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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방인>이 연상되기도, 카프카가 떠오르기도 한 소설이었다. 실제로 작가는 카프카 상 1회 수상자라고 한다.
<이방인>의 인물이 삶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못하는 자였다면,
<페널티킬...>의 인물은 그와 같은 상황을 토대로 하되, 어떻게든 삶에 의미를 부여해보려는 인물 같기도 하다.
그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반복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초기에 제시된 장면들이 후기에도 유사하게 제시되는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다.
그는 반복을 통해 무의미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또는 인물이 아닌 '서술자'가 그러고 있다.
이 소설은 인물이 이끌어나가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서술자가 이끌어나가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독자가 약간의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물의 내면을 통해 이야기가 이끌어지는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는 실망할 수도 있겠다.
소설은 인물이 의미 부여에 성공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또 그가 경찰에게 붙잡혔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결말에는 제목과 연관되는 장면, 즉 '골키퍼의 불안'에 대한 묘사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이 서술자의 관심이 인물이나 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인물 내면 변화나, 사건의 경황 따위보다는
언어에 대해 생각하며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가야 할 소설이다.
또 한국의 전위적 작가들을 따라 읽어온 독자들은 그들이 알게 모르게 피터 한트케의 영향권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설도 부조리극처럼 쓰는가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