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5fa11d02831f032f3b7b65aa671697d5dc3262b7a1046f432c5ae0feddd3c9b231710808bbb7e9ecddd74da714d1677ec997117e036a4641652e65a48e909a1a46e682145b42fed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맞이한 설국 속에서,

정열과 허무가 부딪히고,

이끌림에 이끌리는 순수함이여.


한줄 요약
감각적인 묘사, 압축적인 인간관계, 흰 눈 속에서 더듬거리기.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고, 첫문장으로 유명한 그 설국이다. 개인적으론 첫문장보단 그 이후에 나오는 모든 풍경 묘사들이 참으로 좋았다. 생각보다 짧지만, 가볍게 읽었다간 문맥을 놓쳐버리기 쉽다. 천천히, 그 하나하나의 단어들을 음미하듯, 상상하며, 차분하고 정적이되, 그 안엔 열정과 허무가 부딪히는, 그러한 정념 속에서 읽어야만 설국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거기까진 도달하지 못했다. 다만 그렇게 읽는다면 그렇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희망 내지는 예상을 품어볼 뿐이다. 어쨌건 나는 내 나름대로 설국을 읽었고, 그 방식은 어느 정도 유효했다.

설국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단편에서 시작한 소재를 이어나가 쓴 연작 소설이자 중편 소설이다. 그 말은 바꿔 말해 이 소설은 뚜렷한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때문에 이 소설을 읽을 때엔 어떤 서사나 갈등 따위를 기대하기 보다는, 오히려 시마무라와 고마코, 그리고 요코라는 인간과 서로의 관계, 그를 둘러싼 설국의 풍경을 진득하게 감상하는 게 이 소설의 재미요소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리뷰에 크게 적을 게 없다. 시마무라가 보여주는 허무의식과 여행자 설정, 유부남(인데도 게이샤 부르고 여자 만나고 난리 났지 참) 설정 등등은 그 자체로 주제를 품기보다는, 오히려 고마코와 맺어지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로서 작용하는 장치에 가깝다. 고마코의 과거도, 요코의 애인도 그렇고 말이다.

다만 그런 장치뿐들인 설정들이, 서로의 관계에 맞물려 돌아가면서, 그 배경을 설국으로 하는 관계의 양상은 묘사가 전부 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 그대로 묘사 하나만 믿고 가는 소설 같다. 그만큼 풍경 묘사는 물론이고, 어떤 심상에 대해 얘기하거나, 감각에 대해 서술할 때, 가와바타의 묘사는 감탄을 자아낸다.(다만 그 특유의 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로 인해 격정적인 감동은 받지 못한다)

특히 시마무라의 허무주의는 제법 독특하게 묘사되기에, 단순히 그것만을 즐기면서 읽어도 재미는 꽤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게 어딘가 틀어지거나 잘못되거나, 그로 인해 뭔가가 발생하진 않는다. 설국에서 유일한 사건이라 할 만한 건 마지막의 화재일 뿐이다. 그 외엔 전부 지극히 평화롭게 흘러갈 뿐이다. 서사를 중시하거나, 서사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설국만큼 지루할 소설이 어디 더 있겠냐 싶다.

큰따옴표 대신 꺽쇠로 대화문을 대신하는데, 그 느낌이 마치 필름으로 인화된 장면들을 보는 듯해 더더욱 정적이고 차분한, 일문학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시키는데 일조한다. 정말이지 분위기 하난 잘 깔아준다.

정리하자면, 묘사를 보기 위해 읽는 소설, 그 이상으로 읽어내는 건 별로 내 취향도 아니고, 서사를 좋아하는 나로선 심심했던 소설이다. 압축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문맥을 놓치기도 쉬워 조심히 읽어나가야 하는 건 덤이다. 그래도 150페이지 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이니 한 번 쯤 읽고 노문상 작품 읽어봤다고 말해볼 법하다.

p.s.읽고나서 왜 설국을 첫문장밖에 안 말하는지 알겠다. 그거밖에 말할 게 딱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