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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촛불을 킨다는 건
하나의 그림자을 던지는 것이고,
위대한 힘을 쓴다는 건
강대한 위험을 동반하는 것일지니.
한줄 요약
위대한 마법사 게드의 시작, 그 순탄치 않은 고통과 해소의 모험.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연대기 중 첫 번째 작품, 어스시의 마법사다. 사실 얘기는 조금 들어봤는데,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군대 도서관에서 읽을 만한 판타지가 이것 밖에 없어서 자연스럽게 빌려 읽게 됐을 뿐이다. 그래도 썩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오히려 만족스런 선택이었다.
재밌게 읽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도입부를 조금 각 잡고 썼지만, 사실 어스시의 마법사를 한줄 요약하자면 "게드의 자업자득 개고생 이야기"이다. 덤을 붙이자면 해리포터가 여기서 얼마나 많은 오마주를 따왔는지도......
어스시의 마법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설정이라면 역시 '언어'인데, 톨킨의 언어는 실제 사용되는 언어와, 실마릴리온의 수많은 예언과, 세상을 노래로 창조했다는 점에서만 쓰이는데 반해, 여기선 언어 자체가 힘을 가지는 것으로 나온다.
어느 것이든 옛 언어, 곧 진짜 이름을 알게 되면 그것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진명은 각 개체마다 다르고, 각 개념마다 다르기에 모든 사물 하나하나엔 진명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진명의 위력은 어느 한 공주가 섬 하나를 바다에 수장시켰을 정도고, 게드가 용이랑 대등하게 거래할 수 있게 된 힘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마법은 대부분 환상이거나, 혹은 조작하는 것에 가깝지만, 진명 자체를 바꾸는 일은 세계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점, 사람의 진명은 아내와 정말 친한 친구 외엔 안 알려준다는 점, 마법사들은 지팡이가 보증수표이고(...), 어디 채용되거나 자기 고향에 눌러앉는 게 아니면 대부분 잡일 도와주고 얻어먹는 막노동꾼에 가깝다는 점 정도(...)가 이 세계관의 특징적인 매력이다.
특히 이 작품의 배경은 군도인데, 그래서 툭하면 배가 나오고 항해가 나온다. 마법사들은 마법풍을 만들어주거나 배를 주문으로 강화시켜주는 등의 대가로 배에 승선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어쩄건 세계관 자체가 살아 숨쉬고 움직인다는 점에선 판타지로서 흠 잡을 데 없이 좋다.
다만 작가가 미국인 아니랄까봐 묘사 자체의 뛰어남을 기대하긴 조금 힘들다. 어스시의 마법사는 서사 중심이고, 재미가 붙는 시점도 게드가 본격적으로 사고 치고(...) 고생하기 시작하는 부분부터라서, 그 이전까진 다른 데서 재미 붙이기가 힘들다. 하지만 서사가 쌓이기 시작하면 미친듯이 재밌어지고 안쓰러워지고 괜히 찡하기도 하니 그것 하나는 믿고 볼 만하다.
바꿔말하면 어스시의 마법사는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에 어울리는 작품인데, 그 초반의 굉장히 평이하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은 전부 감동적이고 여운 남는 마무리를 위한 초석이라 생각해주면 좋겠다. 괜히 책장 덮고 치워버린다면 게드의 수난시대를 지켭지 못하는 셈이니 말이다.
작중에서 게드는 엄청난 재능을 가진 마법사로 나오지만, 이 작품의 주요 갈등이 되는 그림자와의 싸움은 게드가 사고 쳐서 생긴 거고, 내용도 자기가 사고 친 걸 수습하려고 모험하는 것이다. 더불어 게드는 뛰어난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입학 초기부터 노질하면서(...) 학교가 있는 섬에 도착하고, 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조선기술을 배우더니 나중엔 자기가 직접 배를 만들어서 간다. 말이 마법사지 사실상 조선공이고 뱃사공이다.
거기에 전개 자체가 무자비해서 게드가 점점 피폐해지고 고생길이 열리는데, 마법산데 육체노동을 더 많이 하는 점이 더더욱 그를 불쌍하게 여기게 된다(...) 그냥 읽다보면 안쓰럽고 슬프기 그지없다. 한편으론 자기가 엎지른 물이라 자업자득인가 싶지만서도.......
그 외엔 이 작품이 생각보다 짧다는 점인데, 정말 짧다. 298페이지다. 그래서 읽는다면 금방, 그리고 단숨에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다. 후반부의 무게를 생각하면 게드의 개고생을 한 번에 체험했다간 여운 정도가 아니라 후유증이 남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때엔 문장의 느낌도 달라진다. 그간 쌓인 서사와 조화를 이뤄선 피폐함을 간접체험할 정도다.
여담으로 리뷰 앞부분에 해리포터가 얼마나 많은 오마주를 따왔는지에 대해 언급했는데, 사실 나는 따로 조사하지 않아서 정말로 오마주를 따왔는지는 모르고, 이 작품이 해리포터보다 먼저 나왔단 점에서 그럴지 모른다고 추측되는 점들이 있을 뿐이다.
1. 지팡이가 마법사들의 보증수표: 물론 해리포터의 지팡이는 30cm 내외의 나무 막대기지만, 여기선 진짜 유사시에 지팡이겸 몽둥이로 쓸 수 있을 만하다. 간달프의 지팡이 생각하면 편하다. 거기에 지팡이 없으면 마법 쓰는데 제약 많이 생긴다는 점에서도...... 말하는 것으로 마법을 쓰는 건...... 어디까지 흔한 건지 몰라서 뺐다.
2. 인물 관계 구도: 게드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 부잣집 도련님이 친절한 척 은근슬쩍 비꼬고, 나중엔 아예 게드가 사고치게 도발까지 한다. 그리고 순박한 시골 출신이 게드에게 진짜 친구가 되어주는데, 이게 묘하게 말포이와 론을 생각나게 한다. 뭐, 물론 아니라고 하면 얼마든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의식하면 겹쳐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3. 흉터: 게드가 사고 치고 나서 그에 대한 여파로 엄청 흉악한 흉터가 생긴다. 사람 얼굴이 달라보일 정도인데(이 점 때문에 게드가 더더욱 안쓰러워진다), 이에 비하면 해리포터는 오타쿠 흉터에 가까우니(...), 여기까지면 모르는데 나중에 모든 갈등이 끝나고 나서 게드의 흉터가 사라진다. 아픔도 사라진다. 해리포터가 정말 많이 생각났다.
4. 여동생 주는 친구: 앞서 나온 저 순박한 시골 친구의 여동생이랑 게드랑 만나고 나서 결국 연애 플래그를 꽂는데...... 어스시의 마법사가 생각보다 짧은 분량이라서 그렇지, 해리포터처럼 7권짜리로 나왔다면 분명...... 이쯤 해두겠다.
대충 이정도다. 해리포터를 재밌게 읽었던 사람으로서 그렇게 까고 싶진 않지만, 그냥 뭐랄까, 롤링이 잘 써먹고 잘 활용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건 감상과는 별 관계없는 내용이기도 하니...... 다시 본론으로 넘어오자. 어스시의 마법사가 가진 주제의식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나는데, 사실 나로선 좀 더 극적이고 감동적인 연출을 기대했다. 하지만 스포일러를 피해야 돼서 차마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썩 나쁘지 않았다. 모험에 비해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서사가 조금 부족했지 않았나 싶기도 했고.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결말이 주는 감동과 여운은 생각보다 짙은 편이다. 결말을 질질 끌지 않고 빠르게, 간결하게 끝내기 때문이다. 시리즈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완결성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한다. 여운이 다음권에 대한 찝찝함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독자적인 세계를 보고 싶다면, 그리고 좀 현실적인(...) 마법사를 보고 싶다면 어스시의 마법사를 보면 좋다. 게드의 정말 눈물나는 개고생을 보면, 게드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전개 내내 계속 어딘가 예측을 빗나가게 한다는 점에서도 좋았다. 클리셰라곤 여동생 썸씽 클리셰밖에 못 봤다(...) 20세기의 참신함을 맛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이후에 기회가 된다면 시리즈를 더 읽을 생각이다. 다만 이걸 빌려 읽어가지고 다음권을 사서 읽는 건 좀 더 고민해야겠다.
이거 ㄹㅇ 꿀잼임 ㅋㅋ 꼭 끝까지 읽으셈
첫권을 빌려읽어서 언젠가 읽겠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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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ㅅㄱㅅ
6권 전부 씹띵작인데 난 아투안의무덤~테하누가 정말 좋더라. 1권의 세계관이 바깥이란 가치관을 통해 계속 확장되는 느낌 - dc App
진명 개념이 여기가 처음이구나. 진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