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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의 주장은 아무 근거도 없으며 저 두 학자에 대한 오독의 여지가 많은 편이다.
1. 서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 경제가 대침체(Great Recession)국면에 들어서고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대봉쇄(Great Lockdown)라고 불리는 경제 위기가 다시 발생하면서 복지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최근 10년 사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장경제의 파멸성을 예측했던 칼 폴라니가 주목받게 됐는데, 이 글에서는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 속에서 나타나는 복지와 자유에 대한 견해와, 시장경제를 신뢰했던 하이에크의 저서 『노예의 길』 속에서 나타나는 복지와 자유에 대한 견해를 서로 비교해보고자 한다. 그리고나서 이 둘의 견해를 바탕으로 근자에 많은 논의가 이루어 지고 있는 기본소득제가 얼마나 타당한지 논해보고자 한다.
2. 복지정책에 대한 칼 폴라니의 견해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19세기 자유주의의 열렬한 비판자였다. 그는 자유주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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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라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야말로 자유주의 철학의 실패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자생적인 진보에 대한 감상적인 신앙에 고무된 나머지 변화에 대한 상식적인 사고는 버림받게 되고, 경제 개발만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든 무엇이건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신비적 태도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거대한 전환, 2009, p. 164.)
그에게 있어 시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유주의란 하나의 신비적 태도에 지나지 않았다. 자유주의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시장확대는 시장이 사회를 집어삼키는 것에 성공했으나, 시장의 자기조절기능이 무너지자 사회는 파멸에 이르렀다. 그 절정이 금본위제의 붕괴였으며 이에 따라 공산주의, 전체주의가 서구 사회에 들어선 것을 폴라니는 자유의 쇠퇴가 아니라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으로 보았다.
이러한 자기보호운동은 분명 자유주의의 붕괴에서 사회를 다시 재건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고 그 억압의 수준은 특권적인 집단이 정하는 부당함을 지녔다. 폴라니는 오언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에 해악을 줄이는 데에는 일정한 필연적 한계가 정해져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자유를 제거하는 데에도 한계선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인간은 그가 새로이 획득한 권능의 도움을 빌려 먼저 사회를 최대한 변형시켜야 할 것이며, 인간의 자유는 그 이후에야 비로소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게 오언의 직감이었다.” (위의 책, pp. 367-368)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반대하고 협동조합 운동을 역사상 처음 시작했던 사회주의자인 오언이 말한 사회의 변형은 아마도 공산주의나 전체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민주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사회를 변형시키고 거기에 따라 자유의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는 게 오언의 주장이며 폴라니의 주장이기도 하다고 추측된다. 그러나 폴라니는 그 역할을 국가가 어쩔 수 없이 맡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가 어느 선까지 경제에 개입해 들어가는가는 그 나라 정치 영역이 어떻게 구성되는가, 그리고 경제적 난관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결정되었다. ∙∙∙ 보통 선거권이 확립되어 가령 100만 명이 지배자의 자리에 올라 국가를 자신들의 기관으로 삼아버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산업이 파탄 나서 공장 기계는 가동을 멈추어 고철덩어리가 되며, 노동자들도 힘쓸 곳을 잃게 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지게 된다.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여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질 것이다.” (위의 책, p. 517)
위 인용문에서 폴라니는 민주주의 국가는 그 특성 상 인민의 압박으로 불황기 정부의 개입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인민에게는 경제적 힘이 없다.
“경제 영역을 헌법의 관할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떼어냈고, 사적 소유를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보호 아래에 두어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법적 기초를 갖춘 시장사회를 창조했다. 이리하여 미국에서는 보통 선거권이 주어졌지만, 미국의 투표자들은 재산 소유자들에 대해서 아무런 권력도 가질 수 없었다.” (거대한 전환, 2009, p. 546)
따라서 폴라니는 국가의 개입과 더불어 민주주의가 경제에도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한 복합사회의 모습이다.
“현대 산업사회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와 파시즘 둘 중 하나이다. 현대 산업사회는 인간의 평등과 책임이라는 이상에 바탕을 두거나, 아니면 그것들의 부정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삶의 조건하에서는 민주주의 원리들이 경제체제 자체를 포함하여 전체 사회까지 확대되지 않는다면 지탱할 수 없다.” (시장자유주의를 넘어서, 2016, p. 148)
그리고 폴라니는 민주적 통제가 오히려 자유를 더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유를 유지하고자 이런저런 인위적인 수단들을 도입하면 그로 인해 아무래도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유는 오염되고 결국 파괴당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서 자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후자의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낼 열쇠를 찾아내야만 한다. 사회 제도란 결국 인간이 부여하는 의미와 삶의 목적을 구현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토록 갈망하는 자유를 결코 얻어낼 수 없는 것이다.” (거대한 전환, p. 594)
위 인용문에서 폴라니가 말한 ‘열쇠’란 앞의 인용문에서 그가 말한 ‘민주주의 원리들의 경제체제 자체를 포함하여 전체 사회까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결국 폴라니는 민주적 절차가 사회 전반에 도입된 복지국가가 시장이 집어삼킨 사회를 사람들로부터 구원할 유일한 체제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2. 복지정책에 대한 하이에크의 견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19세기 자유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오스트리아 출신임에도 영국에 와서 1940년대 당시 영국인들이 19세기 자유주의를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는 모습을 크게 비판할 정도였다. 그는 역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유럽 현대사의 전 기간에 걸쳐 사회발전의 일반적 방향은 각 개인들이 일상적 활동을 할 때 관습이나 정해진 방식을 따르게 한 속박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개인들의 노력이 자생적이고 통제되지 않더라도 ‘경제활동의 복잡한 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의식적 자각은 이런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가 되어서야 나타날 수 있었다. 정치적 자유가 주어지자 의도치 않았다고 예상치 못했던 부산물인 경제 활동의 자유로운 성장을 가져왔고, 그 결과 경제적 자유를 지지하는 일관된 주장이 보다 정교해졌다.” (노예의 길, 2018, p. 51)
하이에크의 역사관은 전형적인 19세기 자유주의를 따르고 있는 것을 위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가치관에서 20세기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던 파시즘과 공산주의은 분명 자유의 훼손일 것이다. 특히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전체에 대해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자유란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자유가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물질적 부의 엄청난 증대라는 무책임한 약속과 함께 제시될 때가 많지만, 그와 같은 새로운 경제적 자유가 예상되는 것은 그와 같은 자연의 인색함(niggardliness of nature)에 대한 절대적 정복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약속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현존하는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선택범위 상의 커다란 격차가 사라질 것이라는 데 있다. 새로운 자유에 대한 요구는 그래서 부의 동등한 분배에 대한 오래된 요구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위의 책, p. 64)
사회주의에 대한 하이에크의 비판은 크게 보면 다음과 같다. 형식적 법이 지배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계획보다 우월하고 계획은 사람들의 자유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형식적 법이 고속도로 규정집처럼 도로규칙을 정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어떤 유형의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알려주”(위의 책, p. 124)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법의 지배는 다음과 같다고 하이에크는 말한다.
“법의 지배 아래에서는, 정부는 가용자원들이 사용될 수 있는 조건들을 결정하는 규칙들을 확정하는 것에 자신의 일을 한정하고, 이 자원들이 어떤 목적들에 사용되어야 할지에 대한 결정은 개인들에게 남겨 둔다 ∙∙∙ (이러한) 규칙들은 특정한 사람들의 소망과 필요들의 충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형식적 규칙들(formal rules)의 형태로 미리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규칙들은 사람들의 다양한 개인적 목적들을 추구할 때 하나의 수단이 되게 하는 데 그 의도가 있다.” (위의 책, pp. 122-123)
하이에크는 경쟁이 계획보다 우월한 이유가 ‘의식적인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적 통제가 저열한 이유는 “우리에게 선택가능한 대안들은 무엇인지와 같은 문제들은 모든 사실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 풀 수 있”지만(위의책, p. 111)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합의에 의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것이 실질적으로 “비록 소수이지만 동의할 수 있었던 최대의 집단”(위의 책, p. 116) 즉, 소수 엘리트층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인 까닭이다. 따라서 국가는 경쟁을 더 유익하게 작동하도록 진입의 장벽을 낮추고 화폐, 시장, 정보망 등과 같은 제조들을 적절하게 조직화하는 법체계를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계획사회와 대비되는 경쟁사회의 자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경쟁사회의 우위를 인정한다.
“경쟁사회에서 빈곤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기회들은 부유한 사람들에게 개방된 기회들보다 훨씬 더 제약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이 이와는 다른 유형의 사회에서 더 큰 물질적 안락함을 누리는 사람보다 오히려 훨씬 더 자유롭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 경쟁시스템은 아무도 누군가가 큰 부를 이루려는 시도를 금지할 수 없는 유일한 시스템이다 ∙∙∙ 자신의 직업이나 살 곳을 바꾸는 문제, 어떤 견해를 고백하는 문제, 자신의 여가를 특정한 방식으로 쓰는 문제, 비록 때로는 자신의 성향을 따르기 위해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라도 혹은 많은 이들에게 너무나 높은 대가라고 비칠지라도 현재 우리가 이런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할 때 절대적 장애물은 없으며, 상관이 그를 배정된 과업과 환경에 묶이도록 폭력(brute force)으로 강제하는 그런 신체적 안전과 자유에 대한 위험은 없다.” (위의 책, pp. 160-161)
한편 이렇게 경쟁을 강조하는 하이에크는 국가에 의한 보장이 필요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제한된 보장인데 이는 육체적 고난으로 생활이 힘든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다. 둘째는 절대적 보장인데 이는 받을 자격이 있는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는 저 두가지 중에서 첫 번째 것에 대해서만 시장을 보완하는 방식의 것이라며 옹호한다. 첫 번째 것에 대해 하이에크는 심지어 경쟁을 다소 완화시키더라도 불확실성에 의한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의심할 나위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것에 대해서는 일시적 소득감소로 인한 고통이 대중적 동정을 살 수는 있지만 이는 다른 사람들의 희생 아래 주어지는 특권이 된다. 만약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모든 직업선택의 자유를 철폐해야만 가능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하이에크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격언 “사소한 일시적 안전을 얻으려고 본질적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자유와 안전 그 어느 것도 누릴 자격이 없다”를 인용하면서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 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3. 기본소득제의 타당성
영국 런던대학 SOAS 교수이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공동창립자인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에 의하면 기본소득이란 “개인에게 무조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적당한 금액의 돈”으로 정의될 수 있다(기본소득, 2018, p. 19).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기본적인 경제 보장을 모든 사람이 소득이나 지출, 어떠한 조건적 행위 없이 개별적으로 규칙적인 간격 아래에서 특정한 합의 없이는 철회되지 않게 보장받는 것이다.
스탠딩에 의하면 기본소득은 자유지상주의적 관점과 공화주의적 관점에 따라 갈라진다. 먼저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정부가 사회정책에서 거의 관여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들은 기존의 복지제도가 개인의 자유를 매우 침해한다고 보며 이를 상당 부분 폐지하고 기본소득으로 대체한다면 결과적으로 막대한 복지비용이 절약되고 조세도 삭감될 것으로 예측한다. 반면 공화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다른 요인들로부터 자유가 침해받지 않아야 진정한 자유가 실현되며 이는 국가의 보장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하위에 있는 사람들이 경멸적인 시선을 받거나, 직업을 구하고자 하면 복지혜택이 사라지는 등의 침해를 받는 것을 거부하고 모든 사람이 중립적인 자유를 보장받는 데 기본소득이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기본소득은 충분조건일 뿐 필요조건은 아니며 다른 복지제도도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인류 역사의 진보가 자유의 확대였고 자유의 증진이 인간을 이롭게 한다고 주장한 하이에크의 의견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폴라니가 말한 바처럼 그 한계는 분명 존재하며 그 한계선을 정하는 것은 우리가 택하는 제도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제는 기존 복지국가 내에서 주어진 자유보다 더 큰 자유를 사람들에게 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기본소득제는 타당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기본소득제가 이전 복지국가 보다 나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관료제적 통제에서 사람들을 조금 더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기존 복지제도는 관료들의 계산에 따라 선별적으로 지급되는 형식이다. 그러나 하이에크가 말한 것처럼 이러한 ‘계획’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그의 주장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특혜로 느껴지게 만든다. 기본소득제는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일정금액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관료의 개입이 이전보다 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관료에 집중된 권력이 약화됨에 따라 시민들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효과를 발휘할뿐더러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있거나 직업과 기초소득 둘 중 하나에서 갈등해야 하는 저소득층의 선택의 자유도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로 기존 복지국가는 사람들이 노동을 해야만 한다고 전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기본소득은 노동 선택의 자유를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연금제도의 경우 청년기부터 중년기까지 사실 상 노동을 강제하고 있으며 만약 그 시기의 소득이 낮을 경우 노년기의 생활보장이 힘들게 된다. 실제로 지금 현실을 보면 양질의 일자리는 감소하고 인간의 노동이 빠르게 기계로 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일자리는 저임금 미숙련직으로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 연금제도는 당장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저임금 미숙련직으로 사람들을 몰고 가는 식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방해하며, 저임금 노동자가 가진 당장의 가처분소득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연금에 대한 적은 투자로 노년기의 생활도 위협한다. 따라서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본소득은 평생에 걸쳐 일정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직업 선택의 자유를 넓혀주고 기존 연금 제도의 난점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제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확산시킬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형식적 민주국가를 이루었으나 시민들 대다수는 노동에 얽매여 어쩔 수 없이 정치적 무관심을 유지하거나 지역 현안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기본소득은 하이에크가 경고한 것처럼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한 계층을 양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시민들이 경제적인 안정을 누릴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생기는 안정은 곧 지금까지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던 현안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폴라니가 말했던 “민주주의 원리들이 경제체제 자체를 포함하여 전체 사회까지 확대”되는 상황일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폴라니와 하이에크는 서로 대비된다. 이 글의 주제인 자유에 있어서도 폴라니는 민주적 통제로 실질적 자유를 추구하는 반면 하이에크는 형식적 법을 통한 고전적 자유를 추구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는 이 둘 모두를 어느 정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제는 기존 복지국가와 달리 하이에크가 말한 형식적 법의 특성을 일정 부분 지니고 있어 국가의 개입이 줄어들게 만들고, 시민들의 어느 정도 소득을 보장받으면서 형식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자유를 넘어 참여 민주주의와 실질적 자유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토니 피츠패트릭에 의하면 과도적 기본소득에서 완전 기본소득으로 이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20년 이상이라고 한다(복지국가와
기본소득, 2014, p. 96).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한국 사회도 기본소득제에 대비하여 발빠른 준비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앞에서 기본소득제를 좋다고 말해놨지만 실은 그것이 국가에 의존하는 시민들을 만들지 않을까 우려한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자들의 공통된 주장인 '개인의 독립적인 재산=개인의 정치적 권리'라는 - dc App
도식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기본소득제를 넘어 기본자산제애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잘 모르지만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두고봐야 할 것이다. - dc App
오 기본자산제 괜찮은 거 같네요 상속도 4억원 까지로만 하게 제한하고 좋넹
기본소득제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