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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대단한 책이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개소리만 하는 소설인데, 이게 또 굉장히 매력적이다. 감상엔 스포도 있다.


소설은 야콥이 자기 다니는 하인학교를 신랄하게 욕하면서 시작한다. ‘우리는 여기서 배우는 것이 거의 없’고, ‘벤야멘타 학원의 생도들에게 배움 따위는 어차피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라 말한다. 벤야멘타 하인 학교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 ‘바라지 않는 것’, ‘끝없이 반복하는 것’만을 가르친다. 이런 학교에 걸맞게 학생들도 하나같이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으로 살아간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이 친구들은 아무런 개성도 없고, 지극히 소박한 것만을 꿈꾼다. 게다 그마저도 억누르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소설은 야콥이 학교와 학생들 모습을 비꼬면서도 은근한 애정을 드러내며 진행된다.


사실 야콥은 하인학교에나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사실 거기 있는 학생들과는 태생부터 다른 친구였다. 애초부터 귀족 집안에, 주 의회 의원의 둘째 아들씩이나 되는 분이다. 날 때부터 글줄 걸고 태어나 남부러운 줄 모르고 살 수 있었던 놈이었다. 하지만 야콥은 성공이 보장된 탄탄대로를 걷어차고 하인학교로 걸어 들어간다. 어려서부터 난도질 당해 죽은 노동자의 시체나, 어머니 발밑에 고개를 쳐박고 용서를 비는 하인을 보고 노동자들의 삶과 자신의 삶에 괴리를 느끼고, 귀족사회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이후로 부와 성공은 점점 '신경쇠약과 천박한 세계관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결국 '질식 할 것 같은 아버지의 그늘'에 반항하고, 모든 걸 거부하며 완벽한 0 이되는 하인학교로 향한다.


야콥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않고, 누구도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 삶을 원했다. 모든 발전와 성장을 부정하고 정체되기를 소망했다. 사람은 그저 '거대한 계획으로 움직이는 기계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고 '개인은 그저 0일 뿐'이다. 야콥 자신이 만약 나무였다면 결코 '가지와 줄기를 뻗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아닌 충실한 하인으로서 있는 듯 없는 듯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 삶이 이상적이고, 가능한한 최고의 반항이라고 여겼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기엔 야콥은 너무 자아가 뚜렷한 사람이었던 거 같다. 0이 되고 하인이 되려고 했지만, 결국은 모든 걸 비판하고, 규율에 반항하고, 가장 모범적인 학생인 크라우스를 놀리는 걸 소일거리 삼는 생활을 한다. 시작부터 그랬듯이 아무런 개성도 생각도 없이, 같은 행동만 반복하며 살아가는 학생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 비판은 그저 하인학교 학생들만을 향한 비판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겉보기에는 우리가 우리 것으로 만들었던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삶을 살고있는, 스스로 주체가 되지 못하고 '아주 미미한 존재, 누군가에게 예속된 존재'로 살아가는 현대인 모두에게 가하는 비판이다. 또 반항으로 예술을 선택한 형 요한과 나누는 대화와 꿈을 통해 채찍질 해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치만 야콥이 마냥 냉소적이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물론 깔 건 까고 보지만, 항상 마지막엔 애정어린 눈빛을 비춰준다. 작가 스스로도 평생 가난에 시달리고, 말년엔 정신병을 위장해 병원에 들어가 생을 마감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당장 먹고살 일이 급하고, 아주 사소한 일에 울고 웃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남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야콥의 시선이 바로 작가의 시선을 대변한다고 본다.  그동안의 날 선 비판과 복종, 무념 찬양은 현대 삶에 대한 비판이면서, 사실은 주류의 삶에서 벗어난 이들에 대한 공감과 유대의 표현으로 보인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는 하인이 되려고 공부하며 점점 0이 되어가는 친구들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랑스러웠을 거다. 특히 크라우스를 각별한 사랑으로 괴롭힌다. 크라우스를 놀리고 괴롭히면서 은근히 아끼는 모습이 나름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또 현실에 가멸찬 비판을 하면서도 은근한 사랑을 내보이는 야콥의 따듯한 마음씨를 알아본 벤야멘타 남매도 인생의 점환점을 맞이한다. '소중한 사람을 소유하지 않고 상처주지 않고' 사랑하려는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걸 느낀 벤야멘타 양은 죽고만다. 그리고 벤야멘타 원장은 자기를 얽매던 문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게되고, 야콥은 그와 함께 떠나기로 다짐한다. 


'나 개인은 그저 어느 영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이 펜도 던져버리는 거다. 생각하는 삶이랑 이제 집어치우련다. 나는 벤야멘타 씨와 함께 사막으로 간다. 보고싶다. 황야에도 삶이라는 것이 있는지 보고 싶다. 호흡하고, 존재하고, 정직하게 선을 추구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지 보고 싶다. 밤에 잠을 자고 꿈을 꿀 수 있는 지도 알고 싶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이제부터 나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거다. 신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을 건가? 그렇다! 신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신에 대해 생각한단 말인가? 신은 생각하지 않는 자와 함께 간다. 자, 이제 그럼 영원한 작별을, 벤야멘타 학교여.'


야콥은 다시 한 번 떠난다. 이번엔 문명을 벗어나 아무것도 없는 자연 본연의 곳으로. 이젠 혼자도 아니다, 커다란 벤야멘타 원장이 함께한다. 비록 인생은 결국 0이 되고 말겠지만, 주어진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 시작해보려는 것 같다. 야콥이 사랑한 크라우스처럼, 이번 한 번은 최선을 다 해 보려고 말이다.  


번역이 많이 구려서 읽긴 초큼 불편했지만, 무척 재밌었다. 게다 간만에 뽕이 좀 차오르는 듯. 덕분에 지만지에서 나온 첫 번째 장편 '타너가의 남매들'도 질렀다. 25,000원 ㅎㅎ 지만지 개객끼 해봐 ㅎㅎ 얼른 이거도 재밌게 읽고, 산책자도 읽어봐야겠음. 


예스잼. 추천. 두 번 읽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