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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사계절, 2020.

어린이때부터 나보다 어린 이를 좋아했다. 여덟살때부터 2년간 부산 할매네서 같이 산 두살내기 사촌동생을 돌봤고 명절 때마다 나보다 어린 사촌들은 늘 내 몫이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들이랑 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친부는 동두천의 한 삼겹살 집을 자주 데리고 갔었는데 그곳의 사장은 친부와 형님동생하는 사이였다. 부부가 운영하는 그 집의 삼겹살 맛이 뛰어났던 것과 그 집의 개업 수건이 집에서 쓰였던 것, 그리고 그 집에 처음 갔을 때 초등학교 입학도 안 한 아이가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고기가 구워지기 전까지 그 애랑 그 집의 강아지랑 함께 놀기를 좋아했고 그 애도 나를 잘 따랐다. 사장 부부의 아이는 아니었다. 사정상 맡은 몇촌 조카로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는 그 아이랑 대략 3년간, 년에 대여섯번은 족히 만난 것같다.

중학교 3학년 겨울이었나 친부가 외식 어디로 할까라는 말에 오랜만에 아이도 볼 겸 그 집 얘길했다. 친부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가만 보면 너는 고기먹으러 거기 가자는 게 아니라 거기 애랑 놀려고 가는 것같다, 너 나이가 몇인데 걔랑 노는 게 좋냐, 그렇게 안 봤는데 정신연령이 얼마나 어린거냐 핀잔을 주었고 그 뒤로 나는 그 아이를 본 적이 없다. 나중에 성인되고 나서야 친부가 그 집 사장과 정치문제로 싸워 절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튼 그 뒤로 명절 때도 사촌동생들보다는 혼자 책을 읽든 폰을 하든 그랬다. 그때는 어린이들이랑 어울리는 게 내 나이에 알맞지 못한, 잘못된 것인줄 알았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어린이들에게 항상 잘 어울려주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집에 올라가면 친모가 집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 다니는 어린이들을 맞이할 때가 있다. 1년에 올라가는 횟수가 한 손에 꼽히니 대개 이 아저씨는 누구냐고 아주 난리가 난다. 친모는 무서운 형아니 선생님 말 안 들으면 혼쭐을 낸다고 엄포를 놓는다. 몇몇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몇몇은 그럼에도 다가와 별 말을 다 건넨다. 답을 해주면 저들끼리 신이 나 왁자지껄이다. 그런 그들을 보면 그저 행복하다.

작년 하루는 올라가니 친모가 좀 이따가 말도 잘 안하고 딴짓하고 장난만 치는 골칫덩이인 학생 한 명이 오는데 너가 좀 케어하라고 얘기해 알겠다했다. 1시간 가량 열 살의 골칫덩이에게 영단어를 쓰고 읽히게 시켰다. 그는 처음보는 내가 무서웠는지 낯설었는지 친모가 언질해준 것과 달리 매우 얌전했다. 수업시간이 다 끝날 때쯤 오늘 참 잘했다고 어디 학교를 다니냐 물으니 들은 것과 달리 아주 이야기보따리가 쏟아졌다. 어린이답지않은 다크서클이 짙은 그는 얘길막하며 처음으로 웃었다. 그를 보내고 친모는 저애 가정이 엄마가 안 계시고 어쩌구저쩌구 얘길했는데 나는 그저 슬펐다. 친모에게 애 착하구만 너무 뭐라하지 말라 얘기하고 말았다.

이 책에 나오는 어린이들의 일화는 모두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하다. 그늘을 찾기 어렵다. 어린이독서교실의 원장인 저자가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인만큼 그럴 만하다 느낀다. 하지만 그런 어린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어린이일 적을 돌이켜봐도 가장 생생한 열 살 이전의 기억은 모부의 부부싸움 중 나는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동생은 친모 곁에서 우는, 그리고 친부가 나간 후 친모가 내게 동생도 이러는데 너는 형이 되어서 뭐하냐고 폭언을 하는 딱 그 기억이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여섯 살때 마찬가지로 모부의 부부싸움 중 우는 동생을 달리며 시리얼에 달려오는 티몬과 품바 시디게임을 하는 기억이다. 그 경험들이 초등학교 때의 나로 하여금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히게 했는지는 몰라도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는다 여긴다.

책에는 틀린 말 하나 없고 외려 내가 차마 생각치 못한 사안들에 대해 내 시선을 돌리게끔 꼬집는 글들도 많았다. 그늘있는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 위와 같은 경험상,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반쪽 뿐인 세계만을 담은 건 아닌가라고 느낀다. 어린이의 보편적인 세계에 대해 너무나도 훌륭하고 따스히 써내려간 책이지만 그 보편에 가려진 세계는 여전히 어둠의 베일에 가려져있다.

어쨌든 이건 전적으로 개인 경험이 꼬일대로 꼬여 읊은 쓰레기본인의 잡설이고 그와 별개로 이 책은 정말정말 좋은 책이다. 이슬아가 자신의 글쓰기교실을 운영하면서 쓴 책, 제목은 기억 안 나는데 암튼 올해 나왔는데, 그 책이랑 함께 읽길 추천한다.

...스물 중반의 나는 내 어릴 적의 세계를 돌이켜볼 책을 찾아보아야 겠다. 좋은 결실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