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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걱정하고 있어." 그의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네가 야망을 잃었다고, 인생의 확고한 목표가 없다고 생각하셔. 너와 동갑인 찰리 시먼스를 좀 봐라. 그 애는 좋은 일자리도 얻었고, 곧 결혼도 한다더라.
사내아이들이 다들 자리를 잡아 가고 있어. 모두들 성공하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잖니.
너도 알겠지만, 찰리 시먼스 같은 애들은 정말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되려고 해."
크레브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사의 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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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 졸업 후 한참을 헤매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다들 자기 길 찾아 떠났다.
나도 그들처럼 내 길을 알아서 갈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되지?'
어느 순간 가슴 속에서 뭔가 부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기나긴 백수 시절이 시작되었다.
별다른 취직 준비 없이 사실상 현생을 던졌다. 공부한다고 나와선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만 실컷 읽었다.
문학 속에서 기가 꺾였거나 마음이 무너진 인물들을 만나면 반가웠다.
비록 가상인물이라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이들을 접하면 왠지 위안이 되었다.
나는 책에서 자꾸만 내 모습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걸까.
<병사의 집>(쏜살 출판사의 김욱동 번역으로 읽었다)은 잘 알려진 작품 같지는 않다. 독갤에서도 언급되는 걸 못 본 거 같다.
이걸 읽고 감상 나누는 이가 좀 더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썼다.
이 작품은 여타의 전후(戰後)문학과는 설정이 뭔가 달랐다.
주인공 '크레브스'는 참전했다가 늦게 고향에 돌아왔다.
이미 고향에선 귀환한 청년들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끝나 있었다. 심지어는 늦게 돌아온 그를 우습게 생각하는 분위기조차 감돌았다.
다소 천덕꾸러기처럼 된 크레브스는 그런 것에 딱히 연연하진 않아 보인다.
그런데 그는 어딘가 맥이 빠져있다. 그는 더이상 어떠한 '결과'를 내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다른 청년들은 슬슬 사회에 자리를 잡아 간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면도날>의 '래리'라는 캐릭터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하느님의 왕국에는 빈둥빈둥 노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어."
"난 하느님의 왕국에 살고 있지 않은걸요." 크레브스가 말했다.
감리교 대학에 다녔던 크레브스는 이제 종교를 떠난 것처럼 보인다. 그는 기도도 드릴 수 없고,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전 다만 어떤 일에 화가 나 있을 뿐이에요."
헤밍웨이 소설답게 작품에 드러난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크레브스에게 전쟁은 분명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데 나는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의 내면은 어딘가 황폐해져있다.
배경지식이 별로 없는 나는 이게 아마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잃어버린 세대'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전쟁을 겪지도 않은 내가 어째서 저 청년의 내면에 깊은 인상을 받는걸까.
어딘가 무너진 청년이라는 점에서, 나와 조금 비슷한 부분을 찾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나는, 어쩌자는 걸까.
대책없는 감상을 마친다.
쌔하네 울컥... 보닌도 그런 시절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 맘으로 간신히 간신히 살고 있다우
막상 감상 써놓고 보니 부끄럽네요 ㅎㅎ 여전히 상황이 해결되진 않지만 나름대로 낙을 찾으며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세기를 뛰어넘은 거장 헤밍웨이다운 인간에대한 통찰,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려낸 인물의 내면이 우리세대의 독지에까지 절절히 전해지는걸보면 책은 역시 세대차를 뛰어넘는 가장 확실한수단인것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그동안 헤밍웨이 장편 위주로 읽었는데 단편에도 좋은 작품이 참 많네요. 잘 묘사된 인물도 많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