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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갤에서 김사과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우연히도 나는 김사과의 <0, 영, zero, 零>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나름 이 작가가 내 맘에 드는 면이 있어 간만에 감상글을 써본다.
보통 사람들이 소설에 기대하는 건, 그리고 작가가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 싶은 건, 공감을 통한 세상/인간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주인공이 악인일지라도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그 악인이 왜, 어떻게 악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원인과 과정이 나오거나,
아니면, 주인공이 행하는 악행이 불가피하거나 이런 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완전히 100%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변호하거나,
또는 비록 악인일지라도 그/그녀 역시 괴물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악행 뒤에 가려진 주인공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소설을 통해 단순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별이 불가능함을,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연과 역사가 있음을, 그리고 그를 통해 세계와 인간에 대한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이해와 공감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재미를 위해,
그러니까 무슨 커다란 경제적 이익이나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린 것도 아닌 순전한 유흥과 오락을 위해
각종 가식과 얕은 술수로 남의 인생을 조종하고 농락하는 인텔리 싱글녀다.
작가 역시 이런 주인공에 대해 어떠한 변호나 변명도 하지 않는다.
다만 계속해서 이죽거리고 빈정거리며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혹은 독자들에게) 하는 변명, 자기기만, 자기합리화를 보여 줄 뿐이다.
비록 주인공은 소설 말미에 자신의 악행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하여 하룻밤 악몽에 시달리긴 하지만,
주인공 스스로 그 뿐이다. 그래봤자 나에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할 것이고, 난 앞으로도 계속 같은 신념을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접할 수 없었던 위악적인 소설의 좋은 모범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고선 주인공에 공감하거나 감화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함께 주인공의 막돼먹는 행동과 앞뒤도 맞지 않는 뻔뻔한 변명에 대해
어이없어 하거나, 분통을 터트리거나, 진저리를 치거나 또는 혀를 차면서 읽으면 되는 것이고,
그 뒤 잠깐이나마 “ㅅㅂ 이거 딱 누구랑 똑같네”라면서 잠깐의 위안을 받거나,
혹은 비록 그러긴 힘들겠지만 “ㅅㅂ 난 이렇게 살지는 말아야지”라고 자신의 행실에 대한 작은 환기를 받으면 충분한 소설이다.
비록 우리네 엄마들이 주말연속극의 막장드라마 속 맥락도 대책도 없는 악녀들을 보면서,
거기에도 자신의 일부가 투영되어 있음을 무시한 채, 혹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욕만 하고선 재미있게 티비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이 소설은 현재의 대한민국 소설의 가장 큰 흐름 중 하나인 이른바 ‘여성서사’를 대 놓고 비웃는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성실하게 살면서 주인공에게, 가족에게 부족하지 않은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줬지만, 불운하게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전적으로 그런 아버지 덕에 생존할 수 있었던, 아버지가 시한부 선고를 받자 자신 역시 무너져버린 무능력한 여성일 뿐이다.
(내가 최근 읽었던 하성란의 소설에도, 백가흠의 소설에도 비슷한 설정이 있지만,
둘다 그래서 병에 걸린 아버지는 가족에게 짐이 될 뿐이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가족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킨 사람으로,
그리고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주인공은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희생이라는 진부한 비극의 또 하나의 희생양으로 그려진다.
난 그런 안일한 진부함이 지겹다.)
그런 불운하다면 불운한 가족사를 통해서 주인공은 오히려 구체적인 내용은 아마 작가도 미처 설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지지만
아무튼 주도면밀한 계략을 통해 경제적인 자유를 획득하고, 무능력한 어머니를 겁박하다, 끝내 정신병원으로 밀어넣는다.
공감할 구석이라곤 정말 1도 없는, 없어야 하는 악인일 뿐이다.
근데 난 흔해빠진, 징징거리는 여성서사보단 현실적이면서도 희대의 쌍년이 등장하는 이 소설이 오만배는 더 재미있다.
그래서 이 작가는 그리고 이 소설은 유독 획일화가 심한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유니크한 매력을 뿜어낸다. 그게 이 소설의 가치다
(김사과의 다른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다른 소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서 작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한다.
하지만 그의 다른 소설이 궁금하긴 하다)
또한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까일 소리이긴 하지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읽으면서 작가가 도스또옙스끼랑 비슷한 방식으로 글을 쓴다고 느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등장하는 방식도 비슷하지만,
무엇보다도 독백인지, 방백인지, 대화인지 그 경계들이 모호한 주인공의 장광설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된 동력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글을 잘 쓴다는 소리는 아니다. 개인적으론 아직 여물지 못한 치기어린 글이라고 느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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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풋사과인것도 나름 매력임
김사과에 대해 앙팡 스키조enfant schizo라는 표현을 쓰자고 했을 때 schizo라는 말에 집중해서 잊히긴 하지만, enfant라는 말도 잊어선 안 될듯ㅋㅋ - dc App - dc App
누가 한 말임?
동감함 그의 광기를 가짜광기라고 폄하하기 전에 유독 점잔빼고 따스하기만한 우리나라 소설들이 가진 한계가 더 문제있어보임
김영찬 평론가라고 하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