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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서 벗어나 어리석은 중생들처럼 번뇌에 휘둘리지 않고, 초연하고 깔끔한 삶을 살고싶다.”

- 이게 아마 평범한 사람들이 공부에 관심을 갖는 이유일 것이고,

“밤잠을 못 이루게 하는 인생의 근본문제에 대한 의혹을 풀고싶다”

- 이건 아마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깨달음의 초대장’을 받으신 분들이 공부를 시작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건전한,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발심들이 어떻게 공부하느냐에 따라 매우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다 는 점을 보여주는 문제작이라 생각한다. 소개되어있는 많은 인터뷰를 보면, 구도자들이 대게 비슷한 유형의 괘도를 도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내용을 보면 이렇다.

 

- 성장과정에서 불행한 가정사를 겪었고, 내면의 상처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깊다. 이게 수행생활을 격발시키게 되고, 나름의 공부를 통해 마음의 상처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보너스로 견성체험을 통해 태산 같은 자신감을 확보한다. 하지만 그 후 공부의 한계에 봉착하고, 현실로 복귀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예전과 별로 달라짐이 없음에 크게 당황하고, 좌절했다가, 애초에 공부 방향에 뭔가 잘못된 게 있었음을 깨닫는다. -


한 불교 지도자는 깨달음이 ‘인격적 변성’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비인격적 변성’ 이었음을 알고 놀랐다는 것이다. 변성은 가슴의 열림이지 인격의 변화가 아니다. -262p


깨달은 채로 고스란히 은퇴하기 같은 것은 없다....

수행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깨달음과 열림의 주기 뒤에는 두려움과 위축의 시기가 뒤따른다.

놀라운 점은, 이 진실이 얼마나 환영받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 노력을 통해서 인간적 고통의 상처가 없는 곳으로, 그것을 다시는 겪지 않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어떤 희망에 매달린다.- 170p


이 책은 이 부분에 대한 여러 구도자분들의 솔직한 고백으로 꽉 차있다.

때문에, 한참 물오른 상태에 있는, 용기백배의 구도자에게는 상당히 불쾌한 책으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불호가 분명히 갈린다는 이야기다.

학창시절에 하루가 멀다하고 주먹질만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근데 가만히 보면 처음부터 싸움질 잘하는 녀석들은 거의 없었다. 여러 번 얻어맞고 나서야 주먹을 피할 줄 아는, 두드려 맞더라도 좀 더 품위 있게 얻어맞는 경지에 도달했었다.

이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엄밀히 말해, 주먹, 그러니까 감정이 느끼는 고통을 너무 두려워하는 나머지 티벳까지 갈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처히 이 세상이 용서가 안되는 분들이라면 티벳행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치열한 구도의 과정과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배푸는 그들의 공덕은 마땅히 존중한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어린 시절에 부딪히는 정서적 상처, 비판, 두려움, 수치심등은 우리를 끔찍하게 위축시켜놓을 수 있다. 때로 우리는 영적 고독만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즉 너무 많은 것을 느끼지 말라든가, 너무 흥분하거나 화내지 말라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깨달음으로 가는 배가 뒤집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영적 수행은 수동적이고 자기 말살적인 생각들로 엉망이 되고 열정과 생기를 잃어버린다. - 263


우리는 감정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만족시키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여 우리가 자신의 감정과 뒤엉켜 그것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런 감정들이 의식을 지나갈 때마다 그것을 속속들이 경험하면서 그 각각의 감정에 대해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이것이 진정 나인가?” 자신의 느낌을 두려움 없는 너른 가슴으로 껴안을 수 있다면 외롭고 상처받고 악의에 차고 혼란된 느낌들은 변성된 모습으로 새로이 태어날 것이다. - 264



이 책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기까지 인생을 바친 구도자들의 댓가는 너무나 비싸지 않았나 싶다. 책은 견성 이후에 대한 내용이지만, 역설적으로 견성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인 것 같다. 그만큼 잘못된 길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들은 10장 ‘더러운 빨랫감’에 잘 나와있다.)



이 책의 또 하나의 백미는 14장 ‘가족카르마’ 였다.


점점 늙어가는 부모, 불행한 십대, 형제간의 갈등, 돈 문제, 가족의 병,... - 이 모든 것이 수행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할 가족생활의 일분이다. 공동체적 삶이 이제는 흔치 않아서 노인들은 양로원에 버려지는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훨씬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이 모든 문제의 밑바닥에는 유대감을 희구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가 깔려 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찾지 않느니보다는 경찰이라고 찾아오는 것이 낫다.” 좋든 나쁘든 가족은 사랑과 책임을 동시에 제공하는 이 유대 관계의 원초적 근원이다...


가족생활의 희생은 혹독한 수도원 생활의 희생이 요구하는 것과 버금가는 포기와 인내와 끈기와 너그러움을 훈련시킨다. - 298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쩌면 공자가 말한 仁(인) 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유대감을 말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모와 자식간의 유대가 효이고, 형제간의 유대가 우애가 아니겠는가?

(공자는 논어에서 仁 하라고만 했지,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작 말하지 않았다. 측은지심이란 개념은 후대 맹자의 주장이다.)

또 중용에서도 親親爲大(친친위대) 라는 공자의 말씀이 있는데, 내용인 즉은, 가까운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게 가장 크고 어렵다는 뜻이다...

암튼 이 인간의 유대감이 갖는 의미는 엄청난것 같다.



... 이 책의 마무리는 이렇게 끝난다..



영적 여행은 수많은 모험을 거쳐 우리를 지금 있는 이곳으로 다시 데리고 왔다.

‘우리는 집에 와 있다. 집에 있으면서 우리는 바닥을 쓸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맞는다. 삶의 영원한 진실을 깨달았으면,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밖에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경이로운 것은 삶 그 자체이며, 그것은 또한 저마다 고유한 순간순간 들이다.

우리의 불성, 우리안의 거룩한 그것은 결코 퇴화되거나 상실되지 않는다.

그것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

이제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나는 당신의 진정한 본성인 ‘전체성’을 향해 경의를 바친다.

당신의 수행 여정이 본향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빈다.




공감한다.

읽고나니 중용을 처음 읽었을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왜 내가 그때 그토록 비통한 심정이 들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더불어 이 책이 이미 3년 전에 나와서 많은 분들이 읽고 있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너무 큰 희생을 요구하는 공부들이  지양되었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

카톡 연동 되니 편하게 폰으로 가능 하네요.

다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