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갠적으로 활동하는 오프 독서모임에서 한 달 전에 쓴 글입니다.
경남교육청이 방과후 자원봉사자 30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힌 기사를 보았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떠들썩했던 인천국제공항 논란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몇몇 기사는 이번 논란을 두고 '제2의 인국공 사태'라며 불씨를 키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옳냐 그르냐, 어떤 쪽이 더 문제냐는 차치하고, 다만 지적하고 싶은 건 사회 분열에 지대한 일조를 했던 '공정성' 시비가 봉합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겁니다.
과거의 논란을 톺다가 새로 알게 된 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제 주위에서 알게모르게 분개하는 사람들이 사실 꽤나 많았다는 점입니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원하는 걸 얻는 것은 공정하다(정의롭다)'는 이야기를 진리 정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지 모르는 제 주위 또래들의 이런 인식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크게 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유별난 사람 취급받는 세상에서 이런 대중적 인식은 '능력주의 신화'가 우리 세대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정말 만고불변의 진리이자 기회의 평등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면 이런 일련의 논란들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일어나더라도 쉽게 불식되었을 겁니다. 능력주의는 공정하게 작동되고 있는 게 맞는 걸까요?
마이클 샌델이 책으로 돌아왔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발간 이후 10년만이라고 합니다. 오바마-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사회를 뒤덮은 무자비한 능력주의의 덫을 해체하기 위해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 책 <공정하다는 착각>의 부제는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입니다.
이미 극단적으로 커진 사회적 격차에 따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다리를 제공하고 능력에 따라 그에 걸맞는 대우를 제공하겠다는 능력주의의 이 달콤한 약속이 사실은 우리의 착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겁니다. 얼핏들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능력주의에 공정을 빼면 시체와 다를 바가 없는데 공정하다는 것이 착각이라니요.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의 폭정과 유해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1. 능력주의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의 실패를 사회 시스템이 아닌 개인으로 옮기려는 태도를 지닌다. 이는 사회적 연대를 약화하며 세계화에 뒤처진 사람들의 사기를 꺾는다.
2. 학1력주의 편견을 조성하며 노동의 명예를 줄이고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의 위신을 추락시킨다.
3.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은 고도의 교육을 받고 가치중립적인 자들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은 민주주의를 타락시키고 일반 시민의 정치권력을 거세한다.
샌델 교수는 또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을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우리는 성공을 청교도들이 구원을 바라보던 방식과 비슷하게 본다. 행운이나 은총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얻은 성과라고 보는 것이다.
한 마디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성패는 오로지 개인의 노력과 책임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명제가 이 책의 핵심입니다. 능력주의와 궤를 같이 하는 책 자유시장경제의 핵심은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능력에 따라 성과를 배분한다'이지만 만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그 안전장치가 아주 쉽게 훼손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걸핏하면 터지는 입시비리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 책의 서두에 미국에서 터진 아이비리그의 대규모 입시 부정 사건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특권층 부모들이 돈을 찔러주며 자녀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킨 이야기입니다. 능력주의가 보장하는 아름다운 세계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런데 정문이 아닌 '옆문'을 통해 대학에 들어간 이 사건을 두고 거액의 기부금으로 명문대에 합격한 합법적인 방법과는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묻습니다. 이 또한 능력주의에 역행하는 걸까요. SAT 성적이 아닌 돈으로 합격했으니 능력주의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그렇다면 정정당당하게 성적으로 합격하는 '정문'은 또 어떨까요. 샌델 교수에 따르면 아이비리그 명문대 입학생 70% 이상이 부유층 자제라고 합니다. 그들은 거액의 입시 카운슬러를 고용해가며 값비싼 사교육을 받으며 다양한 봉사활동과 교외활동 실적을 쌓으며 포트폴리오를 완성합니다. 나라만 바꾸면 한국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샌델 교수는 말합니다.
능력주의적 대입이 갖는 특질은 뚜렷해보인다. 정당한 스펙으로 입학한 사람은 자신의 성취에 자부심을 가질 것이며, 이것은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 역시 문제가 있다. 그러한 입학이 헌신과 노력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정말로 오직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그들이 스스로 해내도록 도와준 부모와 교사의 노력은 뭔가? 타고난 재능과 자질은 그들이 오직 노력으로만 성공하도록 했을까? 우연히 얻은 재능을 계발하고 보상해줄 수 있는 사회에 태어난 행운은?
샌델은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의 능력은 공정하게 측정되고 있는가. 능력주의 사회 존치를 위해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러나 단 한가지 힘주어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작금의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겐 무력감과 굴욕만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결론에서 샌델은 '공동선'을 회복하고 기르자고 이야기합니다. 능력주의가 분열시킨 계층간의 간극을 사회적 연대를 통해 좁혀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대체 왜 성공한 사람들이 보다 덜 성공한 사회구성원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설령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능력주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의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그래서 대안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