초기의 주변 사람들의 상실이, 시간이 지나며 하루키의 글에서는 '어떤 강대한 존재에게 쫓김'이라는 요소로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는 거지.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어떤 존재에게 쫓기는 (삶에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막대한 공황을 느끼는) 인물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가임.
초기의 하루키는 단순히 우리 마음 속의 고독을 세세하게 그러냈고,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려서 압도적인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이제 하루키는 나이를 먹으면서 마음을 바꾼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기도 해. 삶과 외로움이라는 것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무언가에 쫓기는 것과 같고, 그것이 불안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당신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해변의 카프카에서의, 어떤 요소에게도 쫓기지 않고 (아버지와 경찰) 어떤 위협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는 숲의 마을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에키씨의 피를 마시고 밖으로 나와 복잡한 울음을 터트리는 카프카가 그렇고, 1Q84에서 리틀피플에게 쫓기고, 다시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지만, 한 평생을 사랑했던 덴고와 아오마메를 다시 만나게 한 것 처럼. 하루키가 워낙 섹스신이 많아 야설할배로 불리지만, 난 1Q84 엔딩의 섹스신을 존나게 감명깊게 읽었어. 이 곳이 어디라도 상관없다, 라는 아오마메의 말이 놀웨숲의 와타나베가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라는 대사와 오버랩되서.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기사단장 죽이기가 하루키 문학의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어떤 존재에게 쫓기는 일이 없다. 주인공은 도중 도중 어떤 생활생활의 요소들에게 이상한 불안감을 느끼곤 하지만, 기사단장 죽이기는, 하루키 소설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이 어떤 것을 주도적으로 찾아 나서는 내용임. 마리에를 찾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고,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기승전결이 너무 밋밋하고 지루하다는 말을 자주 하던데, 물론 이 점은 나도 동의하지만, 하루키가 앞으로 쓰고자 할, 다음 소설을 위한 일종의 나름의 시험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결론은 하루키 할배는 죽기 전, 존나게 쩌는, 담백하고 아름다운 클래식을 하나 쓰고 죽으실 거라 이말이야.
최근 쓰신 글이 영 퀄리티가 별로인 것은 마지막 걸작을 위한 빌드업이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젠가 할배께서 쓰시고 싶다한 하루키의 종합소설을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믿고 있다.
오 나랑 생각 거의 비슷하네. 기사단장 죽이기가 지루하다는 거 말고는 전적으로 동의함. 한 5년쯤 뒤에 까마가 형제들 같은 총합소설 발표하고 노벨상 받으실 듯
나도 꽤 재밌게 읽었지만 1Q84를 읽고 그 다음에 바로 봐서 그런지 좀 심심하다고 느꼈음. 다른 작품에 비해 주인공이 겪는 시련이 상당히 작아 보여서. 하지만 그것도 나름의 특색이라고 보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문장으로만 따지면 하루키 글들 중 가장 세련됐다는 생각은 들더라.
하루키 스스로 자신은 아직 발전 도상에 있는 작가라고 했지. 멋진 할아버지야.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