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독서 마이너 갤러리 독후감 대회 응모작(예선 탈락)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설의 인물과 실제 소설 속의 인물 사이의 괴리가 돈키호테만큼 동떨어진 소설이 있을까? 나는 『돈키호테』를 다룬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지만,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열정과 천재성이 1000페이지를 훌쩍 넘는 광범위한 분량에 온전히 담긴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첫 번째 경험이었다. 어린 시절 첫 번째로 접한 동화책은 돈키호테를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말을 몰고 돌격한 우스꽝스러운 기사로 묘사했다. 그 이후 청소년기에 두 번째로 소비한, 『돈키호테』의 직함을 우직하게 달고 있던 한 축약본은 돈키호테가 양떼 사이에 뛰어들어 양떼를 도륙하고 멀쩡히 지나가던 이발사에게 시비를 걸어 물건을 강탈하는 등 행위적으로 표출된 광증만을 묘사하는 것에 급급해 돈키호테를 미쳐도 단단히 미친 광인으로 묘사하는 것에 그쳤다. 안타까운 것은, 내가 학창 시절 소비한 이 두 책들의 돈키호테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역본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바라보는 시선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책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돈키호테를 그저 평면적인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원전에 나타나는 돈키호테의 복합적인 면모를 이해하려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원전의 매력을 반만큼도 나타내지 못하는 이 평면적 이미지는 작가인 세르반테스와 주인공 돈키호테에게 매우 안타까운 일임은 물론, 이 책을 앞서 이야기한 돈키호테의 이미지에 막대한 분량이라는 진입 장벽이 더해져 높디높은 장벽을 쉽사리 넘으려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읽는 것을 포기한 독서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완역본을 읽은 다른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리란 모를 일이지만, 나의 경우 『돈키호테』의 도입부에서는 그를 기존에 오랜 기간 널리 구축된 이미지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우스꽝스럽고 현실을 자기 입맛에 맞게 무리하게 재단하다가 된통 당하는 트러블메이커로 인식했다. 그러나 그와 종자 산초의 일대기를 차츰 따라가면서 이 두 순진하고 바보 같은 이들의 발상에 점점 공감하게 되었고, 마지막 돈키호테의 죽음이라는 대목에 도달해서는 그가 광증에 시달렸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상한 사람들이긴 해도 분명 돈키호테와 산초가 생각하던 황금시대로 대표되는 옳은 것들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현실에 그들과 같이 슬퍼하게 될 정도로 극적인 인식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아마 이 책을 경험한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인식 변화를 경험했으리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들의 여행은 현학적이며 교훈적이고 재미있다. 나는 얼마 전부터 독후감에 '필력이 좋다'라는 표현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지금까지 줄곧 써온 독후감들의 대상을 상대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에서만 선택했기 때문에 필력이 좋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었던 작품은 하나도 없었던 탓이다. 매 작품마다 반복되는 사항을 늘 같은 표현을 써 가면서 남용하는 것도 그 표현의 무게감을 해치는 일일 것이며, 더 나아가 그 표현만으로는 '정말' 필력이 좋은 작품을 돋보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 역시 무리한 추측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돈키호테』는 필력에 온갖 미사여구를 선사해도 부족하지 않은 작품을 위해 마련한 내 조촐한 복안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작품이다. 읽는 도중에는 즐거움을 주고, 읽은 후에는 진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자, 기사 문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17세기 스페인의 배경과 풍조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지식이 모자란 사람과 지식이 과하게 넘친 나머지 미쳐버린 사람이 같이 빚어낸 만연한 순수함과 풍자가 완벽히 스며든 소설 『돈키호테』. 이런 대단한 소설을 표현할 때, 그만큼 대단한 찬사를 거리낌 없이 선사할 만 하지 않은가?
이제 작품의 내용적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가 앞서 토로한 과한 찬사가 과하지 않게, 혹은 미천한 글재주로 인해 빛바래게나마 덜 과해 보이도록. 『돈키호테』는 1편과 2편의 출간연도의 차이가 10년이나 되는 작품이기 때문인지, 1편과 2편은 내용적 특징에 대해서는 가히 다른 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작품에서 발생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건의 발단을 책임지고 있는 돈키호테가 앓고 있는 광기의 경중이 호전되어 1편에서는 주막을 성으로, 주인장을 성주로 인지했지만 2편부터는 그대로 주막을 주막이라고 인지하였다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추가적으로 돈키호테의 심한 광증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뜻을 곡해하고 자신의 생각하는 기사도의 존립을 위해 우스꽝스럽고 답답한 행동을 되풀이하는 1편과 돈키호테의 상태가 호전된 덕분에 미치광이로서의 모습보다는 기사도 이외의 분야에 의견을 피력할 때 단편적으로 보이는 지적인 모습이 더 크고 많이 표출되는 2편, 마지막으로 1편에서 취한 모험 속 이야기라는 액자식 구성이 너무 길고 뜬금없다는 비판을 수용해 2편에서는 돈키호테의 모험 속 이야기의 비중을 줄이고, 또한 돈키호테와 연관이 어느 정도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 넣었다는 점 등 1편과 2편의 요소가 극명히 대조되는 요소가 많아 모험이라는 이야기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풀어나갔다는 인상을 준다.
이 차이점들은 돈키호테와 독자 사이의 거리감을 점차 좁혀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최종적으로 돈키호테는 공감은커녕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할 광인에서 순수한 지식인이 광증에 시달려 안타까운 말로를 맞이한, 공감과 연민을 사는 동반자로 인식될 수 있었다. 1편에서 본인의 의도는 선할지언정 다른 사람들에게 악행을 꾸준히 자행한 자가 돈키호테였다면, 2편에서의 악행을 선도한 사람은 작중 유행하는 『돈키호테』 1권을 읽고 돈키호테와 산초를 자신들의 재미를 위해 지속적으로 속이고 조롱한 공작 부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악행의 정도는 1편 당시의 돈키호테가 2편의 공작 부부보다 훨씬 심하지만, 이야기의 갈등을 빚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떠넘긴 덕에 사람들이 돈키호테에게 순탄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악역을 떠맡은 공작 부부는 작품에서 미치지 않은 사람들, 즉 일반적인 사람들을 뜻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이 간접적 내지 직접적으로 세르반테스가 마련한 도마 위에 올라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볼 때 『돈키호테』가 필력의 아름다움에 더해 사회풍자적인 요소도 충분히 갖췄음을 알 수 있다. 직접적으로 묘사한 “공작 내외는 미친 두 사람보다 손가락 2개만큼 나았다.”라는 언급은 물론, 돈키호테가 부임지로 떠나는 산초에게 총독으로써 응당 지녀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완벽하게 설파하고, 공작 부부가 얕잡아본 산초가 총독으로서는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유능했으며, 후에 지위를 내려놓고 다시 종자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권력욕에도 잠식당하지 않는 등 완벽한 위정자의 면모를 보이는 작중 돈키호테와 산초의 행적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세르반테스는 미친 돈키호테와 모자란 산초가 신분이 높은 그들에 비해 모자랄 것이 없으며, 오히려 이들에 비해 우월한 부분도 분명 존재함을 역설했다.
『돈키호테』가 문학이라는 분야에서 창조하고 소비하는 것을 즐기는 마니아들에게 선사한 재미와 문학적 성취는 분명 문학계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한 소설임을 인정하는 이들이 많지만, 동시에 단점이 전혀 없는 소설은 아니라는 의견도 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단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표현보다는 보통 『돈키호테』에 견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는 문학 작품들과 각 소설이 지닌 단점을 비교할 때 가장 단점이 크게 보이는 소설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적절한 평가일 것이다. 이 책에는 추후 설명을 추가하는 것으로 수정되었지만 1편의 산초가 자유를 얻은 죄수에게 분명 당나귀를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장에서 버젓이 당나귀를 타고 다닌 것처럼 커다란 실수와, 인용된 유명인의 철자를 틀리고 종자와 기사를 바꿔서 쓰는 등 사소한 오탈자도 드문드문 존재한다. 추가로, 두 번의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1편의 막바지에 돈키호테가 사라고사의 창 시합에 나선다는 후일담을 소개했지만, 세 번째이자 마지막 모험을 떠난 2편에서는 사라고사에 도달하지도 못했다는 점 역시 작품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눈에 더욱 크게 띄는 결점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단점이 존재하는 창작물이 단점이 쉽게 보이지 않는 창작물보다 늘 뒤떨어진다는 명제는 확고부동한 권력을 쥐고 있지는 않다. 절대적인 가치가 아닌 사람마다 다른 가치를 가지기 일쑤인 문학이라는 분야는, 단점과 장점이 적은 작품보다 단점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독자가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더 크게 충족된 작품이 읽는 사람에게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집필 과정에서 분명한 실수가 있었지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오늘날까지 문학계에 끼친 영향력만을 고려하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학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돈키호테』는 읽는 사람에 따라 사뭇 다른 인상을 선사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작가가 공언한대로 돈키호테가 야기한 좋지 못한 결과들을 근거삼아 『돈키호테』를 당대 만연해 있던 기사도 소설을 풍자하기 위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돈키호테의 의도는 더할 나위 없이 선한 발상에서 비롯되었지만 세상에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보는 관점에서 비롯된, 사회풍자적인 요소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진다. 돈키호테와 산초와의 관계에서도 과거 존재했던 ‘황금시대’를 재건하기 위해 오늘날 지켜지지 않는 엄격한 기사도를 홀로 지키는 박식하고 무모한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섬의 총독이라는 벼슬을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며 고군분투한 무식하고 현명한 현실주의자 산초의 관계를 두고 산초가 벼슬을 포기하고 다시 돈키호테의 종자로 돌아가는 점을 들어 돈키호테에게 감화되었다고 보는 주장도 존재하나, 사상적으로 감화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다고 주장하는 반론도 팽배하다. 또한 이 둘의 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방면으로 재조명되었는데, 출판 직후에는 둘의 관계에 대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훗날 발흥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물살을 타고, 철학적 관념이 오늘날만큼 구체화되기 전에 탄생한 이상주의의 표본에 딱 들어맞는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의 표본에 부합하는 산초의 관계와 개성이 『돈키호테』가 출판 당시보다 현재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 요인이 되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돈키호테』는 특이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더욱 크게 인정받고 있는 추세를 보인다. 집필된 당대의 생활상과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작품들이 시대가 나아갈수록 현재의 생활상과 가치관에 점점 더 어긋나 평가가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다른 대다수의 문학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인기가 하락하는 일반적인 현상 이외에도 현재 일어나는 사회적, 환경적 현상과 과거 작품들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면 작품이 재조명되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어 올해 2020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비슷한 현상을 수록한 카뮈의 『페스트』,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등이 사회적 현상과 작품의 일부가 동일시되어 상당한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단순히 발생할 사회적 현상과 동일시되는 것을 넘어 미래의 철학적 성찰을 예견한 듯한 『돈키호테』는, 어쩌면 21세기 이후에 새로이 대두될, 우리가 모르는 철학적 가치들 또한 예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17세기 사람들이 이성주의와 현실주의를 오늘날만큼 잘 알지 못하던 것처럼.
난 이거 진짜 감명 깊게 읽었다. 돈키호테 꼭 읽어볼게 ㄳㄳ
과찬임 ㄳㄳ
잘 읽었음. 다만 나는 좀 독창적인 관점을 지닌 글에 가점을 줬는데 이 글은 그게 좀 덜하다고 느껴서 투표 못 했음... 그래도 스탠다드하고 좋은 글임 - dc App
문학사에 끼친 영향 등을 생각해볼까 했는데 잘 모르는 이야기를 확언하는거보다 빼는게 낫다고 생각함 ㅎㅎ 능력 부족이지 뭐
고생했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