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글은 건조하다. 건조해서 날 서있다. <남한산성>은 건조하고 날서있는 김훈의 글에 잘 들어맞는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날 서있고, 상황도 날 서있다. 소설을 읽을 때 칼끝 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10년 전에 <남한산성>을 읽었다. 지금 두 번째 읽었는데도 날 서 있음은 그대로다.

말(言) 들의 향연

최명길은 화친하여 길을 열자 하였다. 김상헌은 싸워서 길을 열자 하였다. 최명길의 말과 김상헌의 말은 옳았다성안 주민들의 말도 옳았고, 성벽을 지키다 패해 전의를 상실한 군병들의 화친하라는 읍소도 옳았다. 서로가 옳다 주장했고 모두 옳았다. 옳은 말들은 부딪혔으나 공허했다. 말들은 부족한 군량을 채워주지 못했고, 발가락이 떨어져 나간 군졸들의 상처를 치료하지 못했다.  

영의정 김류는 말들 속에서 분명하지 않은 인물이다. 최명길의 화친을 이야기할 때 김류는 '화친을 하자는 이야기 
옵니다' 라고 임금에게 말을 옮겼다. 김상헌은 싸움을 이야기할 때 싸우자는 이야기옵니다라고 말을 옮겼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때 김류는 말을 옮길 뿐이었다. 김류라는 인물은 파악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어쩌면 파악하지 않으려 했기에 파악하기 힘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명길은 말들이 옳다고 하는 가운데, 김상헌의 말이 옳다 한다. 그리고 최명길은 한발 더 나간다.
  
‘대의를 말하는 것은 크고 사세를 살피는 목소리는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김상헌의 말은 옳았다면 최명길의 말은 맞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최명길의 말은 맞았고, 김상헌의 말은 옳으니 책을 읽으면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생각 끝에 맞는 말이 나는 더 맞다고 생각했다.

먹고사는 일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밥을 짓고 먹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묘사한다. <남한산성>에서 상궁이 밥을 짓고 인조에게 올리는 과정이 자세하다. 인조가 식사하는 장면도 상세하다.
  
‘국은 간이 엷어서 뒷맛이 멀었다.’
  ‘몸(인조) 속이 가물었던지 국물은 순하고 깊게 퍼졌다.’
  ‘국물에서 흙냄새가 났다.
 
 음식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마다 전쟁이 먹고사는 일임을 실감하게 된다. 김훈 소설 속의 먹고사는 일은 꽤 고돼 보인다. 먹는 일 앞에서 다른 것들은 
하찮아진다.

공허한 말, 채우는 밥과 국

말들은 높고 시끄러웠지만 공허했다. 말들은 공허함을 어쩌지 못했지만, 음식은 내장의 공허함을 채웠다. 최명길의 말대로 죽음으로 삶을 지탱하지는 못했다. 삶을 지탱하는 건 밥과 국이었다. 봄이 오자 임금은 칸에게 무릎을 꿇었다. 서날쇠는 처자식을 데려 남한산성으로 되돌아온다. 나루를 쌍둥이 중 누구에게 시집보내나 고민했다. 서날쇠는 웃었다. 김상헌은 형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길이었다. 자살에 실패한 게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