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지식의 정석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
1939년 10월 16일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분키치에게 사죄한다.
조선호텔에서 안준생(왼쪽)이 이토 히로부미의 둘째 아들 이토 분키치(오른쪽 첫번째 앞줄)을 만나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날 안준생의 박분사 방문에 대해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는 “망부의 사죄는 보국의 정성으로 이토공 영전에 고개 숙이다, 운명의 아들 안중생” 이라는 제목의 7면 톱기사를 사진과 함께 내보냈다.
■ 나라의 영웅이 아닌 아버지로의 안중근,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
안중근은 아들 둘과 딸 한 명이 있었다.
큰 아들 안분도는 어린 시절 길가다가 행인이 준 과자들 먹고 죽었다.
그가 먹은 과자에는 독이 들어있었다.
둘째 아들 안준생은 누나 안현생, 엄마 김아려와 함께 상해 일대를 떠돌며 힘겨운 삶을 살게 된다.
일본의 탄압과 감시 때문에 안중근 일가의 삶은 굉장히 피폐할 수 밖에 없었고, 항상 헐벗고 굶주리며 지내야했다.
안준생은 장성해서도 직장을 구할 수 없어 평생 거지처럼 힘겨운 삶을 살았다.
국민 누구도 독립군 장군 안중근의 유가족을 돌봐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다 안준생은 일본 경찰에 의해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와 이토 분키치(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앞에 끌려오고 거기서 변절과 사죄를 요구받는다.
생명의 위협과 협박에 굴복한 안준생은 박문사(일본이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해 남산 장충단에 지은 절)에서 공개적으로 이토 분키치에게 ‘아버지의 잘못’을 머리숙여 사죄한다.
그리고 일본 곳곳에서도 이 공개사죄를 계속한다.
나중에는 미나미 지로 조선총독의 양아들이 되어 용돈을 받으며 살다 나중에 그 돈으로 약국을 차렸다.
▲미나미 지로 조선 총독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안준생을 변절자- 민족반역자로 규정하고, 심지어는 그를 죽이려는 시도까지 할 정도로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은 그렇게 망가져 버린다.
“민족 반역자로 변절한 안준생을 체포하여 교수형에 처하라고 중국 관헌에게 부탁했으나 그들이 실행하지 않았다.”
-백범일지-
조국 영웅의 아들이자 민족의 반역자로 살았던 안준생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만일 우리가 안준생의 입장이었더라면, 삶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역사 소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에 적힌 안준생의 항변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호부견자(虎父犬子)라더군요. 호랑이 아비에 개 같은 자식.
하하……
그럼 나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그 자리에서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잡혀 죽었야했나요?
영웅 아버지 처럼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사실 아버지는 재판도 받고 가시는날까지 시끌벅적 하기라도했지만, 나는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그야말로 개죽음 아니었을까요?
내 형은 7살 나이에 자기가 왜 당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독을 먹고 죽어버렸죠.
나도 그렇게 죽으란 말입니까?
아무도 기억 못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죽음을?
왜?
내가 안중근의 아들이어서?
왜 나는 안준생으로 살 수 없었죠?
왜 나는 내 삶을 선택할 기회도 없이 이런 운명에 던져져야 했죠?
아버지는… 아버지는 자신이 선택한 거잖아요.
그래서 죽은 거잖아요.
그런데 왜 나는 내 선택이 아닌 아버지의 선택 때문에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까?
왜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통째로 망가져야 합니까?
나라를 팔고 아비를 판 더러운 자식…
친일파…
번졀자…
뭐라 욕해도 상관없어요.
내가 괴로워할 때 아무도 내게 손 내밀지 않았잖아요.
나를 욕할 자격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요.
그렇게 버려둘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무슨 권리로…
내 아들은 의사입니다.
미국에서 제법 성공했고, 주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잘 살고 있죠.
내가 사람들의 경멸을 받으며 모은 돈으로 가족을 부양한 덕분에, 내 자식들은 사람답게 살 수 있던 겁니다.
우습지 않나요?
영웅의 아들은 개 같은 삶을 살고, 그 변절자의 자식은 다시 성공하고.
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겐 재앙이었죠.
나는 나라의 재앙이지만 내 가족에겐 영웅입니다.
-소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中-
얼마전 안중근과 동양평화론 봤는데 이 글 보니 기분 묘하네
굳
광어 우럭따. ㅜㅜ
그냥 소설적 테크닉일 뿐. 안준생이 실제 저랬는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되도 않는 궁예질. 그럼 현재 대한민국은 모든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부여해야 하지. 대부분의 친일은 그들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으니까. 친일 세탁 미디어 영화 덕혜옹주를 보는 듯하군
백범일지에서 가잔 인상적이었던 백범의 스승은 "안진사"였죠. 젊은날의 백범이 거의 패망한 동학에 참여하였지만 사실상 화적떼처럼 되었다가 다쳤는데, 안진사가 그를 주해서 자기 집에서 돌봐주고 학문을 가르쳐주면서 스승 노릇을 합니다 - 안진사가 바로 그 안중근의 부친이었죠. 딴은 백범에게 있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스승이었던 사람의 손자를 죽이려고 했던 것...
안준생을 다룬 기사 링크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3&oid=001&aid=0002929988
백범일지를 읽기는 했나 어디에 안태훈이 김구 스승을 자처했고 김구 스스로 안태훈을 스승으로 모셨다는 말이 나오나? 안진사의 소개로 고능선과 김구가 만나게 됐지만, 돌베개 백범일지 p.62 선생님! 선생님은 저를 분명히 살펴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불과 스무 살에 일생의 진로에 대하여 스스로를 속이고 그르쳐 허다한 중략..선생님 보시는 대로 교훈하여 주십시오 마음을 다해 받들어 행가겠습니다" 라며 고능선과 사제지간을 맺는데
ㄴ30년 전에 읽어 기억이 흐릿하긴 하지만, 안진사가 가장 중요한 스승이라는 것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고선생과 안진사가 불화하면서 백범이 중간에서 곤혹스러워하던 것을 읽은 것도 기억에 있죠. 그 두 사람 모두 백범의.스승으로 기억하고 있는 게 무슨 죄라고...
그러니까 어디에 근거해서 나온겁니까?? 김구가 안태훈의 인성에 감화를 받았다는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안태훈과 김구가 사숙관계를 맺었다는건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소립니다
꼰대 ㅅㄲ 존나 구질구질하게 노네 김용옥의 논문 "비난" 과 학자와 학문, 논문의 중요성을 운운하며 개지랄떨던 양반이 고작 지 기억에 의존해서 나불거리는게 뭐가 죄가 되냐고? 하여간 남한텐 존나 엄격하고 지 한테는 존나 관대하네 수준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