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시대의 통일교육, 박성춘ㆍ이슬기, 집문당, 2016.
예전에 다문화 교육 관련해서 책들 좀 뒤져보다가 목차랑 앞부분 쓰윽 훑고 한번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제야 읽었다. 게을러도 너무 게을러 탈이다.
다문화 시대와 통일교육은 모순처럼 보인다. 통일교육의 목표가 통일의 당위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인데 당위성의 대표주자가 다름아닌 '우린 같은 한민족'에 있으니 다문화 시대에 동떨어져 있다. 그렇다고 책에 나온대로 세계시민교육 차원에서 보편적 인권과 평화의 관점으로 통일을 지향하면 그만일까? 그게 꼭 통일을 해야만 가능한건가라는 의문이 학생들에게 들기 마련이다.
통일교육은 자연히 북한을 향한 교육과 직결된다. 물론 군사독재시절의 반공승공 북괴 운운은 시대착오적이지만 아이스크림은 얼음복숭이, 라면은 꼬부랑국수 등등 북한말 배우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교육은 시대착오적이지 않는가. 그렇다고 북한의 실정을 얘기하면 할수록 북한이라는 '나쁜' 나라와 왜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이도저도 막막하니 남은 게 민족주의에 기반하는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저자는 대안으로 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나 순우리말을 쓰려는 노력 등을 가르쳐 학생들에게 북한의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자는데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일본보고 섬원숭이 운운하는 걸 긍정적으로 가르치라니. 민족주의를 민족주의로 대응하는 뭐 그런건가 싶다.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은 통일교육이 통일을 당위로써 바라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통일을 당위가 아닌 가능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토론식 수업처럼 말이다. 책에 따르면 통일교육에서 토론식 수업은 고작해야 5.7%를 차지한다. 이러니 엊그제 읽은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나오듯 초등학교 6학년생이 왜 학교에서는 통일이 좋다고만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통일을 겪을 건 우리인데 통일의 나쁜 점은 가르쳐주지않으면 대비를 할 수 없지 않냐며 매우 상식적인 푸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도 통일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계속 얘기를 진행한다. 통일을 할 가능성이 있으니 그 대비를 위해 교육을 해야한다면 먼저 학생들에게 통일의 가능성에 대해서부터 가르쳐야 순서가 맞지 않겠는가. 통일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조건들, 예를 들어 김일성 일가의 세습통치 종료 혹은 그에 준하는 내부적 쇄신, 핵무장 포기 정도는 얘기하고 통일교육을 해야 뭐라도 되지 않겠나?
또 저자는 롤스와 공리주의를 통일을 위한 논리체계로 인용하는데 그것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북한의 정치적 행위들만큼 학생들의 북한 인식에 영향을 끼칠지 의문이기도 하다. 특히 공리주의적 논리로 바라보는 통일은 저자도 언급했으니 허황된 공산에 그칠 우려도 크다. 독일 통일 비용의 경우 25년동안 2천 조원이 들었다. 한국이 통일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해야하는 상황인만큼 공리주의적 논리로써는 통일에 대한 경제적 장밋빛미래만 나열할 수밖에 없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민족공동체적 북한관, 평화유지적 안보관, 지속가능발전 통일관, 자유민주주의적 통일국가관, 공존공영을 위한 세계관이라는 통일교육의 새로운 목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첫 목표부터가 책 제목과 상충된다 느끼는 건 나만 그리 생각하는가? 게다가 뒤의 네 목표들도 말이야 훌륭하지만 본질적 문제인 왜 통일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와는 무관하다. 결국 이게 다 통일교육이 통일을 지양하는 뉘앙스를 띨 수 없으니 생기는 문제들인데 전문가들이 여러 차원에서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논리를 나름대로 만들어나가야 해결될 문제 같다. 민족을 떠나 어차피 한국의 구성원이면 역사교육을 통해 서로 같은 공동체구성원으로서의 동질감을 학습하지 않는가? 그러면 차라리 역사적 차원에서 통일이 한반도 역사의 '정상'적인 형태라는 논리를 좀 더 갈고 닦는게 나아보인다.
책의 논조 자체는 동의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관련해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 교사들과 학생들의 생각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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