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쿠치 요시오,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 다른세상, 2010.
신성로마제국. 중학생 때 이 이름을 처음 접하고 은하영웅전설에나 나올 법한 멋들어진 이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름을 제외하고는 나의 관심을 끄는 일은 없었던 지라 나이 스물 넷 먹을 때까지 신성로마제국과 관련해 읽은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사전지식은 뒤죽박죽이었다. 대강 베르됭 조약과 프랑크 제국의 삼분할, 오토 1세의 대관식, 선제후들의 막강한 권력, 합스부르크 가문, 루터의 종교 개혁, 베스트팔렌 조약, 나폴레옹에 의한 멸망 등등의 위대한 한국의 주입식 교육이 가져다 준 지식들이 연속되지 않고 파편들마냥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수박겉핥기나마 나름의 정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250쪽이라는 많지 않은 분량에 천년의 역사를 압축한 만큼 내용의 밀도가 상당하다. 그래서 이 방대한 내용을 죄다 정리할 엄두는 차마 하지 못하겠고 다만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간지'나는 이름은 언제부터 쓰였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오토 1세가 961년 교황 요하네스 12세의 부름을 받고 이탈리아 왕 베렝가리오 2세를 물리치고 다음 해인 962년 로마에서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았을 때 그는 독일과 동시에 이탈리아의 왕으로서 군림하였지만 제국의 명칭은 그저 '제국'에 지나지 않았다. 제국이라는 단순한 이름에 무언가 장식이 덧붙여진 때는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인 1034년 콘라트 2세 때의 일이다. 콘라트 2세는 독일과 이탈리아는 물론 부르고뉴 왕가의 혈통이 단절된 틈을 타서 스스로 부르고뉴 왕을 자처하였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제국을 '로마제국'이라 칭했다. 그러나 여기에 '신성'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시기는 한참 후인 1157년이다.
당시 황제는 '붉은 수염'이라는 뜻의 바르바로사라 불린 프리드리히 1세였다. 그는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라는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해 '양검론'을 주창했다. 여기서 두 검은 종교의 검과 정치의 검을 가리키는데 두 검 모두 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니 황제와 교황은 동등히 신성한 존재라 주장했던 것이다. 즉 황제와 제국은 교황과 교회와 마찬가지로 신께서 직접 성별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한 입장을 확실히 세상에 드러내고자 그는 자신의 제국을 '신성제국'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아직 풀네임은 아니다. 그새 '로마'는 빠져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 놈의 풀네임은 대체 언제 등장하는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프리드리히 2세의 얘기부터 시작하자.
1197년 프리드리히 2세는 세 살의 나이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는 여러 번 파문을 당하면서까지 교황과 대립하였던 황제였다. 그가 "모세, 그리스도, 무함마드는 세계 3대 사기꾼이다!" 라고 말했다는 얘기가 돌았을 정도로(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라 16세기 어느 사서의 날조이다) '신성제국'의 지배자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파문을 당한 채 교황의 닦달에 마지못해 참여한 십자군 원정에서 성지 예루살렘의 왕위를 차지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당시 예루살렘은 아이유브 왕조의 술탕 알 카밀의 지배 하에 있었는데 그는 예루살렘을 그저 사이가 좋지 않은 동생 알 무자암이 소유한 영지 중 하나로 여길 뿐이었다. 프리드리히 2세와 알 카밀은 전투는 커녕 고대 그리스의 윤리학부터 우주의 기원까지 당시의 온갖 학식을 피력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밀해졌고 술탄은 동생의 모반을 누르기 위해서는 이 땅을 차라리 뛰어난 지식을 지닌 프리드리히 2세가 다스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불경한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성지의 왕이 되었다. 성지의 왕은 사제들이 파문을 당했다는 이유로 왕관을 씌워 주지 않자 자기 손으로 왕관을 써버리는, 사제 하나가 복음서를 들고 모스크에 들어가려는 모습을 보고 알라에게 불경을 저지르지 말라며 격렬하게 분노하는, 그런 왕이었다.
이렇듯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의 제국을 그리스도교 일색으로 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다른 종교와의 공존, 다원적 가치의 공존을 원했고 종교적 통일보다 정치적 통일을 더 급선무라 여겼다. 그는 자신의 제국 운영의 가치를 로마 가톨릭이 아닌 고대 로마제국에서 찾았고 그렇기에 그가 35년에 이르는 독일 왕 재위기간 중 독일에서 체류한 기간은 고작 8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제국의 중심지는 독일이 아닌 이탈리아였고 독일은 과거의 고대 로마제국이 그러했듯 속주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장남 하인리히를 독일왕 즉위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독일의 대주교와 주교, 그리고 세습 영주들에게 자신들의 영지 내에서 대폭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는 독일의 무수한 연방 국가 형성의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독일왕이자 프리드리히 2세의 장남 하인리히는 이 같은 아버지의 결정에 반발하였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독일왕 하인리히를 꼬드겨 부자간의 전쟁을 부추겼다. 전쟁은 아버지의 승리로 끝났고 아들은 자살하였다. 독일왕의 자리는 차남인 콘라트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교황과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황제는 황제 나름대로 교황의 공의회에 출석하는 자들은 황제의 적으로 간주하겠다며 위협했다. 교황은 이에 황제의 폐위를 결정하면서 황제를 향한 십자군을 제의, 참여하지 않는 자는 파문이라고 위협했다. 중세의 지배자 중 교황의 파문을 무시할 정도로 독실하지 않은 자들은 없었다. 그들에게 사후 지옥의 영원한 형벌은 생전의 어떠한 고통보다 두려운 것이었다. 이탈리아와 독일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성지 예루살렘의 왕이요, 신성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는 무슬림으로 구성된 황제 직속의 부대를 이끌고 전장을 전전했다. 1250년 12월 13일, 제국의 황제이자 시대의 이단아였던 프리드리히 2세는 계속된 반란을 진압하는데 성고하였으나 결국 고열에 시달리며 죽었다.
프리드리히 2세의 죽음 이후 1273년 합스부르크 집안의 루돌프 1세가 황제로 즉위하기까지의 시기를 '대공위 시대'라 부른다. 즉 이 23년의 기간 동안 제국 황제의 자리는 공석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혼란의 시대때 드디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이름이 탄생하였다. 그것은 홀란트 백작 빌렘에 의한 것이었다. 1247년 교황에 의해 프리드리히 2세의 대립 왕으로 선출된 그는 1254년 공식 문서에 처음으로 이 이름을 국호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상 아무런 실권도 없는 왕이었다. 하지만 대공위 시대가 종식된 후 이 국호는 공식화되었고 그렇게 독일 왕은 곧 이 실체도 없는 '신성로마제국'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런데 200년이 훨씬 지난 뒤 이 '풀네임'에 하나 더 말이 첨가된다. 바로 '독일 국민의'가 그것이다. 1493년 독일 왕으로 즉위한 막시밀리안 1세는 '신성로마제국의 게으름뱅이'라 불렸던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와 달리 고결한 군주였고 사람들은 그를 '중세 최후의 기사'라 불렸다. 그런 별명에 걸맞지 않게 그는 중세를 뿌리치고 교황의 신권 정치 사상과 완전히 결별했다. 교황의 정치적 기반의 본질은 그가 직접 손으로 황제에게 대관하는 데에 있었다. 그것은 비록 단순한 의례였음에도 의례로 존재하는 한 현실의 정세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는 그 의례 자체를 폐지했다. 961년 오토 1세의 대관식 이후 550년 가까이 흐른 1508년, 그는 스스로 황제 막시밀리안 1세라 칭했다. 그러면서 그는 1512년 쾰른 제국 회의에서 '독일 국민의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칭호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는 제국의 황제가 독일 황제에 국한됨을 뜻하는 것이었다. 과거 제국의 판도였던 부르고뉴 왕국이나 이탈리아 왕국은 제국 내부의 외부가 아니라 진정으로 '외국'이 되었다.
이렇게 신성로마제국의 국호 변천사를 훑어봤다. 책에는 이보다 더 풍부한 내용이 알기 쉽게 서술되어있다. 특히 교황과 황제의 대립이 이후 제후와 황제의 대립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특히 책을 읽다보면 우연에 의해 제국이 성행하고 제국이 폐망하는 사례들이 제법 나오는데 이를 읽으면서 역사에서의 '우연'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마 이에 대한 책도 있을 터인데 한번 찾아 읽어야 하겠다.
또 책에 막바지에 나온 나폴레옹이 스스로 프랑스 황제를 칭하면서 촉발한 신성로마제국의 해체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당시 유럽 세계에서 황제를 지칭한 사람은 서로마제국의 후예를 자처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동로마제국의 후예를 자처한 러시아제국의 차르 둘 뿐이었는데 여기에 웬 코르시카 촌놈 나폴레옹이 태양왕 루이 14세도 못한 '프랑스 황제'를 자칭하니 이 얼마나 무도한 짓인가. 그런데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는 처음에는 나폴레옹에게 분노했지만 얼마 안 가 "그랬구나!"라면서 자기 무릎을 쳤다고 한다. 즉 허울뿐인 정통성인 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한 나라의 황제로 등극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그는 제국의 해체를 선포하고 오스트리아 초대 황제 프란츠 1세로 변신했다. 나폴레옹의 즉위가 얼떨결에 이 천년 중세제국의 해체를 이끈 것이다. 참 재밌지 않은가.
비록 몇몇 지도들에서 꽤 비중이 큰 오류들이 보이긴 하는데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로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단단한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고 여긴다. 이 책에서 더 나아가 카를 5세때에는 북남미와 유럽 등 세계제국을 건설한 합스부르크 가문에 관한 책이나 앞서 얘기한 대로 역사에서의 우연에 관한 책을 읽어보도록 메모해놔야겠다. 참 별 내용도 없는 독후감에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것 같다...ㅎㅎ
오오 누가 그랬더라 마르크스였나?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닌, ㅋㅋㅋ 그 이름 신성로마제국 근데 이거 진짜로 하겠다는 거냐.. 하루 한권 독후감? ㄷ ㄷ ㄷ
그거 볼테르임ㅋㅋ ㅇㅇ 신년 목표 도전.. 성공할 진 미지수지만
볼테르구만 ㅋㅋ 독후감마라톤 응원츄
매일 이정도 분량 쓰면서 1권 읽으려면 죽어나겠다 ㄷㄷ
오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