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말미 80여 페이지를 남기고 동일 작가의 다른 소설, 《남아있는 나날》의 판박이라고 평했는데 안 그래도 책을 다 읽고 옮긴이의 말에 이런 내용이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 역시 인터뷰에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남아있는 나날, 그리고 자신의 데뷔작인 창백한 언덕 풍경을 가리켜 “한 개인이 불편한 기억과 어떻게 타협하는지”를 그려내고자 “같은 책을 세 번 썼다”고 말했다는 것 아닌가. 저자가 이리 말해주니 다행히 내가 저자의 두 소설을 나름 잘 읽어냈구나 안심이 되었다.
소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으로 부인과 아들을 잃은 화가 마스지 오노가 주인공이다. 전반적인 이야기는 그의 둘째 딸의 혼사를 중심으로 흘러가나 분량과 주제는 혼사와 관련해 시시각각 주인공이 떠올리는 과거 회상에 담겨 있다. 전쟁의 시기에 일제의 침략 및 천황 이데올로기에 화가로서 충실히 복무한 주인공은 큰딸이 동생이 한 번 파혼이 된 까닭을 아버지의 과거 경력 때문이 아닐까 암시하자 그럴 리 없다면서도 딸의 혼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과거의 인연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작가는 그 만남들에서 독자가 주인공의 과거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서술한다. 심지어 나중에 그 뒷얘기들이 다 나와도 정확히 주인공이 어떠한 일들을 했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일부러 기피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 작가는 독자가 나름대로 과거의 지나간 잘못에 대해 사람은 어디까지 반성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생각해보라는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상세한 내용을 쓰지 않은 것 같다. 너무 상세한 내용이 써져 있었다면 독자들은 ‘아 이 정도면 이럴 만하지’ 혹은 ‘엥 겨우 이 정도로 이런다고?’ 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작가의 이 같은 서술방식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소설과 《남아있는 나날》 두 소설에서 “직업적인 면에서 소모적인 삶을 산 한 인간을 탐구”했다고 말한다. 《남아있는 나날》이 이제는 전통적인 직업적 특성이 점점 사라져가는 세태에 한탄하는 노신사를 통해 그러한 목적을 원활히 성공시켰다면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예술을 통해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전파해 사회의 발전을 꾀했지만 전쟁의 패배로 인해 이제는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는 노화가를 통해 목적을 관철시킨다.
이와 관련해 후자의 소설에서 재미있다고 느낀 점은 화가로서 주인공이 지닌 모순적 면모다. 주인공은 그의 옛 제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의 그림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논쟁을 했었던 과거 일화를 꺼내자 그것을 없던 일, 기억나지 않는 일로 치부한다. 그의 제자가 그 얘기를 꺼낸 이유는 자신이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취직하는 데 있어서 학교 측에 해당 일화에 대한 보증을 서주길 바라서인데 제자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자의 부탁을 냉랭하게 거절한다. 그러면서 제자와 함께 유이한 단골 술집이었던, 이제는 둘의 다툼으로 그마저도 한 명밖에 남지 않은 낡은 주점의 주인에게 제자를 두고 온갖 험담을 내쏟는다.
그런데 책의 후반부에 이르면 주인공 역시 젊을 적 스승의 화풍에 대놓고 반기를 들다 동기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스승에게 냉랭히 내쫓겼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세월이 흘러 그는 전쟁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그림으로 영예로운 상을 수상하고 옛 스승의 집에 찾아간다. 퇴폐미를 강조한 순수 예술적 화풍을 강조한 스승은 비애국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지금은 생계유지를 위해 잡지에 삽화를 그린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는 허름한 스승의 집 앞에까지 도착해놓고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멀찍이서 그 집을 1시간여 동안 바라보며 수상 축하연에서 만끽하지 못했던 승리감에 도취한다. 스승인 자신을 향한 제자의 다른 견해는 언짢아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스승에게 반기를 들어 성공해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이 모순에 대해 그는 아무런 의식이 없다. 오직 독자만이 그의 모순을 알아차릴 뿐이다.
《남아있는 나날》의 주인공이 책 최후반부에 이르러 약간의 성찰과 변화나마 일어났다면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의 주인공은 적어도 책 내에서는 변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우리는 적어도 믿는 바를 위해 행동했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 단골 술집이 철거된 자리에 새로 세워진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우리나라가 과거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간에 이제 상황을 좀 더 낫게 만들어 나갈 또 하나의 기회를 얻은 것 같다. 저 젊은이들이 잘해내기만을 바랄 밖에.”라 평한다.
이와 같은 두 주인공의 차이는 책의 제목에서도 보여진다. 《남아있는 나날》이 결국 이미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지나간 인생이라도 남아있는 나날이 있다는 희망을 얘기한다면,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그저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부유하는 세상에서 과거의 영광만을 생각하고 앞으로의 일들은 앞으로의 사람들에게 맡기는 일종의 쇠락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다. 아마 이 소설이 《남아있는 나날》보다 3년 전에 나왔다하니 결국 이시구로가 데뷔작으로부터의 3부작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는 《남아있는 나날》 쪽이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문장의 아름다운 간결함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독자로 하여금 다음 장을 넘어가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흥미진진함, 그리고 전후 일본이라는 혼란의 사회를 통해 이토록 매력적인 주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저자의 능력에 《남아있는 나날》에 이어 다시 한 번 감탄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는 저자의 데뷔작을 읽어봐야 하겠
ㅊㅊ . 이시구로 문장은 참 논리적이더라
논리적이고 단단함. 허투루 쓰는 문장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