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몰락한 왕의 역사, 미셸 파스투로, 오롯, 2014.
대학 신입생 시절 한국고대사 강의를 담당하신 선생님은 은퇴를 얼마 안 남은 노교수였다. 그분은 사학과를 나와 민속학을 전공하신 분이었는데 덕분에 우리는 1학기 절반 내내 단군신화만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사실 단군신화의 내용 자체는 얇은 그림동화책 한 권 정도밖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뭐 그렇게 할 말씀이 많으셨는지 이 얘기를 해주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없다며 넘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그 수업을 정말로 재밌게 들었는데 고작 단군신화에서 이리도 흥미진진한 얘기들이 나올 수 있구나 경외롭기까지 했다. 예를 들어 왜 하필 사람이 되기 위해서 먹어야하는 마늘의 개수가 스무 개인가에도 다 이유가 있다며 손가락 발가락 수를 합쳐 스무 개인 동물은 인간을 제외하고 얼마없기 때문이라는 설명 같은 건 와! 하고 놀랄 정도였다. 선생님은 거기서 더 나아가 곰은 인간을 제외하고 손가락 발가락 모두 다섯 개인 예외적인 동물이라며 그렇기에 호랑이가 아닌 곰, 즉 웅녀가 인간으로 선택된 것이라 설명했다. 이외에도 선생님은 유라시아 북방민족의 곰 신앙을 설명하며 에벤키 족(확실한 기억은 아니다)의 경우 할아버지와 곰을 지칭하는 언어가 같다고 얘기했다. 그런 기억이 있어서인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단번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이라고 해서 곰 신앙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서양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의 인류가 살았었던 동굴들에서 학자들은 곰 숭배 현상을 매우 명확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곰과 인류에 대한 가장 오래된 흔적은 지금으로부터 약 8만 년 전 프랑스 남서부의 르구르두 동굴이다. 그곳에는 인공적으로 판 구덩이 안에서 자연석으로 된 벽 하나만 사이에 두고 거대한 석판 아해 네안데르탈인과 갈색곰의 무덤이 나란히 존재하여 있었다. 3만 년 전의 쇼베 동굴의 경우 원형으로 된 방 중앙에 커다란 곰 두개골만 제단처럼 보이는 평평한 바위 위에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주변 바닥에는 12개의 다른 곰 두개골이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었는데 이는 명백히 연출된 무대였다. 몽테스팡 동굴에서는 2만~1만 5천년 전의 곰 조각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르구르두 동굴과 몽테스팡 동굴 사이에는 적어도 6만 년의 시간차가 존재하지만 두 동굴에서 살았던 이들 모두 곰을 숭배했다는 사실만은 똑같았다.
그리스 신화에도 곰은 종종 등장한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곰의 여신으로 때로는 그 자신이 곰으로 변신하기도 하였다. 아르테미스란 이름도 곰을 지칭하는 단어들이 대부분 뿌리를 두고 있는 (art-, arct-, ars-, ors-, urs- 등의) 인도유럽어 어근에서 비롯한 것이다. 별자리 중 큰곰자리, 작은곰자리의 연원이 된 아르카디아(Arcadia)의 왕 아르카스(Arcas) 역시 이러한 어원과 관련이 있다. 델포이 신탁에 의해 암곰과 관계를 맺은 케팔로스의 아들 아르키시오스(Arcisios)는 그 유명한 오디세우스의 조상이다. 켈트 신화에도 이러한 곰에 대한 인식이 전해졌다. 독일 남부와 스위스의 켈트족에게 숭배되었던, 아르테미스의 복제품인 아르티오 여신의 가장 중요한 상징은 곰이었다. 1832년에 발견된 봉헌상에서 그는 과일을 들고 곰과 마주보고 앉아 있다.
이와 같이 고대 유럽에서 곰은 숭배받는 동물로 ‘동물의 왕’으로서 군림하였다. 게르만과 슬라브, 켈트의 여러 위대한 전사들의 이름에는 곰을 상징하는 언어가 어김없이 들어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우리가 잘 아는 아서 왕으로 기사문학에서는 그와 곰을 연관시키는 내용은 사라졌으나 그 이름만은 남아 있다. 곰은 아일랜드어로 ‘art’, 갈리아어로 ‘artos’, 웨일스어에서는 ‘arth’, 브루타뉴어에서는 ‘arzh’이다. 아서라는 이름은 곰과 뗄 수 없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와 곰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은 1220년 무렵에 프랑스어로 쓰여진 《아서왕의 죽음》인데 여기서 아서 왕은 죽기 직전에 충실한 집사 루칸과 마지막 인사로 포옹을 하다가 그만 “가슴으로 너무 세게 안는 바람에 그를 질식시켰다. 그는 심장이 으스러져 죽었다.” 이는 죽기 직전의 그라고 해도 곰처럼 사람 정도는 끌어안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곰-왕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아서 왕이 죽는 날은 모든 문헌에서 11월 초로 적혀있는데 거의 모든 유럽의 이교 달력에서 이 시기는 곰의 겨울잠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곰 축제들이 열리는 때였다. 몇몇 전통들에 따르면 아서 왕은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뿐이었고 이복누이 모르간에 의해 아발론 섬에서 휴식을 취한다. 마치 곰이 가을 중순 이후 동면에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곰을 향한 숭배와 인식때문에 교회는 곰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다. 교회는 일단 곰 자체를 없앴다. 주로 게르만 국가에서 몰이사냥과 대량학살이 발생했다. 그와 동시에 곰을 가축화한 동물로 묘사했다. 7~8세기부터는 성인전이 그런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다. 성인들이 곰을 길들이고 복종하였다는 여러 얘기들이 속출했다. 성직자와 수도사들은 곰을 길들여진 존재이자 악마로 만든 뒤 모욕하고 조롱했다. 교회는 대체로 동물을 구경거리로 삼는 것에 반대했으나 곰은 예외였다. 곰은 사로잡혀 재갈이 물리고 쇠사슬이 채워진 채 음유시인과 곡예사들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동물의 왕에서 내려와 서커스의 왕이 되어갔다.
한편 곰의 빈 왕위는 사자가 차지해갔다. 교회가 갑자기 곰을 사자로 바꾸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카롤루스 왕조때부터 시작된 장기적인 책략이었다. 성서에 나타나는 사자는 좋은 사자와 나쁜 사자로 나뉘어졌는데 교회는 점차적으로 후자를 아예 레오파르두스라는 별도의 종으로 분리해버렸다. 그렇게 양면적 성격을 지녔던 사자는 악하고 잔인함은 레오파르두스에게 떠넘기고 정의롭고 관대함을 지닌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사자와 곰의 위치 변경은 12세기 이후 등장한 문장을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사자는 전체 문장 가운데 약 15%를 차지했다. 문장의 동물들 가운데 사자 다음이라 할 수 있는 독수리도 고작 3%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사자 없이는 그 누구도 문장을 가질 수 없다”는 격언은 13세기 문학에 등장하였다. 반면 곰은 독일과 덴마크, 스웨덴의 12~13세기 문장들을 제외한다면 등장빈도가 0.5%에 불과했다. 즉 게르만과 스칸디나비아를 제외한 전 유럽의 문장에서는 사자가 동물의 왕 노릇을 했다. 문장뿐 아니라 왕들이 소유한 동물원을 통해서도 곰의 위상 하락을 짐작할 수 있다. 12세기까지만 해도 모든 왕실과 군주의 동물원은 한 마리나 그 이상의 곰들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서유럽 사회에서 곰은 왕이 다른 왕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13세기 중반 무렵에는 여전히 희귀함으로 각광을 받은 북극곰을 제외한다면, 곰을 갖는 것은 완전히 진부한 일이 되었으며 왕들이 외면한 갈색곰은 도시나 소영주의 동물원 그도 아니면 서커스에 넘겨졌다. 서사문헌과 일부 회계문서를 통해 우리는 13세기 이후 동물원에서 곰의 자리를 사자가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중세 이후 곰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곰은 성직자들이 편집한 중세의 동물우화인 《여우이야기》에서 왕인 사자 밑에서 봉신 역할을 맡거나 사절단, 의회의 일원, 왕실 전투부대 책임자 등으로 나타났다. 곰의 직위와 역할은 다양했지만 판본을 거듭할수록 성격은 정형화되어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우며 다른 동물들에게 창피를 당하는 동물로 전락하였다. 일부 이야기에서는 모욕에 신체 절단, 심지어 거세도 당한다. 하지만 이는 약과인데 곰은 《여우이야기》의 모든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죽임을 당한 동물이다. 이 죽음은 전투에서의 용맹한 죽음도, 병으로 인한 자연적인 죽음도 아닌 농부와 여우에게 속아 넘어가 허무하게 죽어버린 죽음으로 폐위된 왕의 비참한 최후를 말해준다.
폐위된 왕은 심지어 죄악의 대상으로 낙인찍힌다. 교회는 자만, 탐욕, 음욕, 분노, 탐식, 시기, 게으름 이라는 7대 죄악을 창조해냈는데 이중 곰은 무려 음욕, 분노, 탐식, 시기, 게으름 총 5가지에 속한 동물로 판단되었다. 곰은 3가지에 속한 돼지보다 압도적으로 죄악스러운 동물의 왕이 되었다. 여기서 재밌는 건 곰과 돼지라는, 전통적으로 인간과 비슷하다고 여겨진 두 동물이 가장 폄하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동물과 인간의 친족관계를 참을 수 없으므로 극단적인 경멸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곰은 교회의 수백 년에 걸친 투쟁 끝에 동물의 왕에서 죄악스러운 동물의 왕으로 탈바꿈되었다. 교회는 목적을 성공시키기 위해 실제로 곰을 학살하고, 성인과 교부들의 얘기들을 통해 곰을 굴복시키고, 문학에서 곰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으며 결국 죄악의 동물로 낙인찍었다. 거꾸로 생각하자면 그만큼 유럽에서 기존의 곰 숭배가 강했다는 뜻이다. 책을 통해 곰이라는 동물의 위치가 어떤 과정을 통해 변경되었는지 매우 재미있게 읽어나갔다. 유럽에서 이렇게 교회에 의해 곰의 이미지가 바뀌었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이장웅의 책에 따르면 백제시대까지만 해도 고마나루나 곰 석상 등 곰 숭배 현상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그러한 숭배 현상은 언제 어떻게 없어졌을까? 불교의 영향이었을까 아니 유교의 영향이었을까 그도 아님 고구려 등 북방계가 몰락한 뒤 차츰 사라진 것일까? 찾아보니 도서관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나온 동북아 곰 신화와 관련한 책이 있던데 다음에는 그 책을 읽어보도록 하겠다.
응원합니다
정성추
흥미롭다! 곰돌이추
하루 한 권 읽는 가짜 공시생아조씨 - dc App
뭐야 이런 책도 있었군. 지르거나 빌려보마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