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 창백한 언덕 풍경, 민음사, 2012.
가즈오 이시구로의 삼부작을 다 읽었다. 삼부작이라고 따로 명명된 책들은 아니지만 이시구로가 인터뷰에서 창백한 언덕 풍경-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남아있는 나날은 “한 개인이 불편한 기억과 어떻게 타협하는지”를 그려내고자 “같은 책을 세 번 썼다”고 말했으니 가히 삼부작이라 불러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데뷔작인 《창백한 언덕 풍경》은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의 일본과 《남아있는 나날》의 영국이 모두 무대로 등장한다. 무대는 지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시간대도 다르다. 자세한 년도는 나와있지 않으나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로 유추해볼 때 일본은 전쟁 이후 얼마지 않은 50년대로 보이고 영국은 소설이 나온 80년대 초반의 모습처럼 보인다. 장소도, 시간도 다른 두 무대를 이어주는 건 주인공인 에츠코다. 그는 영국인인 두 번째 남편을 따라 일본인인 첫 번째 남편과의 딸 게이코와 함께 영국에 왔지만 남편을 먼저 보내고 딸은 자살해 홀로 살고 있다. 이야기는 두 번째 남편 사이에서 낳은 그의 둘째 딸, 일본식 이름을 거부했던 주인공과 일본식 이름을 원했던 남편과의 타협을 통해 왠지 모르게 동양풍을 풍긴다는 이유로 이름 지어진, 니키가 위로 차 주인공을 찾아오며 시작한다.
먼저 읽은 삼부작 중 두 소설 모두 유려하게 과거 회상을 그려낸 것처럼 《창백한 언덕 풍경》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만 《창백한 언덕 풍경》이 후에 쓰일 두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이야기는 철저히 개인적이라는 점이다. 《창백한 언덕 풍경》의 주인공에게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의 주인공처럼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제의 천황이데올로기에 열렬히 복무했거나, 《남아있는 나날》의 주인공처럼 나치 독일의 꾐에 넘어간 주인을 아무런 의심 없이 충실히 섬긴 것과 같은 거시적인 차원의 잘못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들자면 주인공은 객관적으로 잘못이라 부를 수 있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저자가 얘기한 대로 “불편한 기억”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두 소설과 달리 독자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도버 해협에서 충돌하는 먼 바다의 해류로 인해 자욱한 안개로 뒤덮인 런던의 풍경과 같이 주인공의 심리는 30여 년 전의 나가사키와 현재의 영국 시골에서의 장면이 충돌하면서 아련하고 흐릿하게 표현된다. 그렇기에 독자는 스스로 이 불친절한 텍스트를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에 도움이 되는 건 바로 주인공의 이웃, 사치코와 그의 어린 딸 마리코다. 미국 군인과 연애 관계에 있는 사치코는 미국행을 꿈꾸지만 그의 꿈은 작중에서 여러 차례 좌절된다. 사치코는 그다지 마리코에 관심이 없다. 어리고 불안정해 보이는 마리코의 미국행을 걱정하는 주인공에게 사치코는 계속해서 자신만큼 딸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며, 미국이야말로 딸의 행복을 위한 곳이라고 얘기한다.
과거 회상에는 주인공의 시아버지와 첫 번째 남편에 관한 분량도 만만치 않지만 그 핵심은 이 모녀에게 있다. 왜냐하면 주인공과 첫 번째 남편의 딸인 게이코는 어머니인 주인공을 따라 영국에 왔지만 결국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다 집을 나가서 자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기억을 떠오르기 싫어 일본식 이름조차 거부한 주인공이 계속해서 과거 회상에 몰두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마리코에게서 게이코를 보고, 게이코에게서 마리코를 본다. 30년의 세월과 수천 킬로미터의 시공간을 넘은 두 쌍의 모녀는 그렇게 연결된다.
잘 쓴 소설이지만 데뷔작이어서 그런지 주인공의 시아버지로 등장하는 오가타의 경우 무슨 목적으로 등장했는지는 알겠지만 이야기의 중심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다분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교육방식에 온 힘을 쏟았지만 이제는 아들의 친구에게 비판을 듣는 처지가 되어버린 그에게 살을 더 붙여서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의 주인공이 탄생한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렇게 삼부작을 읽고 나니 이시구로가 더욱 맘에 들었다. 《나를 보내지 마》도 읽었었고 남은 책들은 앞으로 생각날 때 찬찬히 읽어보도록 해야겠다. 뭐 이번에 SF 신작도 낸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번역되면 그것도 읽어봐야지.
이걸 읽은 사람이 있다니 굿 - dc App