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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사라는 분야를 좋아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나라의 역사를 상세히 알아야 한다는 사명감도 조금은 있지만 그보다는 과거에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 즉 현실성이 보증된 이야기들이라는 것 때문에 좋아한다. 그렇기에, 개화기 시절 사람들의 매우 사소한 일상이나 삼국 시대의 무덤 양식이라는 매우 지엽적인 주제를 다룬 책들도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다른 장르를 집필하는 작가들은 개연성과 현실성을 작품에 부여하기 위해 반드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하지만, 과거 사료들를 충실하게 따르는 한국사 내지 세계사 서적들은 개연성과 현실성이 자연스럽게 작품 뒤를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라는 장르가 다른 장르보다 편한 집필 과정을 수행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과거의 사건을 투영하는 역사서들은 해석의 과정에서 진실이 왜곡되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작품이 고증을 얼마나 따르느냐에 대한 의견과 비평도 훨씬 자주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유명한 한국사 선생 내지 교수들은 자신들의 전문성에 대한 의혹과 비판을 자주 받으며, 이들이 만약 다른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이렇게 크고 날선 비판을 받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사안들도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이처럼 역사라는 과목은 과목의 중요성만큼이나 큰 책임을 요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마디로 규정하면 사료의 해석과 작가의 의견은 필히 명확히 구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는 독자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사료에 기반한 내용으로 이해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책이 역사서로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근거가 부족해 작가의 생각에 그칠 뿐인 주장을 교묘하게 사료에 근거한 참신한 해석으로 둔갑시키는 책들은 역사서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으로 한명기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평가할 때, 참으로 역사서다운 책이라는 한줄평을 남기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과거 사료와 자신의 생각을 엄격히 구분한 역사서는 몇 권 읽은 적이 있지만, 사료를 위해 자신의 생각을 될 수 있는 한 굴종시킨 것처럼 보이는 역사서는 이 책이 처음이었다. 병자호란을 다룬 일반적인 역사서들은 국외 정치에 강점을 가지고 있으나 성리학 국가에서 응당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수를 연거푸 두어 훗날 반정의 빌미를 준 광해군이나 광해군만큼의 무리수는 두지 않았으나 워낙 무능해 두번의 호란에 큰 지분을 가진 인조, 이 둘 중 한 사람을 호의적으로 묘사하고, 다른 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묘사해 대비를 이루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두 사람 모두 과오가 확실하면서 반정에 의해 명암이 엇갈린 왕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러한 비교는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숙명적인 일일지도 모르겠다.

 반정부터 병자호란 이후까지를, 혹은 그 이상의 시대를 다룬 책들은 마치 필연적인 숙명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이 비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작가인 한명기는 이 책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묘사하지 않았다. 최대한 담담하게 사료에 근거한 내용을 시대 순으로 전개할 뿐이다. 광해군의 인간성과 폭정을 두둔하지도 않았으며, 인조의 무능함과 근시안적인 태도를 두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룬 배경이 광해군의 치세가 아닌 인조의 즉위부터 병자호란의 결말까지를 다루었기 때문에, 나름 국제 외교에는 강점을 보인 전임 광해군에 비해 부족했던 정통성과 수완이 더더욱 크게 조명되었으며 그로 인해 인조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있는 책이다. 그렇지만, 인조의 실책을 꼬집는 부분 - 예를 들어 작중 "광해군과 무조건적으로 반대되는 스탠스를 취하는 것보다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였어야 한다"고 평하는 부분 이외에도 명과 청의 우열 관계가 뒤집히는 것은 불과 몇십 년 전에 발생한 왜란으로 인해 나라가 황폐화된 약소국 조선으로서는 저 흐름을 따라 순응하는 것도, 뒤집어내는 것도 각각 천부당만부당한 일과 역부족인 일이었음을 직접 긍정했기 때문에 인조를 최대한 중립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묘사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후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한명기가 정말로 부정적으로 바라본 인물들은 김류와 이귀로 대표되는 인조 반정의 공신들이다.

 작가가 이 책에서 중립적인 스탠스를 취하려 했다는 의견은 인조와 광해군을 평가하는 것에 최대한 사심을 배제하려고 했던 것 이외에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명에게 입은 재조지은을 값기 위해 끝까지 청에게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 김상헌으로 대표되는 척화파들과 시대의 흐름을 읽고 청에게 조아려 나라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한, 최명길로 대표되는 주화파들의 옳고 그름을 감히 평가하려고 하지 않았다. 비록 결론은 정반대였을지언정, 두 파벌 모두 각각 조선의 근간과 조선의 미래 중 어느 것을 더 크게 생각했는지에 따라 갈렸을 뿐인 충신들이기 때문이다. 한명기는 본인 주도 하에 확실한 낙인만 내리찍지 않았을 뿐 자신들의 모가지만를 걱정해 순간순간 주화파에서 척화파를 넘나들은 반정 당시 공신들을 간신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조선 국적을 가진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 책 안에서 꾸준히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시대의 악인들이다.

 사실 인조의 권신들에 대한 지극히 부정적인 평가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신들의 대표격인 김류의 생애로 예를 들면, 반정 때 우유부단한 태도을 보였으나 적극적으로 동조한 이괄에 비해 높은 공신에 책봉되었다는 이유로 이괄과의 불화가 생겼으며, 이는 북방의 병력을 싸그리 갈아버리게 된 이괄의 난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리고 인조의 후광을 이용해 헛짓거리와 범법 행위만을 되풀이하던 아들 김경징의 횡포를 묵인하고 지지한 결과 김경징은 인조의 전쟁 발생 시 1순위 도피지로 확정된 전략적 요충지인 강화도를 청군에게 어이없이 헌납하는 등의 쓰레기짓으로 보답해 결국 김경징은 목이 달아나는 결과를 맞이했다. 김류 본인도 신념 때문이 아닌 자신의 영달을 지키기 위해 척화파와 주화파를 넘나드는 박쥐짓을 되풀이했으며 본인의 잘못은 축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응당 자신의 책임이었어야 할 일을 전가하는 등의 추하고 못난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줬으니 둘의 인격적인 모습에서는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꼭 들어 맞는듯 하다. 그리고 단언컨대 나머지 공신들도 김류에 비해 크게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인조 정권 당시 평균 이상의 능력은 있던 김류보다 더 많은 재산을 추하디 추하게 착복하는 등 국력을 갉아먹는 행동을 되풀이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이 책에서 대표적으로 비판받은 이들의 실제 행적을 미루어 볼 때 작가의 반정 공신들에 대한 상대적인 박대가 상식적인 선에서의 비평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소 날선 표현을 사용하자면 인조와 반정 공신들이 이 책에서 받는 비판과 아쉬움은 모두 본인들이 자초했으며 오히려 한명기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오롯이 책 안에 녹여내는 작가였다면 더더욱 박한 인상과 평가를 받았을 것이 자명해 보이기까지 하다.

 내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과 평가를 자제한 이 책은 아무래도 호불호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여러 사료들을 충분히 존중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진정으로 좋아하는 플롯은 사료에서 근거한 내용과 이를 기반으로 전개하는 작가의 주장이 서로 비슷한 수준의 내용과 중요도로 다루어지되, 서로에 대한 구별이 확실한 스타일의 역사서다. 엄연한 사실만을 줄줄히 나열하는 스타일의 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병자호란이라는 사건에 대한 흥미가 다소 떨어지는 사람들은 지루하게 읽힐 여지가 충분한 책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강렬하게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큰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고, 이는 역사서의 경우에도 저 경향을 미쳐 비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를 제외하고 이 책의 진정한 단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요소는 청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도 희미해 보인다는 것인데, 작가가 자신이 확언할 수 없는 요소는 절대로 확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단점이 더욱 뚜렷히 보이는 감이 있다. 전쟁의 당사자인 조선과 청은 필연적으로 주변국들보다 더 많고 구체적인 묘사와 조사가 있어야 했지만, 전쟁 이전까지 조선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명에 대한 묘사보다 청에 대한 묘사가 적음은 물론, 두 차례의 호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큰 영향력이 없는 일본에 대한 단언이 청에 대한 단언보다 더 구체적이라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을 갉아먹는 점이다. 그리고 이 책은 호란 전후의 주변 강대국들에 대한 대응이 좋지 못했음을 근거로 오늘날 인적 하드웨어가 압도적인 중국과 경제력 등의 소프트웨어가 우리 나라보다 뛰어난 일본 사이에 존재한 나라라는 점을 들어 호란 당시와 오늘날을 결부시켜 과거의 일에서 교훈을 얻어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호란 당시와 현재 상황은 매우 판이해 일반적인 대입이 크게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인조의 크고 많은 삽질에도 불구하고, 그가 국제 외교에 강점을 가진 임금이었다고 해도 병자호란을 피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인조는 애초 광해군이 큰 은혜를 베푼 명에 소홀했다는 것을 반정의 이유 중 하나로 잡고 즉위했기 때문에, 정통성과 외교적 유연성에서 태생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가 성리학을 숭상하는 나라에 즉위한 시점에서부터 호란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광해군 치세 당시에는, 명이 청보다 국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조선은 물론 명과 청도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청의 견제도 인조 때의 견제보다 훨씬 약할 수밖에 없었다. 광해군의 외교가 인조의 외교보다 훨씬 원숙하고 침착했지만, 그가 호란 당시에도 계속 왕위를 지키고 있었다도 하더라도 굴욕의 정도는 다를지언정 호란 자체를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이것이 오늘날의 상황과 호란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동치시키지 못하는 이유다. 오늘날 한국은 더이상 성리학만을 숭상하는 나라가 아닐뿐더러, 그 당시 조선과 다르게 어느 한 국가에 국운을 던져가면서까지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지만 그 경각심이 과거에만 근거해서는 안될 일이다.

 나는 인조는 내치와 외치 모두 낙제점인 임금이 맞지만, 이를 이용해 광해군을 고평가하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서로에 기댄 채 부당한 고평가와 저평가를 번갈아가면서 받고 있지만, 개별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저 두 사람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이 책에서 취한 스탠스처럼 말이다. 이토록 있어야 할 것은 충분히 있지만 아쉬움이 전혀 없지는 않은 책. 웬만한 책에 꼭 들어맞는 듯한 이 편리하기 짝이 없는 한줄평만큼 한명기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에 어울리는 평은 드물다고 감히 자평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