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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시즈오, 일본의 정신과 기독교 上, 하영인, 2019.

아마 먼나라 이웃나라였을 것이다. 일본 기독교도들이 전체 인구의 채 1%도 차지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처음 접한 게 말이다. 당시 놀랐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시절 잠시 교회를 다니면서 천만 성도같은 얘기를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반강제적인 교회 출석은 채 3개월도 못 가고 탈주로 마무리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왜 이웃나라인 일본과 한국에서의 기독교세가 이리도 차이가 나는지는 여전한 궁금증이었다.

이 책은 기독교 서적 전문 출판사에서 낸 책이다. 종교 자체를 그다지 호의적으로 보지 않고 그중에서도 한국 개신교는 정말 편파적으로 바라보는 내게 있어서 처음으로 읽는 기독교 서적 전문 출판사의 책은, 다행히도 하나님의 영광을 얘기하는 등의 종교적 색채를 띠지 않고 건조한 역사적 사실들을 얘기하고 있다. 역자는 이 책의 원제인 “일본 프로테스탄트 교회사”를 “일본의 정신과 기독교”로 바꾸었다고 역자 서문에서 이야기하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게 합당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역자는 이 책이 일본의 정신과 기독교적 정신간의 대립의 역사를 그린 책인 만큼 그에 걸맞는 제목으로 바꾸었다고 설명한다. 물론 이 책이 그러한 대립을 그려낸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의 서문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그보다 훨씬 더 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교회가 자기 존재를 역사 의식으로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토착화와 자기 신앙의 전통성에 대한 확신이라는 두 개의 축이 필요하다면서 철저히 그에 기반한 서술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양 축을 바탕으로 책을 읽어나가면 비록 기독교에 관심없는 사람이라도 흥미진진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런데 역자와 같이 일본의 정신과 기독교적 정신의 대립장으로 이 책을 읽어내면 어떻게 되는가? 왜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어야 할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일본의 정신이라는 세속의 압박에 굴복하는지, 왜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이룩하기 위해 역경을 무릅쓰지 않는지는 대한 비판적 시각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현재 성황리를 이루는 한국의 개신교 세력과 미미한 일본의 개신교 세력을 비교하게끔 만들며 결국에는 어떠한 민족적 우월성을 설파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물론 신자의 입장에서는 일본 교회사의 역사가 신앙적으로 매우 비판적일 수 있지만 비신자인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저 환경의 차이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책에 나오는 사례 하나를 들어보겠다. 1891년 1월 9일에 발생한 우찌무라 칸조의 “불경”사건이다. 독실한 신자 우찌무라 간조는 천황의 서명이 들어있는 “교육칙어”에 경례하길 거부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 전역에서 기독교를 향한 성토의 장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일본 기독교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분열된다. 우찌무라 개인이 입은 피해 역시 상당하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잃지 않고 《기독교도의 위로》라는 일본 기독교의 명저를 써냈다.

이런 우찌무라가 한반도의 뭇 신앙인들보다 신실함이 덜하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신앙인들이 서로 비슷한 수준의 신앙심을 지녔음에도 작금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개인적인 생각에 교세 초기에는 강력한 정부의 유무에서 비롯한 것같다. 만일 19세기 후반 이후의 조선왕조가 동시기 이후의 천황가와 비슷한 위세를 누렸다면 기독교의 교세가 현실과 같이 빨리 전파될 수 있었겠는가? 19세기 초만 해도 기독교도라면 눈에 불을 키고 잡아다 처형시킨 조선왕조다. 그런 그들이 기독교의 교세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외세로 인한 왕권의 약화와 더불어 근대화에 도움을 주는 영미 등 기독교 국가들의 눈치를 보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후에는 나라 자체가 망하지 않았는가.

반면 일본은 계속해서 천황이 권력의 정점에 있었고 신도를 국교로 지정하는 등 교회의 세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현실에서 교회가 살아남는 법은 그에 동조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권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그런데 패전을 해버렸으니 이후 교회를 향한 시선이 어떻겠는가? 한국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본에 친일한 경력이 단절될 수라도 있었지만 일본은 그렇지 못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또한 한국 교회라 해서 일본의 정신에 굴복하지 않았는가? 한국 교회는 일제 말기 ‘천조대신(일본 신화의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높은가 여호와 하나님이 높은가’라는 하는 질문에 전자가 높다고 서명해 관청에 보냈다. 신사참배 역시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 측에서 사람들에게 권유하였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목회자들을 면직, 제명시켰다. 또한 일본의 제국전쟁을 성전이라 부르며 찬양하였다. 결국 한국이나 일본이나 교회가 일본의 정신에 굴복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양국의 교세 차이를 일본의 정신에 굴복했다는 데에서 찾는 것이 옳으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양국의 교세 차이의 원인은 이 책이 다루는 메이지(1868~1912)와 타이쇼 시대(1912~1926)에서 찾으면 안 된다고 여긴다. 물론 그 이전 시기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아마 근본적인 원인은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전후 사회 이후의 흐름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 역시도 하나의 원인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것일 테다. 그렇기에 상권도 나름 재밌게 읽었다만 내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건 전후 이후를 다룬 하권에 있지 않을까 싶다. 하권은 아직 발매가 안 됐지만.. 아, 당연히 한국교회사도 읽어야 나름의 궁금증 해결이 완성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