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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은 자꾸 넘어지자고

 그날 살아 있다고 안심하라고 철없이
 아픈 마음이
 광교 근처를 지날 적에 칸나꽃을 만나더니
 꽃 밝은 잠을 자고 싶어하네

 빈집들 속에 빈집으로 걸어들어가
 쪼그려 잠들면
 만발하는 고통아 잎 넓은 한 그루의 애인아
 잠이 너무 밝다

 몰려가는 사람들 틈에서
 늙은 산의 울음 소리 들리고
 걸음은 자꾸 넘어지자고 조르고

 산 울음에
 종로쯤 떠밀릴 때 나사렛 사람처럼
 고통이 내게 묻네 "가는 곳이 어디지?"
 휑하니 비어 대답하는 길바닥
 걸음은 자꾸 넘어지자고 조르고




장석남,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문학과지성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