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한 사마천이 삼가 임소경께 편지 올립니다.
지난번에 보내주신 편지에서 저에게 "사람들과 원만히 지내고, 인재를 천거하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하신 뜻이 실로 간절하였습니다. 아마 제가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속된 사람들의 말에 따른다고 생각하시고 책망하시는 듯합니다만 저는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저는 비록 보잘 것 없는 존재이기는 하나 옛 어른들의 가르침만은 거듭 귀담아 듣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저 자신은 비천한 처지에 빠진 불구자입니다. 뭘 하기만 해도 허물을 만들며, 잘하려고 해도 도리어 일을 망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홀로 절망스러워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습니다.
속담에 '누구를 위해 하는가, 누구더러 들으라고 하는가' 라고 했습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두 번 다시 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는 선비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행하고, 여자가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하여 단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사람은 몸이 이미 망가졌으니 아무리 완전무결한 재능이 있고 행동은 더 할 나위 없이 깨끗하다 할지라도 끝내 영예를 얻지 못할 것이며, 도리어 남의 비웃음이나 당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기에나 족할 따름입니다.
당신의 편지에 대해 마땅히 답을 올려야 했지만 마침 황제 폐하를 따라 동쪽에 다녀왔으며 또 제 개인적인 일들에 쫓겼습니다. 만나 뵌 지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바빠서 저의 속마음을 아뢸 수 있는 틈이 잠시도 없었습니다. 지금 소경께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죄를 안고 계시는데 이제는 한 달이 지나 형을 집행하는 12월이 임박하였습니다.
저는 또 폐하를 좇아 옹 땅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혹시라도 갑자기 당신께서 차마 말 못할 일을 당하시고 제가 끝내 저의 애끓는 마음을 가까운 사람에게 말할 수도 없게 된다면 당신의 혼백은 영원히 가고 저의 한은 끝이 없겠지요. 이제 저의 비루한 생각을 대략이나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랫동안 답장 올리지 못한 것을 허물하지 말아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제가 듣건대, 자신의 몸을 수양하는 것은 지혜가 쌓였다는 표시이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자함의 실마리이며, 주고받는 것은 의리의 표현이며, 치욕을 당하면 용기가 있다는 뜻이며, 뜻을 세워 사는 것이 그 최종적인 목적이라고 합니다.
선비는 이 다섯 가지를 갖춘 후에야 세상에 몸을 의탁하고 군자의 대열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익을 탐내는 것보다 더 참혹한 화는 없으며 마음을 상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슬픔은 없고,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추한 행동은 없으며, 예, 궁형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치욕 또한 없습니다.
형벌을 받은 사람이 보통 사람들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없는 것은 오늘날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옛날 위령공이 환관인 옹거와 수레를 함께 탔기 때문에 공자는 그 곳을 떠나 진나라로 갔습니다. 상앙이 경감의 주선을 받아 군주를 알현하자 조량이 한심하게 여겼습니다. 조담이 군주의 수레를 함께 타자 원사의 안색이 변하였습니다.
이처럼 옛날부터 사람들은 환관들과 엮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대개 별 것 없는 사람도 일이 환관들과 관련이 되면 기분 상해하는데, 하물며 강직한 사람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요. 지금 조정에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한들 저같이 궁형을 받고 살아남은 제가 어떻게 천하의 뛰어난 인물을 추천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선친이 물려주신 사업으로 인해 군주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벼슬하면서 죄받기를 기다린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해보니, 위로는 충성을 바치고 믿음을 다하여 훌륭한 계책을 세우고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칭송을 들으면서 현명한 군주를 모시지도 못하였고, 다음으로 또 정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결여된 것을 메우며 어질고 재능 있는 자를 추천하거나 초야의 숨은 선비를 조정에 나오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밖으로는 또 전쟁에 참여하여 성을 공격하고 들판에서 싸워 적장의 목을 베거나 적의 깃발을 빼앗은 공도 없습니다. 아래로는 오랫동안 공로를 쌓아서 높은 지위, 후한 녹을 얻어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영광스럽도록 해준 적도 없습니다. 저는 이 네 가지 중에서 하나도 이루지 못하였으니 조정에서 구차하게 쓰여 아무런 일도 한 바가 없음이 이와 같습니다.
이전에 저는 외람되이 하급 관리의 대열에 끼어 천자를 모시는 뜰 밖에서 말단에 불과한 의론에나 참가하였습니다. 그 당시 올바른 기강을 이끌어 내지도 못했고, 깊이 사려하지도 못했고, 지금은 이지러진 몸으로 청소나 하는 천한 노예가 되어 용렬하고 어리석은 지경에 빠져 있는데 이제서야 머리를 들고 눈썹을 펴서 옳고 그름을 논한다면 조정을 가벼히 여기고 이 시대의 사람들을 치욕되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아, 저와 같은 인간이 이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또한 일의 처음과 끝은 쉽게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어려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재능을 가졌다고 자부하였지만 자라서는 향리에서 어떤 칭송도 받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행히 황제께서 선친의 연고로 저의 얕은 재주나마 받들어 궁궐 안을 드나들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동이를 머리에 인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없듯이 한마음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두 일을 다룰 겨를이 없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손님들과의 사귐을 끊고 집안일도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미미한 재능을 다하여 한마음으로 저의 직무를 다하여 주상께 총애받고자 힘썼지만 결국 제 뜻과는 전혀 달리 크게 잘못되기에 이르렀지요.
저는 이릉과 같은 직급에 있었지만 본디 서로 친하지는 않았습니다. 취향이 서로 달라서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없고 친밀하게 교분을 나눠 즐거웠던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사람됨을 살펴보니 스스로를 지키는 뛰어난 인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부모를 모시는 것은 효성스러웠고, 사람들과 사귀는 것에 신의가 있었으며, 청렴하였고, 서로 주고받음에 공정함을 지켰고, 겸양하였고, 아랫사람들에게 공손하고 검소하였습니다. 분발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았고 그 뜻대로 나라의 위급함에 몸바칠 것을 항상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그가 나라의 큰 선비로서의 기풍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대저 신하된 자로서 만 번 죽는다 해도 자신의 생명은 조금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나라의 위급함을 구하려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뛰어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가 행한 일 하나가 마땅치 않다고 해서, 자신의 몸을 보전하고 처자를 보호하는데에 급급할 뿐인 자들이 서로 줄지어 그의 잘못을 지어내어 모함하였으니 저는 진실로 통탄스럽습니다.
또 이릉이 지휘하고 있었던 보병은 5천 명이 채 되지 않았는데 오랑캐의 땅에 깊숙히 들어가 그 중심지를 활보하였고 마치 호랑이 입에 미끼를 들이대듯 강한 오랑캐에게 마구 도전하여 억만의 군사를 맞이하였습니다. 선우와 싸움을 계속한 지 10여일 만에 죽인 자는 반이 넘었고 오랑캐들은 사상자를 구조할 수도 없었습니다. 털옷을 입은 흉노의 군장들은 모두 두려워 떨었으며 모두 그 좌우의 현왕을 소집하고, 활 쏘는 사람을 모두 불러내어 온 나라가 함께 이릉의 군대를 공격하여 포위하였습니다.
이릉의 군대는 천 리에 걸쳐 싸우면서 물러나 화살은 다하고 길은 막다른 곳에 이르렀으며 구원병은 오지 않고 병졸의 사상자는 쌓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릉이 한번 외쳐 군사를 위로하면 군사들은 몸을 일으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피로 얼굴을 씻고 눈물을 삼키며 다시 맨주먹을 불끈 쥐고 칼날을 무릅쓰며 북쪽을 향해 죽음으로 적과 싸웠던 것입니다.
이릉이 아직 적에게 패하지 않았을 때에 사자가 와서 보고를 올리자 우리 한나라의 공경, 왕후들은 모두 축배를 들며 황제께 축수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에 이릉이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황제께서는 음식도 들지 않으셨고 조회에서도 불편한 기색이셨습니다. 대신들은 근심하여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의 비천함을 헤아리지 않고 폐하의 슬픔과 번뇌를 보고는 어리석은 충성이나마 다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컨대 이릉은 평소에 부하들과 어려움도 함께 하고 작은 것도 나누어 가져 병사들이 죽음도 마다하지 않게 하였으니 비록 옛날의 명장이라 할지라도 그보다 더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몸은 항복했지만, 그 뜻을 보건대 장차 적당한 기회를 얻어 한에 보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일은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지만 그가 적을 무찌른 공은 역시 천하에 드러내기에 족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갖고 아뢰고자 했으나 아뢸 길이 없었는데 마침 주상께서 하문하셔서 곧 이러한 뜻으로 이릉의 공적을 말하여 주상의 생각을 넓혀 드리고 다른 신하들의 비방의 말을 막아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을 다 밝힐 수 없었으며 주상께서는 제 뜻을 이해하지 않으시고 제가 이사장군을 비방하고 이릉을 위해 유세한다고 여기셨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정성스러운 충성을 끝내 밝힐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황제를 속였다는 죄로 마침내 하급관리에게 유죄 판결을 받고 말았습니다.
저의 집은 가난하여 형벌을 면할 수 있을 만큼의 속죄할 재물이 없었고 사귀던 벗들은 아무도 저를 구하려 하지 않았으며 폐하의 좌우에 있던 측근들은 저를 위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목석이 아닐진대 그저 옥리와 마주하여 깊이 감옥 속에 갇혀 있었으니 누구에게 내 사정을 하소연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실로 소경께서도 직접 겪고 계신 것으로 제 처지가 딱 그러하였습니다. 이릉이 살아서 항복함으로써 그 가문의 명성은 무너졌으며, 저는 궁형을 시행하는 밀실에 던져져서 거듭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아아, 아아! 이런 일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상세히 말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저의 선친은 길이 남을 공을 세우신 적도 없었습니다. 천문과 역법에 관한 일을 관장하셨는데 실상 점쟁이나 무당에 가까웠으며 본디 주상께서 희롱삼아 노시던 것으로 악공, 광대를 양성하는 것과 같아 세상 사람들이 경멸하는 바였습니다. 만약 제가 형벌에 복종하여 죽는다 할지라도 아홉마리 소 중에서 털오라기 하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따름이니 제 존재가 땅강아지나 개미같은 미물과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세상에서는 제가 죽는다 해도 절개를 위해 죽은 사람과 동일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다만 제가 생각이 모자란데다 죄는 너무나 커서 제 스스로 죽게 만들었다고 여길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제가 평소에 세워놓은 바가 그렇게 여기게끔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람이란 언젠가 한 번은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기도 하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의 터럭만큼이나 가볍기도 하니 이는 죽음을 맞는 방법이 다른 까닭입니다
가장 훌륭한 죽음은 선조를 욕되이 하지 않는 것이고, 그 다음이 자신을 욕되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자신의 도리와 안색을 욕되이 하지 않는 것, 그 다음이 자신의 언사를 욕되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몸이 속박되어 치욕을 당하는 것이요, 그 다음이 죄수복을 입고 치욕을 당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손발이 묶이고 매질을 당하여 치욕을 받는 것, 그 다음이 머리를 삭발당하고 쇠고랑에 매여 치욕을 받는 것, 그 다음은 신체가 훼손되고 발이 잘려 치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보다도 더, 가장 나쁜 것이 부형입니다.
옛 말에 "형벌은 높은 대부에게까지는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선비는 절개를 지키기 위해 힘쓰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나운 호랑이가 깊은 산중에 있을 때는 온갖 짐승들이 두려워하지만, 함정에 빠지게 되면 그 호랑이도 꼬리를 흔들며 음식을 구걸하는 법입니다. 이는 호랑이마저도 점점 위세에 눌려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선비는 기개를 지켜 땅에다 줄을 긋고 감옥이라 하여도 그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나무를 깎아 법관이라 하고 심문하여도 이러쿵저러쿵 거기에 대꾸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계획된 것이 정해져 있으므로 형벌을 받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손발이 얽혀 판목이나 새끼줄에 묶이고, 살갗을 드러내고 매질을 당하며 감옥 속에 갇혀 있다보면 옥리만 봐도 머리를 처박게 되고, 감옥을 지키는 노예를 보고 마음이 두려워 숨이 막힐 지경이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자신의 기세가 위세에 눌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고도 치욕을 당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뻔뻔스러운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찌 그 사람을 귀하게 대접하겠습니까.
서백은 백작이었지만 유리에 갇히는 몸이 되었고, 이사는 재상이었지만 다섯가지 형벌을 다 당하였습니다. 회음후는 왕이었지만 진 땅에서 묶이는 신세가 되었고, 팽월, 장오는 남쪽을 바라보며 왕 노릇을 하였으나 감옥에 갇혀 죄를 받았습니다. 강후는 여씨 정권을 타도하여 권력이 그 옛날 춘추오패를 능가하였으나 유치장 신세를 졌고, 위기후는 대장의 몸으로 붉은 죄수복을 입고서 목과 팔다리에 고랑을 찼었습니다. 계포는 숨어다니다가 목에 칼을 쓴 노예가 되었고, 관부는 남의 집에서 치욕을 당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왕후장상의 지위에 이르렀고 명성은 이웃나라에까지 알려졌지만 죄를 입어 판결이 내려졌을 때에 자결함으로써 스스로 결단하지는 못했습니다. 오욕에 처할 수 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러한 상황에서 어찌 치욕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면으로 보자면 용기와 비겁, 강인함과 나약함은 형세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이상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저 사람이 법에 의해 처벌되기 전에 일찌감치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차츰 전락하여 태형을 당하기에 이르러서야 절개를 지키려고 한다 해도 이는 늦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옛 사람들이 대부에게는 형벌을 내리는 것을 어렵게 여긴 까닭은 아마도 이 때문인 듯합니다.
사람의 본심은 살기를 애쓰고 죽기를 싫어하며 부모를 생각하고 처자를 돌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의리에 자극을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 이는 부득이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불행히도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었고 가까운 형제도 없으며 홀로 외로이 살아왔습니다. 소경께서 보시기에 제가 처자식에 대해서는 어떻다고 여기십니까? 또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절개를 위하여 죽는 것도 아니며, 비겁한 사내라도 의를 사모하면 어떤 행동이라도 힘써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비록 비겁하고 나약하며 구차히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나 거취를 어떻게 해야할지는 분별할 수 있습니다. 아, 어찌 제가 몸이 속박되는 치욕 속에 자신을 밀어넣기에 이르겠습니까?
천한 노복이나 하녀조차도 능히 자결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저와 같은 사람이 어째서 자결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고통을 감내하고 구차하게 더러운 치욕 속에 있으면서도 마다하지 않고 사는 까닭은 제 마음 속에 다 드러내지 못한 것이 있어, 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져버린다면 후세에 제 문장이 드러나지 않을 것을 한스럽게 여겨서입니다. 옛날부터 부귀하였지만 이름이 잊혀진 사람들은 이루 다 기록할 수조차 없습니다. 오로지 탁월하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비상한 사람들만이 일컬어졌습니다.
주문왕께서는 갇힌 몸으로 주역을 풀이하셨고 중니는 곤란한 처지를 당하여 춘추를 지었습니다. 굴원은 쫓겨가서 이소를 썼고, 좌구는 실명한 뒤에 국어를 지었습니다. 손자는 발이 잘리고서 병법을 썼으며, 여불위가 촉에 유배되었지만 여람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한비는 진나라에 갇혀서 세난, 고분을 저술하였으며 시경의 300편 시도 대개 성현께서 발분하여 지은 것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뜻이 있었고 가슴 속에 무언가 맺혀 있었지만, 그것을 밝힐 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줄 것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좌구와 같이 눈이 멀고 손자와 같이 발이 잘린 사람은 끝끝내 세상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테지요. 그러나 그들은 물러나 책을 써서 울분을 풀고 마음을 세상에 남기며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저도 감히 겸손치 못하게도 무능한 문장에 스스로를 맡기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천하의 이리저리 흩어진 옛날 글들을 모으고 여기저기 정보를 수집하여 지나간 일을 대략 따지고 그 처음과 끝을 정리하여 흥하고 망하는 원리를 살펴 위로는 헌원으로부터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두 130편을 저술하였습니다. 저는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의 문장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초고를 다 쓰기도 전에 이런 화를 당했는데, 나의 작업이 완성되지 못할 것을 안타까이 여긴 까닭에 극형을 당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이 책을 저술하여 명산에 깊이 보관하였다가 제 뜻을 알아줄 사람에게 전하여 작은 마을에서 큰 도시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지게 된다면, 저도 이전에 받은 치욕에 대한 세상의 책망을 보상받게 되겠지요. 비록 만 번이나 죽임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가 남겠습니까? 이것은 지혜로운 사람에겐 말할 수 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떠벌리기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빈천한 무리 속에 사는 것은 쉽지 않고, 소인배들은 비방의 말이 많습니다. 제가 말을 잘못하여 이런 화를 만나 거듭 향리에서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욕되게 하였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부모님의 산소 앞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제가 입은 수치만 심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하루에 아홉 번이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고 집안에 있으면 망연자실하여 무엇을 잃은 듯하고 집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릅니다. 이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땀이 등줄기를 흘러 옷을 적시지 않는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환관과 같은 신하에 불과하니 스스로를 깊은 바윗골 속에 숨길 수도 없습니다. 그저 세상에 따라 부침하고 때에 따라 처신하며 그럭저럭 미혹되게 살아남아 있습니다.
지금 소경께서는 저에게 훌륭한 인물을 밀어주라고 충고하시지만 그와 같은 일은 제 뜻과는 어긋나지 않겠습니까? 이제서야 스스로를 가다듬고 아름다운 말로 스스로를 꾸미고자 한들 세상에 아무런 유익함도 없을 것이며 사람들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니 욕이나 당하기에 알맞을 것입니다. 결국은 제가 죽은 뒤에야 옳고 그름이 가려질 것입니다. 글로써는 제 뜻을 다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고루한 생각을 대략 말씀드렸습니다. 삼가 사마천이 보내 올립니다.
- 한서
정말 잘 쓴 글이다
그래서 프린트해서 문에 붙여놓고 하루에도 몇번씩 보고 그랬음 그래서 거의 외워지다시피 했었지
한서 완역본도 검색해보니 나온 것 같은데 사기 완역본이랑 같이 사야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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