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투가 쓰이는 상황은 두 가지같아.


1. 외국작품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번역되는 경우.


2. 한국인이 번역어투로 작품을 쓸 때.


첫 번째 경우에서 가장 중요한건 바로 도착어라고 생각한다.

번역자가 원문텍스트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있다는 전제하에

독자가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어투로 번역하는게 맞다고 본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어투는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잘 맞는 어투, 즉 자연스러운 어투라고 할 수 있고.

번역을 하는 이유가 뭐겠어? 한국인이 외국서적을 읽을 수 있도록 돕는거지.

한국인이 읽기 어려운 번역서라는건 존재 자체가 어불성설같아.

물론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경우라면 몰라도.

그래서 번역론에서는 해당 외국어를 전공한 사람보단 해당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 더 좋은 번역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쓴다는건 비문을 줄이겠다는 것과도 같아.

원문의 맛을 살리기 위해 비문을 쓰겠다는건 한국인이 외국인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존재하지도 않는 외국인 감성을 끌어올린답시고 어색하고 딱딱한 번역어투를 그대로 싣는건 그냥 번역자가 원문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지.


두 번째 경우는 오히려 온전히 작가에게 달려있다고 본다.

원문에 비문이 있다고 그걸 고치는건 번역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작품을 훼손하는거지.

다만 "여기에 비문이 있어요" "이건 시적 허용으로 하기엔 너무 어색한데요" 하면서 지적하거나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작가가 고친다면 고치는거고, 안고친다면 그건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쓴거고.


해당 작품을 욕하든 말든 역시 독자 마음이다.

비문을 줄여야하는건 마찬가지지만 그건 오로지 작가의 역량이고 작가의 책임이니 왈가왈부 하지 않겠다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