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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책들의 천국,
작가들의 소망이자 지옥,
음험한 음모만큼이나 깊은 모험이 도사리는,
이곳은 바로 부흐하임, 꿈꾸는 책들의 도시.
한줄 요약
이것은 한 공룡이 책 한 권과 위대한 작가적 영감을 얻게 된 경위이다.
발터 뫼르스의 차모니아 연대기 중 최고 성공작이다. 사실 그건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고, 이 책을 굉장히 재밌게 읽었단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중하련다. 리뷰가 감질나야 읽어볼 용의가 생기지 않겠는지?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판타지모험성장소설이라 하면 적절한 장르분류가 될 것 같다. 우선 작가부터가 차모니아어를 번역해서 옮긴 거라는 컨셉이라 판타지이고, 모험은 "완벽한 원고의 작가를 찾기 위한" 목적을 가진 미텐메츠가, 거시적으론 "피 비린내 나는 책을 얻고 오름을 경험하게 된 경위"를 회고하며 설명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장은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오름과 연관이 있다.
판타지부터 살펴보자. 이 작품의 배경은 곧 린트부름 요새와 부흐하임, 그리고 그 지하던전(?)이다. 사실 주무대는 부흐하임의 지하던전이고, 보조무대가 부흐하임이다. 린트부름 요새는 심심찮게 묘사되지만 초반부 이후로 등장도 안 하고 언급되기만 하는 곳이니 주인공 출신인 것만 빼면 기억할 필요 없다.
부흐하임은 "꿈꾸는 책들의 도시"라고 불리며, 누가 했던 비유를 옮겨 쓰자면 "파주출판단지의 판타지 버전"이다. 이 도시에 종사하는 모든 직업군은 책과 관련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판업과 작가는 물론이고, 낭송자, 비평가, 책사냥꾼, 브로커, 고서점상 등등...... 그야말로 책들의 천국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책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독서광이라면 꿈 꿔봄직한 탐스러운 도시다!)
하지만 이 도시는 철저하게 시장논리로 굴러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폐해의 일면 또한 존재한다. 명성을 잃고 추락한 작가들은 집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구멍에 들어가 여행객들의 조롱과 동정 일 푼을 얻으며 시를 써준다. 그 어두운 일면은, 그것이 부흐하임에서 성공하고자하는 작가들의 꿈과 이상향의 그림자에 얼마나 짙게 깔려있는지 보여준다.
동화 같은 (작가가 그린) 화풍과 그 도입부, 그리고 부흐하임의 모습에 속지 말라! 이 책에서 나오는 모든 설화나 전설은 비극이며, 주인공이 겪는 모험조차도 희망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갸웃하게 된다. 부흐하임은 휘황찬란한 비극의 조성지며, 인간이 없는 인외종족들로 가득한 세계는 환상적이지만 동시에 괴리감 또한 품고있다.
그리고 그런 반대되는 이면은 부흐하임의 지하동굴 속에서도 이어진다. 물론...... 지하라는 이미지가 가지는 것이 대개 그렇듯, 이곳에서 따스함과 안락함을 기대했다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 말하겠다. 벌레를 상당히 좋아하는 뫼르스의 취향을 싫어도 알게 된다.
모험은 이 소설의 핵심이고 정수다. 이 소설은 그 발단과 결말은 과정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단은 과정을 위한 신호탄이고, 결말은 과정의 끝을 고함을 알리는 커튼콜이다. 결말이 다소 한꺼번에 정리되는 느낌이 들지라도 괘념치 말라. 이 책은 처음부터 그 결말을 정해뒀으니 말이다. 700페이지에 1부 2부로 나뉘어 있어 잊기 쉽지만,
이 책은 엄연히 린트부름 요새 출신 공룡 미텐메츠가 "피 비린내 나는 책"을 얻고 오름을 경험하게 된 경위를 설명한다. 그게 전부다. 그 과정을 700페이지에 걸쳐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읽다보면 감상의 홍수라고 느낄 수 있다. 뫼르스의 풍부한 묘사는 상상력을 손쉽게 자극시키고, 거기에 그의 삽화까지 가세하면서(비록 인와종족은 내겐 별로였지만)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그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비록 독일 작가라서 유머센스는 그리 좋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없는 건 결코 아니다. 미텐메츠의 1인칭 서술은 감상의 홍수를 차분히 헤쳐나가며, 그의 독특한 정신과 성장을 충분히 체감하고도 남는다.
거기에 책 자체의 연출도 독특하다. 1부의 마지막이나, 2부 중반부에서 텍스트적 연출이 돋보이는데, 특히 1부 마지막은 본인이 직접 체험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전자책으로는 느끼기 힘들다. 종이책으로 직접 펼쳐보는 맛을 느껴야 한다. 왜냐면 부흐하임은 전자책은커녕 기계라곤 인쇄술 외에 발전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모험은 어딘가 희망과 그를 둘러싼 갈등 정도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런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갈등은 여기선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모험이라고 서술했지만 사실상 미텐메츠의 생존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살아남기 위해 모험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 책에서 나오는 모든 설화나 전설은 비극이다. 희망은 한 톨 한 점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건 미텐메츠의 모험에서도 마찬가지다. 결말 자체는 극적인 해피엔딩에 가깝지만, 그 과정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았다. 낭만은 없다. 두려움의 연속이고, 비극의 반복이다. 그리고 복수가 남았을 뿐.
하지만 그럼에도 이겨냈기에 이 모험은 추억으로 회고될 수 있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마지막 성장. 주인공 미텐메츠는 위대한 작가적 영감의 경험이라 불리는 오름을 믿지 않는다. 미신에 가깝다고 믿는 젊은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미텐메츠가 오름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해도 된다. 오름에 대한 얘기, 곧 믿는 자만이 증거하고 경험할 수 있는 오름은 종교적 믿음과 흡사하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고, 바라는 자들의 실상이라는 성경의 말을 떠올리면 더 명확해진다.
미텐메츠는 이성'만'을 중시했던 감정적인 젊은이였다. 그는 신비를 거부했고, 의심이 가득했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성장할 수 있었다. 지하동굴에 던져지고, 난관을 헤쳐나가고, 믿을 수 없는 걸 경험하고 목격하면서, 신비라 믿었던 것이 사실임을 체험하며, 의심을 깨치고 진정으로 믿을 수 있게 되면서, 그럼으로서 최종적으론 '오름'을 믿게 된다.
그는 단순히 작가적 성장만 이뤄내지 않았다. 좀 더 성숙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아무것도 쓰지 못했던 그에게 자신과 확신을 불어넣기 충분했다. 만일 그가 여전히 자신의 믿음과 이성만을 관철했다면, 그도 결국 어쩔 수 없는 부흐하임의 작가가 되었을 것이고, 위대함만을 목 빠지게 바라보며 운에 운명을 맡기는, 늘 불안에 쫓기는 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그 안의 힘도 끄집어내고, 보이지 않은 것을 믿으며, 그것을 진정으로 체험하기까지 했다. 책의 끝에 가서는, 그는 더 이상 처음에 보여주었던 그와는 전혀 다른 공룡이 되었다. 성장한 것이다! 동시에 위대한 작가를 향해,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 되었다.
(물론 그 위대한 한 걸음이 이 책 내용이라고 작가가 은근히 말하는 건 다소 부끄럽게 느껴지지만 그러려니 하자.)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이러한 이유로 판타지모험성장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서사와 묘사, 복선, 분위기, 반전 등 알뜰살뜰하게 챙기는 뫼르스의 역량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유머는 유감이다.(아예 안 웃긴 건 아닌데, 여태 나온 '농담' 중에서 웃긴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정말 재밌게 읽었다. 인외종족인 게 몰입의 장애가 됐지만...... 인외종족이 취향이라면 역으로 취향일 것이다. 작가 삽화도 나는 배경은 괜찮은데 인물묘사가 영 그랬지만...... 그것도 호불호니 뭐라 말할 수 없다. 다만 미텐메츠가 배불뚝이 패션센스 최악인 5m짜리 날개 달린 공룡인 건 좀 단점이다. 굳이 신경 쓰지만 않으면 된다. 신경 쓸 수밖에 없겠지만.
책을 좋아한다면, 책에 대한 모든 상상력을 끌어낸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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