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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 Christmas! 독붕이들 성탄절은 잘 보낸?
잘 보내 못했다구? 걱정 마라. 무엇보다 지금 책을 즐기자구.
남자라면 로씨야어를 생각해서 책을 여자친구로 받아들이면되고,
여자라면 프랑스어를 생각해서 책을 남자친구로 받아들이면 되잖아! 하하하!........ 훌쩍......
성탄절은 예수 크리스토스께서 탄생했음을 기념하는 날이야.
정확히는 언제였는지 몰라. 성경에는 기록이 안되었거든.
로마에는 태양신 Sol Invictus, 즉 "불패의 태양"이라는 신이 있다고 믿었어.
그 신의 생일이 12월 25일, 동짓날이라고 믿었던거야.
동지부터 시작해 날이 밤보다 길어지잖아? 그래서 "빛이 어둠을 몰아낸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로마 달력으로 동지인 이 날을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삼은 거지.
아무튼 어제 나는 이 책을 배송받았어. 배송해주신 모든 분에게 평안이 있기를...
그리고, 나는 정신없이 이 책에 빠져들어갔어.
올해 나의 성탄절 책은 <고발>, 너로 정했다야!
개인적으로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어.
왜냐? 나는 한국인으로서 17년 정도를 중화인민공화국 북경에서 살았거든.
자세히는 더 못 말하지만...
나는 2016년 사드 사태도 겪어봤어.
참 신기했지. 지하철 텔레비전에서 한국 가수들 나오기도 했는데 사드 때문에 한 순간에 싹 사라진거.
북경에서 한국인을 폭행한다는 유언비어도 돌았으니, 북경 한국인 민심이 얼마나 흉흉했는지 알 수 있지.
그런데 사드 배치의 근본적 배경이 뭐야?
남북분단이지. 안 그래?
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북경에 있는 한국인들도 마냥 안전하다고 하기엔 힘들다는 느낌적 느낌이 있었어.
분단이 내 환경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친거지...
워워, "종북"이니 "빨갱이"는 집어둬.
나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이 시끼들은 사람 껍질 뒤집어쓴 짐승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군사분계선 이북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럴까?
거기는 뿔달린 사람이 살까? 모든 사람이 배고픔과 목마름도 모른 채 '령도자'를 위해 인생을 바치는 기계들일까?
과연?
적어도 내가 보고 들은 바로는, 아니었어.
그들도 사람이야. 배고프면 밥먹어야하고, 목마르면 물마셔야하고,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또 사랑도 하고.
그러나, 이론의 여지 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체제는 극도로 비인간적이야.
웃겨도 웃지 못해. 또 슬퍼도 웃어야해. 언론과 출판의 자유도 없어.
글을 쓰더라도, 기본적으로 국가와 당과 '령도자'를 위해 써야지,
자유로운 비판의식을 내비치는 글은 쓸 수가 없어.
다만 억압받는 그들도 사람이기에,
은밀하게 자기의 글을 쓰기도 해.
"피눈물에 뼈로 적으면서".
그리고 그런 글을 이남으로 반출하고 출판한 것이
반디의 단편집 <고발>이다.
에밀 졸라가 썼던 <나는 고발한다>와 성격이 비슷하달까?
작가의 이름 '반디'는 필명. 반딧불이에서 따왔어. (정보대로라면) 지금까지 망명 안 가고 조선에서 살고 있다고 하네.
어두운 밤에서 반딧불은 더 밝게 보이잖아. 거기서 따왔다는 듯.
맨 마지막에 있는 <출간에 부쳐>(도희윤 작성)이란 글에 따르면,
반디 작가는 1950년에 태어났어. 이 해는 6.25가 일어난 해지. 부모님따라 중국으로 피난 갔다가 다시 조선으로 가서 살았다고 해.
1970년도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조선 잡지에 글이 실리기도 했고, 현재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이라고 하는데......
뭐 '반디'의 정체가 불명인 이상,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더 자세한 걸 알아낼 수 없겠지.
다만 글에 쓰인 언어나 다른 요소를 자세히 보면 함경도 사람인 듯? 물론 이것도 추측의 영역을 못 벗어나겠지만.
이 책에 실린 일곱 소설과 각각의 창작 시기는 다음과 같아.
<탈북기> 1989.12.12.
<유령의 도시> 1993. 4.
<준마의 일생> 1993. 12. 29.
<지척만리> 1993. 2.7.
<복마전> 1995. 12. 30.
<무대> 1995. 1. 29.
<빨간 버섯> 1993. 7. 3.
대부분이 1990년대 초중반에 쓰인 것이지.
여기서 중요한 것.
1994년 7월 8일에 김일성이 죽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알고 읽으면 그 상황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그리고 1990년대 초라면 조선에서 아직은 마르크스의 영향이 남아있을 때이기도 해.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권이 몰락한 때이기도 하고.
아래는 내가 각각의 소설을 읽고 느낀 감상이야.
스포일러는 하지 않을게. 이 감상문 읽는 독붕이들도 들어서 직접 읽어보길 추천해.
<탈북기> - 작중에서 대놓고 언급될 정도로, 최서해의 <탈출기>의 영향을 받은 소설이다. 서간체인 점도 그렇고.
다만 내가 최서해 <탈출기>를 읽은 지 오래되서 가물가물하네. 이 기회에 그것도 읽고 비교해봐야겠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말로는 '민주주의'와 '인민'과 '공화국'을 내세우지만,
정작 그 실체는 밑도 끝도 없이 반동적인 체제라는 것을 까발리는 소설.
이 소설은 신분제도를 깐다. '성분'이라는 이름의 신분제도를 말이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어떠한 일을 했는지에 따라,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의 경험이 결정되는 것이 신분제도 아니면 뭘까?
양두구육이란 말은 딱 이럴 때 쓰는 거지. 그런 나라는 인간불모지야.
모성애 같은 본능까지 희생시켜 버리는 그런 극한의 불모지.
전체적으로 살짝 거칠고 투박하다는 느낌이 조금 있다. 못 썼다는 뜻이 아니다. 그 때문에 진솔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유령의 도시> -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유령이.
유령은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무섭다'.
사람에게 그런 공포가 있어야 유령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무서움을 모르고 당당히 배짱있게 살아가던 사람마저,
그 유령이 만들어낸 것 때문에 몰락하고 결국은 공포를 느낀다.
무언가를 보고 공포에 질리는 어린아이의 행동에도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
그 사회의 단면이 생생하게 그려진 소설이다.
아직 살아있던 김일성더러 유령이라고도 표현하는 용기가 엄청난 소설.
<준마의 일생>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 수 있도록 약속받았고,
그걸 철석같이 믿으며 한뉘를 약속에게 바쳤다.
그러나 결국 남은 것은 추위와 빈궁.
약속에게 배신당한 자의 절규가
매섭고도 한맺힌 북방의 추위처럼 뼈에 사무쳐온다.
<지척만리>
지척인데 만리라니? 이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요!
여행증이 있어야 여행을 할 수 있지.
어머니가 아파? 아버지가 죽었어?
그래도 딴 지방 가려면 여행증이 있어야지. 없으면 벌 받는다.
이 글을 읽으며 내 가족의 옛 일이 떠올랐다.
내 증조부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사업했고, 할아버지는 거기서 태어나셨어.
2차대전 이후로 한국으로 가셨지만 증조부만은 일본에 남으셨지.
한일수교 이후로 할아버지는 일본으로 가서 증조부 모셔오려고 했어.
그러나 당시는 해외 여행을 제한해서 여권 발급 받기가 어려웠어.
또 일본은 조총련도 있어서 정부 사람들도 그걸 많이 의식했다고...
그래서 할아버지는 일본을 못 갔고 증조부를 못 모셔왔어. 결국 일본에서 돌아가시고 화장된 골분만 한국으로 왔지.
이런 가족사가 있는 나에게,
이 이야기는 절대로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어.
아니, 이 소설 속 이야기가 더 참담하지. 내 할아버지는 해외 여행 규제 때문에 못 갔지만,
<지척만리>는 국내여행 통제를 다루니.
읽으면서 눈에 뜨거운게 살짝 맺혔더라.
<복마전> - "여행 조건이 다 마련되어 있는 이 세월이야 무엇 때문에 또 걸어다니겠습니까."
그러나 그 좋은 여행 조건의 실상은?
뭐긴 뭐야. 수령 동지한테만 허락된 것이지.
일반인은 그 수령 동지 때문에 제때 열차를 못타고,
대합실에서 사람들이 서로 밀쳐서 뼈가 부러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그처럼 일반 민중은 극도로 열악한 교통사정을 다 감수해야 한다.
수령 동지 한 사람 때문에!
우연한 기회에 수령 폐하의 성은을 입은 평범한 일반인의 이야기가 드러내는 것은,
이 나라는 어떤 마술 때문에 구슬픈 울음소리도 웃음소리가 되어버리는 나라라는 것이다.
<무대>
김일성이 죽은 지 얼마 안되었을 때,
그러니까 1994년 7월 8일 직후를 배경으로 한다.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있다고 연출되는 무대가 되었다.
인생은 연기를 강요받은 무대.
아파도 연출자가 웃으라 하면 하하 웃어야한다.
간지러워도 연출자가 울라면 엉엉 울어야한다.
별거 아닌 사소한 오해로 인하여, 자기도 그 무대에 속하고 그 무대를 주도했음을 깨달은 주인공은,
그 사실을 깨달음을 얻고 이내 무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취한다.
내가 보기엔 서사가 절묘했다. 서로 상관없을 것 같은 요소들이 긴밀하게 얽혀드는 그 서사가 마음에 들었다.
다만 출판사 측의 실수 때문인지 원작자의 실수 때문인지 몰라도, 인물 이름 표기에 오기가 좀 있어서 조금 헷갈렸다.
<빨간 버섯>
빨간 버섯은 독버섯이다.
사람을 죽여버리기에,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하는!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양심의 밭을 일구고,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빨간 버섯'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희생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
(아마도 함경도의) ㄴ시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었지만,
그것은 ㄴ시의 일만이 아니요, ㄴ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체를 비유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확하다.
읽으면서 중간에 <창세기> 39장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가 생각나는 대목도 있었다.
진짜 아주 조금 야했지만, 오히려 그런 살짝 선정적인 부분 때문에 '빨간 버섯'의 부정부패가 확 와닿았다.
또 과거 한국에서 월북한 사람의 남은 가족은 사회적으로 안좋은 대우를 받았던 것처럼,
작중에서 드러나는 조선에서 월남한 사람의 남은 가족도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취급을 받는 모습을 보며,
분단이 낳은 비극을 새삼 느꼈다.
내 감상은 대체로 이래.
스포 안 하려고 하니까 좀 애매하게 써놨는데...
이 기회에 한 번 읽어봐. 내가 한 말이 뭔지 이해가 될걸.
니체는 자기는 피로 쓴 글만 읽는다고 했어.
니체가 규정하는 피로 쓴 글에 <고발>에 실린 단편소설도 포함되지 않을까?
작가 스스로의 말대로 좀 미숙하다는 감이 아예 없지는 않아.
하지만 전체적으로 문체가 괜찮고, (내 기호에 따른 결과겠지만) 이북의 언어를 읽는 맛이 좋았다.
반디의 소설들은 솔제니친과 도블라토프의 글과 비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오늘은 성탄절이야.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상징적인 날.
자기가 태양인 척하는 어둠이 있다. 그것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성탄절에 <고발>을 읽으면서, 내 마음 속에는 그러한 어둠이 물러갈 날이 오기를 원하는 강렬한 마음을 품었어.
그래서 '반디' 작가의 정체가 누구인지 밝혀져도 안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또 작중 배경이 된 곳들을 누구나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며
<고발>의 책장을 덮는다.
일단 작품외적인 부분들이 끌려서 사긴 했는데 문체도 괜찮구나.. 사실 글빨은 후진데 반체제 작가란 이유만으로 빨리는 거 아닐까 싶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그 이유만으로 빨렸으면 해외에서 고평가도 못 받았을거야. 기본적으로 괜찮아.
추가로 필명이 왜 반디인가 싶었는데 반딧불이의 반디였구나..
사고 읽으면 너도 감상문 올려줘... 부탁이오.
잘 읽었음. 소장하고 싶은 책이네. 근데 문득 생각이 드는 게, 사실 반디 작가는 북조선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경력을 위조한 거라면?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오래 사셔서 솔제니친처럼 노벨상도 받고 그러셨으면 좋겠네
물론 나도 그걸 살짝 의심했어. 그런데 내 경험에 비추면 (자세히 물어보지는 마...), 이거 쓴 거는 북조선의 언어가 생생해. 문체도 그렇고... 적어도 내가 확신한 것은, 북조선에 매우 오래 산 사람이 아니면 이런 글은 못 쓴다는 것이었어. (물론 내가 틀릴 가능성도 있지만) 그걸 별개로 치더라도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어. 문학적 기교도 나름 좋았고. 적어도 나한테는 가슴에 깊은 인상을 주더라. 성탄절인데 이런 글 읽어줘서 고맙다. 건강하고 평안해.
그렇다면 의심은 접어도 되겠네 ㅋㅋ 내년에 꼭 읽어봐야겠다. 소중한 시간, 행복하게 보내시길!
오 이거 되게 신기하다 북한에도 이런 작가가 있었구나
살아계신다면, 북조선에 있으면서 숨죽이고 살아가고 있겠지. 이런 작품집이 출간된 것은 정말 다행이야/
크 독갤의 보배. 감상추. 항상 감상쓰신 책들 읽고싶게 만드시네요 - dc App
아유 별말씀을...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올 한해도 다 갔는데 남은 한해 잘 보내시구, 새해도 복되길...
우와 몇 년 전에 읽은 책인데 제목 보고 반가워서 올려주신 감상문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재밌게 읽었는데 애기가 울어서 김일성 초상화를 가리려고 커튼 친 탓에 의심과 감시를 받던 부부 이야기랑 아마 <무대>인 것 같은데 꽃을 조문하는 횟수가 정해지는 것, 이웃들이 서로 감시하고 신고할 수 있다는 숨막힘, 꽃이 동나서 산으로 조달하러 가는 상황이 특히나 충격적이라 나중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김일성 광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덕분에 재독하고 싶어지네요 ㅎㅎ 감상문 잘 읽고 갑니다!!
허허.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이 책을 읽은 분이 계셨다니 동지가 생긴 기분이군요. 꼭 재독하시길! 아자아자.
흥미를 마구 돋우는 글이네용.
아유 감사합니다. 꼭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