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일 2020/10/23


- 72일차 2021/01/02


- 오늘 읽은 책


1. 수용소 군도 2권 - 알렉산더 솔제니친 - 열린책들, 김학수 역

242p ~ 273p - 32p




-73일차, 드디어 수용소 군도 1부가 끝났다.



소련이 자국민에게 대체 뭔 짓을 저질렀는지 상세히 알 수 있었던 끔찍한 기록물이었다.


권력을 잡기 위해, 권력을 다지기 위해, 잡은 권력을 더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저지를 의지와 능력이 있었고,

그 무슨 짓은 오로지 계급적 이익, 사회주의 원칙, 당의 이익이라는 단순 명료한 명분들만으로 행해졌다.


개인의 사상과 행위, 사회현상, 심지어 경제법칙이나, 자연법칙에 가까운 필연적 결과물들 까지 명분만 있다면 죄로 규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 않음' 마저도 죄였고, 같은 러시아인, 같은 공산당원도 죄인이었고, 심지어 형을 선고하던 재판관도 죄인이었다!


왜 사람들은 그것을 묵인했을까? 혁명이란 그런 것인가보다. 혁명은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뒤짚어 업는다.


그러니 기존의 상식과 도덕이 무슨 소용이랴, 

기존의 가치를 부정할 수 있게 해주었던 단순 명료한 원칙 하나를 따랐으니 혁명도 있었고

그 원칙이 새로운 상식과 도덕이 되었을텐데, 새로운 선이 악을 처단하는 데 어떤 반발이 있을까


그 과정 속에서 권력의 몽둥이질이 큰 부분을 차지했으리라,

잡혀간다는 공포, 재판받는 다는 공포, 고문당한다는 공포, 사형당한다는 공포, 내 가족이 나를 따라 고통받고, 내 조국이 나를 배신한다는 공포

그 공포가 입을 막았고, 소련 당국은 되려 그 공포를 입을 여는데 사용했다.


그냥 죽이는 것보다 노동력으로 쓰는 것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사형 자체보다, 사형을 기다리는 그 고통의 시간이 죄수들을 교화시켰다.

죄를 자백하면 사면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하지만 사형이 선고되었다면, 죄는 이미 밝혀진 것이 아닌가?


소련의 재판은 이런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으면, 사형

그들의 신념을 포기한다면, 사면이었다.



1부의 마지막은 죽어가는 수용소에서 모진 일상을 견디며 홀로 우주에 대해 사색하던 천문학자가 독방에 갇힌 채 신에게 기도하는 모습으로 끝이난다.


"신이시여, 저는 숫자가 필요합니다. 이 사색을 진행시키기 위해서 어찌해야합니까"


그리고 기적처럼 교도관이 말없이 천문학 책 한권을 던져주고간다.


비록 몇일만에 빼앗긴 책이지만, 그는 그의 사색을 이어 갈 수 있었고,

그의 전공이 쓰일 시기가 다가왔다.



오늘까지 달린 거리

3926 / 42195 (약 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